몇 년 전 같이 일하던 남자 동료가 하던 말이 생각난다. 자기는 형이 참 좋은데 형수와 아내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잘 못 만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팀의 남자들과 같이 일할 때도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 후배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집안에 여자가 잘 들어와야 된다니까요!"
나는 내심 찔리는 부분이 있어서 가만히 있었다.
내가 막 결혼을 해서 첫애를 가져 배가 남산만 할 때 시동생은 코딱지만한 신혼집에 자신의 친구 세명을 데리고 온 적이 있었다. 나는 부른 배를 움켜잡고 뒤뚱거리며 시동생 친구들의 저녁을 해주고 술상까지 봐주었던 기억이 난다. 시동생과 친구들은 그것도 모자라 하룻밤을 자고 아침까지 잘 챙겨 먹고 우리 집을 떠났다. 그때는 왜 시동생 친구들까지 우리 집에 와서 내가 대접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시동생은 친구들에게 형수가 생겼다고 자랑도 하고 나에게 자신의 친한 친구를 소개도 할 심사였던 것 같다. 나를 엄마나 누나처럼 생각하고 대했던 것 같다.
시동생은 결혼을 좀 늦게 삽 십 대 중반쯤에 했다. 결혼 전까지는 그래도 사이가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시동생이 결혼을 하면서 동서가 생기자 이상한 냉기가 감돌았다. 문제의 원인은 나였다. 약주를 좋아하시던 시아버지는 동서와 맞술을 하셨다. 동서가 따러주는 술잔을 받고는 연신 싱글벙글하셨다. 술을 전혀 못하는 나에게는 이상하고 이해가 안 가지만 슬슬 화기가 돋는 장면이었다. 착한 시어머니는 항상 친정부터 들렀다 명절 당일날이나 되어 시댁에 도착하는 동서에게 할 거 없다면서 손사래를 치면서 부엌에서 밀어내신다. 나는 여섯 시간 차를 타고 와서 여섯 시간 동안 전을 구웠는데 말이다. 이러면서 사람 좋은 동서가 점점 미워지기 시작했다. 동서의 털털한 웃음소리도 듣기가 싫어졌다. 결정적인 사건은 몇 년 전 추석 때 벌어졌다.
매년 겪는 추석 귀성길 전쟁을 염려하셔서 시어른들이 우리 집으로 전날 올라오셨다. 우리들을 배려하셔서 시부모님들이 역귀성을 하셨던 것이다. 그 전날부터 곰국을 고아서 한 끼를 맛있게 대접해드리고 분주하게 추석 차례상을 이것저것 준비하였다. 그런데 추석 당일 9시가 넘어도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동서네 가족이 도착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9시가 넘어서야 가족들이 도착했다. 오래전이라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아마 싫은 내색을 했던 모양이다. 시동생과 동서는 기분이 나빠서 집으로 돌아갔던 것 같다. 그때부터 동서와의 사이는 완전히 틀어졌던 것 같다. 자연히 시동생과도 사이가 안 좋아졌다.
눈치 빠른 큰 딸이 일침을 날린다.
"엄마는 삼촌네 식구들을 가족으로 생각 안 하잖아!"
나의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뜨끔했다.
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주는 형님은 이렇게 말한다.
"어느 집안에나 있는 흔한 일이다."
그나마 나를 지지해주는 것 같아 위안이 된다.
나는 집안에 잘 못 들어온 여자인가? 맏며느리로 집안에 들어와서 집안에 분란만 일으킨 속 좁은 죄인인가? 내심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차에 사이다처럼 속이 뻥 뚫리는 칼럼을 만났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20&aid=0003286992&sid1=001
어릴 때부터 내가 봐온 가족이나 친척, 속사정을 나눈 친구들의 경험을 돌아보면 그 모든 관계에는 문제가 있다.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을 뿐이다. 결혼으로 인한 갈등의 바닥에는 결혼을 ‘두 집안의 만남’으로 생각하는 것에 있다고 나는 본다. 결혼은 두 개인이 만나 자기들의 삶을 꾸려가는 것이다. 집안의 만남으로 틀 짓는 순간 너무나 많은 갈등에 얽히는 것을 보아왔다.
결혼하는 이에게 축하 카드를 쓸 때 내가 적는 말이 있다. “좋은 며느리(사위) 되지 마세요!”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며, 가족 포함 주변 사람들은 그 두 사람이 자기들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도록 응원하거나 내버려 두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출처: 위 칼럼에서 인용)
결혼은 두 집안의 만남이 아니라 두 개인이 만나 자기들의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라는 말이 가슴에 절절하게 와닿았다. 내가 결혼할 당시만 해도 결혼은 집안의 만남이었고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은 결국 여자인 며느리였다. 남편이 좋아서 결혼을 했는데 막상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캐도 캐도 고구마 줄기처럼 주렁주렁 달려 나오는 시월드였다. 시어머니, 시아버지를 섬기는 것도 모자라 시동생과 그 친구들까지 대접해야 하는 상황을 맏며느리의 후덕한 인심으로 받아들여야 했었다. 맏며느리는 무조건 명절에는 일찍 와서 소처럼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둘째 며느리는 도와주면 감사한 존재였다. 여기서 내가 조금이라도 서운한 기색을 내기만 하면 비난의 화살은 맏며느리인데도 후덕하지 못한 나에게로 다 쏟아졌고 나는 몹쓸 여편네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후덕한 며느리가 되지 못하는 나의 인성의 부족함에 대한 자책감과 왠지 모를 억울함과 분노에 잠을 뒤척여야 했다.
그래도 세상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변하는 것 같아 그나마 위안이 된다. 요즘 같이 비혼이 흔한 시기에 결혼은 집안의 만남이라고 한마디만 꺼내도 다 도망을 갈 것이다. 결혼을 해주는 것만도 고마운 세상이 되었다. 나처럼 맏며느리 콤플렉스에 속 끓이는 일이 호랑이 담배 먹는 시절의 이야기가 되는 날이 빨리 돌아오길 바란다. 이것이 뉴 노멀이라고 칼럼의 작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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