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나의 생일과 조카 즉 남동생 아들의 생일이 같다. 친정 가족 톡으로 메시지가 날아왔다.
"00이 생일이라고 송금했다. 00아 코로나 조심해라! 사람 많은 데 가지 마라!"
"아 감사합니다. 예 저희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아버지 어머니도 건강 조심하시고요."
남동생 가족들은 벌써 이십 년 가까이 미국에서 살고 있다. 손자를 자주 못 봐서 항상 애틋한 아버지의 마음은 이해한다. 손주의 재롱을 남동생이 보내주는 이메일 동영상으로만 볼 수 있던 세월이었다. 자주 봐야 4-5년 만에 한 번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얼마나 손주의 얼굴이 보고 싶으실까? 손이 귀한 집안에 대를 잇는 4대 독자인 손자이니 오죽할까? 그러나 아버지는 내 생일과 손자의 생일이 같은 줄 뻔히 아시면서 한마디 언급도 없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구호를 철저하게 잘 지킨 아버지 덕에 우리 집은 1남 1녀이다. 남동생과 나 단출하다. 그러기에 남동생과 나는 항상 비교 대상이었으며 은근히 경쟁상대이기도 하였다. 동생이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누나가 모범을 안 보여서 그렇다' 고 나에게로 화살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은근히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는 남동생만 챙기기 바빴다. 맛있는 음식부터 시작해서 보약까지 모두 남동생 차지였다. 여자인 나는 시집가면 고만이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모든 것은 남동생 중심이었다.
이러한 부모님의 남아 중심적 사고는 결혼 후 더욱 여실히 드러났다. 결혼 후 명절에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서 하룻밤을 묵었다. 우리 아이들이 예닐곱 살경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이들이 종이에다 색연필로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친정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씨 집안 딸내미들! 열심히 공부하는 것 좀 봐라!"
아버지에게 우리 아이들은 철저하게 외손녀이었던 것이다. 친손녀가 아니었다. 남편 성인 이 씨를 따르는 외손녀이었던 것이었다. 이일로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나의 자식들은 아버지에게는 그저 남편 가족인 이 씨 집 자손일 뿐이구나!
아버지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 세대에서는 '출가외인'이 진리였으리라! 종친회 일을 열심히 하시는 아버지에게 대를 잇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 모르는 바가 아니다. 대를 잇는 아들과 또 그 대를 이어가는 하나밖에 없는 손자가 얼마나 귀하디 귀한 존재인지 너무도 잘 안다. 세상이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생각도 너무 빨리 변한다. 몇십 년 전만 해도 남아 선별검사를 해서 여자아이는 낙태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요즘 주위의 신혼부부들을 보면 딸을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전통적인 유교 사상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친정아버지와 페미니스트인 세 딸 사이에 끼인 나는 잠시 휘청인다. 어디에 중심을 두어야 할지. 친정아버지는 아버지의 생각대로 인정하고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스트대로 인정하는 것이 정답인 듯하다. 모두의 생각이 다 같을 수는 없으니까!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