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두 어머니가 계신다. 한 분은 시어머니이고 또 한분은 친정어머니이다. 두 분 다 나와 애증의 관계이다. 멀리 있을 때는 서로 애틋해하다가도 막상 같이 만나면 뭔가 어색하고 빨리 헤어질 궁리를 찾는 그런 관계이다.
첫 번째 애증의 관계, 시어머니! 같은 여자로서 시어머니가 너무 불쌍하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한 구석이 많다. 가난한 살림에 한평생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공장 일부터 농사일까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살아오신 시어머니는 정리와 청소를 할 줄 모르신다. 그래서 시댁에서 화장실을 갈 때는 코를 막아야 하고 혹시라도 뛰쳐나올 벌레나 바퀴벌레에 항상 도망칠 대비를 하고 가야 한다. 시댁 부엌 냉장고에는 정체모를 검은 봉지들이 몇 년씩 그 안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시댁 가는 일은 항상 내게 고문과도 같은 형벌로 다가왔다. 물론 며느리인 내가 가서 청소를 싹 해드릴 수도 있지만 몇 년 전 화장실 청소를 한 번 하고 난 뒤의 떨떠름해하는 시어머니의 얼굴을 보고는 안 하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우리 집 된장, 고추장, 간장, 고춧가루부터 시작해서 감자, 고구마까지 모든 농산물과 기본양념을 다 만들어주시는 분은 바로 우리 시어머니시다. 내가 조금이라도 음식 솜씨를 뽐낼 수 있는 것도 다 시어머니표 양념이 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무엇이든 다 잘 드시고 또 몸이 바지런하셔서 항상 잠시라도 가만히 못 있으시고 몸을 움직이시기 때문에 팔순이신 나이에도 건강하시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특이한 식성을 가지고 계신다. 먹다가 남은 푹 퍼진 떡국을 좋아하신다. 성질 같아서는 음식물 쓰레기로 확 버렸으면 싶을 먹다 남은 떡국을 부엌에서 혼자 냄비 바닥을 긁어가며 먹는 시어머니를 보면 잘 이해가 안 가다가도 애잔한 마음이 든다.
시어머니는 한 평생 자기주장을 해 보지 못하시고 사셨다. 시집와서 젊은 시절에는 대찬 홀시어머니 밑에서 눈치를 보고 사셨다.
"내가 일하고 오면 시어머니랑 친구들이 자기들끼리만 팥죽을 끓여먹고 나는 주지도 않더라!"
아마 먹다 남은 푹 퍼진 팥죽을 지금처럼 부엌에서 몰래 긁어드셨을 것이다. 그리고는 홀시어머니 밑에서 애지중지 외동아들로 자란 남편의 시중을 지금까지도 들고 계신다. 그런 시어머니가 팥죽을 무척이나 좋아하신다.
두 번째 애증의 관계, 친정어머니! 여덟 살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우리 집에 오신 새어머니인 친정어머니는 내가 살갑게 대하지 않는 것이 항상 불만이셨다. 그리고 항상 몸이 아프셨기 때문에 내가 애를 셋 낳을 동안 미역국 한 번 끓여주시지 않으셨다. 그래도 일 년에 설날, 추석 이렇게 두 번 가는 명절에는 맛난 것을 많이 해주셨다. 워낙 음식 솜씨가 좋으시다. 어렸을 때는 나랑 새어머니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 충돌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예쁘던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머리도 하얗게 샌 모습을 보면 짠한 생각만 든다. 그리고 아빠와 사이좋게 살아주시는 것만도 감사하다. 이런 친정어머니도 팥죽을 아주 좋아하신다.
그래서 동짓날에는 별다른 일이 없으면 팥을 사다가 동지 팥죽을 끓이려고 노력한다. 팥 한 봉지를 사 와서 팥죽을 끓이면 곰국 냄비 한 통을 끓일 수 있다. 처음에는 너무 많이 끓여서 다 먹지도 못하고 곰팡이가 슬어 버리는 게 다반사였다. 그러다 요령이 생겨 비닐팩에 먹을 만큼 소분해서 냉동실에 얼려놓고 먹는 방법을 알아냈다. 작년 동짓날은 뭐가 그리 바쁜지 팥죽을 못 끓이고 지나가 버렸다. 냉장고 한편에 계속 누워있는 팥 봉지를 볼 때마다 마음이 쓰였는데 구정을 맞아 친정과 시댁을 가야 했기에 두 분 어머니를 위해 맘먹고 팥죽을 끓였다.
팥죽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우선 전날 팥을 깨끗이 씻어서 물에 하룻밤 불려야 한다. 이렇게 불린 팥에 물을 넣고 한 번 우르르 끓이곤 그 물을 버려야 한다. 팥의 독소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다시 씻어서 물을 충분히 넣고 팥이 무를 때까지 푹 삶아야 한다. 1시간 정도 삶아져서 팥이 무를 정도가 되면 믹서기나 도깨비방망이로 팥을 갈아 준다. 까칠한 껍질이 싫으면 팥의 껍질과 앙금을 분리해서 끓이지만, 껍질에 더 영양분도 많고 껍질채 갈면 더 고소한 맛도 나고 해서 그냥 껍질째로 갈아서 죽을 만들었다. 그리고 찹쌀가루나 밥을 넣고 끓여주면 된다. 이때 나무주걱으로 계속 저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세 바닥에 눌러붙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죽 모양새가 나면 찹쌀가루로 만든 새알을 넣어주고 끓여내면 된다. 말이 쉽지 장장 이틀 간에 걸친 대장정이다.
정성스럽게 쑨 팥죽을 적당한 양을 소분해서 비닐팩에 넣고는 냉동실에서 얼렸다. 그리고 구정 때 만들어서 얼려놓았던 곰국 국물도 함께 쌌다. 그러다 보니 좀 있으면 보름인데 찰밥과 보름나물을 두 분 어머니들이 잘 드시던 게 생각이 났다. 얼른 한살림 매장에 가서 보름나물 몇 가지와 오곡밥 재료를 사 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부지런히 보름나물과 오곡밥까지 만들었다. 두 분 어머니들이 드실 것이라 보름나물에는 참기름과 들기름을 아끼지 않고 넉넉히 부어서 볶았더니 고소한 향이 압도적인 데다 입에서 사르르 녹는 감칠맛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렇게 바리바리 아이스박스에 쌌다. 많은 음식 탓에 하나로는 모자라 아이스 가방까지 동원해서 음식을 쌌다.
힘센 막내가 아이스박스를 들고 나머지 두 딸들도 가방 하나씩을 들고 우리는 무궁화호를 타고 먼저 시댁으로 향했다. 시어머니는 내가 해온 음식을 보고는 입이 귀에 걸리신다.
"아이고, 야야! 힘든데 뭐하러 이런 걸 다 해왔니?"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오곡밥과 보름나물을 순식간에 다 드신다. 아마 우리가 올라간 뒤에도 두고두고 퍼진 팥죽을 혼자서 맛있게 드실 것이다.
싸간 음식들을 정확히 이등분해서 시어머니께 드리고 나머지 음식들을 싸들고 30분 거리인 친정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친정어머니도 입이 귀에 걸려 좋아서 어찌할 줄을 모르신다. 안 그래도 팥죽이 먹고 싶어서 내일 식당에 사 먹으러 가려고 했던 참이라고 하시면서 아이처럼 좋아하신다. 그리고 우리들을 역까지 바래다주시면서 말씀하신다.
"어미야! 팥죽 잘 먹을게! 고맙다~~"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나의 마음은 두 분 어머니의 사랑으로 몽실몽실해지면서 뿌듯했다. 먹지 않아도 배 부른 느낌이랄까? 정성이 담긴 음식으로 두 분 어머니에 대한 나의 사랑을 대신 전해드렸다. 백 마디 말보다 나의 팥죽과 오곡밥, 보름 나물이 두 분 어머니께 나의 사랑을 대신 전해드릴 것이다. 다시 한번 확인하는 사실이지만 음식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