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발령을 처음 받았을 때 부장교사 중 한 분이 나에게 축시를 써 주셨다. 직접 지은 시를 예쁘게 프린트하셔서 낭송까지 해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부장교사들끼리의 단톡 방에서도 항상 이모티콘을 사용해서 감성적인 댓글을 달아주시고는 하셨다. 어느 날 교장선생님께서 한 말씀하셨다.
"그 부장님은 너무 감성적이라서 싫어!"
그때는 그냥 웃어넘겼다.
그분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다. 가신 학교의 교감이 나와 친분이 있어 그 선생님에 대해 물어왔다.
"그 선생님 어떠셔?"
"부장도 하시고 열심히 하시다 가셨는데."
그 후 얼마 뒤 학부모와 어떤 문제가 있어 명예퇴직을 하셨다는 소문을 들었다.
작년 갑작스럽게 상을 당한 선생님을 대신해 시간강사를 구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뛸 때였다. 온갖 인맥을 다 동원해서 빨리 시간강사를 구해 수업결손을 막아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3년 치 비상연락망을 뒤져서 퇴직하신 선생님들께 다 전화를 돌렸다. 다들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셨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모두 다른 학교에서 시간강사나 기간제 교사를 하고 계셨다. 작년에는 교사 자리가 비는데도 불구하고 교육청에서 신규교사 발령을 내주지 않고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를 쓰라고 하는 통에 시간강사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웠었다.
마침 명예퇴직을 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참이라 그 부장 선생님에게도 전화를 돌렸다. 그러나 아무리 전화를 해도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하는 수 없이 문자를 남겨놓았다. 혹시 시간강사로 와주실 수 있으시냐고! 며칠 있다 답장이 왔다. 자신은 절대로 시간강사 안 나갈 거니까 앞으로는 연락하지 말라는 강경한 어투였다. 잠시 당황했다. 이분이 나랑 같이 근무했던 분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생활 경험이 쌓이면서 나에게 너무 친절하게 막역하게 대하는 사람들을 자꾸 경계하게 된다. 그들의 친절에 내 마음을 열었다가 갑작스럽게 돌변하는 태도에 상처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과잉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은 거기에 대한 대가를 은연중에 요구하거나 종종 뒤통수를 치는 경우가 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들이다. 좋고 나쁨이 너무 명확한 것이다. 그래서 기분이 좋을 때는 잘 대해주다가도 조금만 수가 틀리면 바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이 들수록 중용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것! 너무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냉랭하지도 않은 것! 사전에서 중용의 뜻을 검색해봤다.
중용이라는 말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내가 남에게 베푸는 말과 행동 또는 감정표현에 부족함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나친 것인지를 살펴서, 상황에 맞게 적절한 그중(中)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庸=用=施이다. 즉, 상대방에게 베푸는 말과 행동에서 적절함을 지켜라는 것이 중용이다. 남에게 베푸는 말과 행동이 부족하면 상대는 원망하게 되고, 남에게 베푸는 말과 행동이 지나치면 상대는 부담스러워한다. 그 과(過) 불급(不及)의 중간이 중용인 셈. 이는 오륜인 부부관계, 부자관계, 군신관계, 형제관계, 친구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관계에서 내가 받기 싫어하는 감정표현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한다. 즉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마음속 원대한 뜻은 흔들리지 않고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은 상황에 맞게 잘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자신의 이익과 소문에 따라 계산적으로 살지 말고, 자신이 스스로 세운 올바른 원칙만은 지키겠다는 마음을 가지되,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세련되게 표현할 줄 아는 것. (출처: 네이버 나무 위키)
공자 역시 한 달도 충실하게 중용을 지킬 수 없었다고 고백할 정도로 중용대로 사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포기할 순 없다. 조금씩 조금씩 나 자신을 반성하면서 너무 지나치지 않게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는 세련된 중용의 멋을 풍기는 중년으로 나이 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