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잘러는 직장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이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런데 앞 뒤 상황을 가리지 않고 저돌적으로 너무 열심히 하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새롭게 직장인이 되어 너무 의욕이 충만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
교육청은 교육행정 부분을 맡아서 일하는 주무관들과 교육과정 관련 일을 하는 교사 출신의 장학사들이 학교를 위해 일을 하는 조직이다. 교육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바로 교육청으로 발령받는 신출 주무관들은 공무원이 되었다는 자긍심과 잘해보겠다는 의욕이 하늘을 찌른다. 특히 요즘 공무원이 된 주무관들은 어마 무시한 경쟁률을 뚫은 수재들이라 일처리가 빠르고 똑똑하며 거기다 젊고 풋풋한 비주얼까지 받쳐주는 엄친아들이 많다. 가끔 교육청에 업무 문의차 전화를 하면 젊은 주무관들의 똑 부러지는 말솜씨와 빈틈없는 일솜씨, 거기다 친절한 응대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런 의욕이 가끔 너무 과할 때가 있다.
저번 주에 청렴 관련 학교 실적을 제출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나는 별 관심이 없어 자세히 보지 않았는데 메신저에 난리가 났다. 먼저 불을 붙인 것은 도교육청 혁신교육과 장학사 출신의 교감이었다. 학교를 지원해주기 위한 교육청에서 이런 세세한 실적까지 제출하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냐. 학교를 통제하고 감시 감독하겠다는 것이냐?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런 비혁신적이고 구태의연한 태도로 어떻게 혁신교육을 지원하겠다는 것인가? 장문의 메신저를 전체 교감에게 뿌렸다. 자세히 공문을 살펴보니 그럴 만도 하였다. 열개가 넘는 항목에 실시날짜와 실시 내용, 내부결재 공문 번호까지 적어서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공문을 일일이 다 찾아서 정리를 하려면 몇 시간은 족히 걸릴만한 일이었다. 실제로 어떤 교감선생님은 보고자료를 다 작성하는데 일곱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또 다른 도교육청 장학사 출신 교감이 동조를 하였고 교육청에 항의 전화를 하고 그 결과를 피드백해주었다. 급기야는 교감단에서도 교육청에 항의 전화와 보고양식을 간소화해달라는 요청을 정식으로 하였다. 나는 관조자의 입장에서 과연 어떤 결말이 날까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만 있었다. 결과가 나오면 작성하려고 일도 일단 보류하였다. 그러나 막상 결론은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허탈하게 일일이 공문을 찾아가며 보고 양식을 작성해야 했다. 교감단에서는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메신저가 날아왔다.
이 사태를 지켜보면서 나와 다른 일로 자주 통화했던 젊고 똑 부러지면서 친절하던 담당 주무관의 목소리가 자꾸 떠올랐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몇 번의 통화로 그녀가 얼마나 똑똑하고 야무지게 일을 처리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일에 대한 열정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이번 일은 너무 젊고 일처리가 너무 똑 부러지게 야무진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안 봐도 알 수 있다. 학교현장에서도 근무하면서 선생님들이 어떤 고충을 겪는지 몸으로 겪어봤다면 공문을 이런 식으로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무 일을 확실하게 하려는 욕심이 학교에 많은 실적과 자료를 요구하게 되었다는 것을 안 봐도 너무 잘 알 수 있다. 도교육청에서 요구하는 서식을 그대로 발송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학교의 실정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이렇게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럴 때는 경험이 많은 팀장이나 과장급에서 조율을 했어야 할 텐데, 다들 바쁘다 보니 담당자를 믿고 그냥 결재를 해주었을 것이다. 경험이 없는 이론에 충만한 일잘러가 학교를 어떻게 힘들게 하는지 일잘러의 불편한 진실을 목도해버리고 말았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