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코로나 주의 1단계라 학생들의 2/3가 학교에 등교한다. 하루에 4개 학년씩 등교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발열체크기가 있는 현관에서는 긴 줄이 서 있곤 한다. 아이들이 오는 시간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8시 45분에서 55분 사이 10분 동안에 거의 반이 넘는 학생들이 등교한다. 발열체크기에 선생님이 한 분 계시기는 하지만 역부족이다. 그래서 내가 매일 아침 8시 40분부터 9시까지 학생들 아침 맞이 겸 학생들 줄 세우기를 도와주고 있다.
발열체크를 위해서는 1초 정도는 기기 앞에 서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앞의 상황을 봐가면서 학생들을 현관으로 들여보내야 한다.
"어서 와!"
한 명을 현관 안으로 들여보내고 잠시 간격을 두고 또 한 명을 들여보낸다.
"잠깐만 기다려봐! 네 들어오세요!"
모두 마스크를 낀 아이들은 일사불란하게 교사의 지시에 잘도 따른다. 조금 지체된다 싶으면 알아서 현관 밖에서 긴 줄을 서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도 등교한 순서대로 줄을 서고 차례가 되면 신발을 갈아 신는다. 내가 알던 평상시의 아이들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에 아이들이 순간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알던 아이들은 환하고 밝게 웃으면서 친구들과 장난도 치고 뜀박질도 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마스크를 낀 아이들의 얼굴은 대부분 굳어있었고 잘 웃지도 않는다. 간혹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삼삼오오 들어오는 아이들은 곧 거리두기를 하라고 제재를 받는다. 시키지도 않는데 아이들은 줄을 서고 앞사람과 간격을 유지한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짓으로만 해도 멈칫하면서 지시를 알아듣고 따른다.
'아이들이 겉늙었구나! 코로나를 일 년 동안 겪더니!'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노래 가사도 있다. 장장 일 년 동안 코로나라는 무서운 전염병을 겪으면서 아이들은 애늙은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밝었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해맑았던 얼굴과 천진난만했던 웃음이 사라지고 애늙은이가 되어 어른들의 눈치만 보고 있다.
겉늙고 눈치만 늘어가는 애늙은이가 되어 가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는 또 어떤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른으로써 이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 마음이 무거워지는 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