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에 숨어있는 악마를 보았다!

by 세둥맘

결재를 하다 보면 살짝 기분이 나쁠 때가 있다. 조퇴나 외출을 달 때 메신저로 먼저 알려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을 했는데도 나이스에 그냥 결재가 올라올 때이다. 조퇴나 외출을 상신하고 결재를 맡지 않고 자리를 비우게 되면 무단이탈이 되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으니 꼭 메신저로 상신했다고 알려달라고 누누이 부탁을 했는데도 말이다. 내 생각으로는 복무를 상신하고 메신저로 "조퇴 상신했습니다."라고 한 문장 쓰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은데도 말이다.


같은 교감들끼리 모여서 대화를 할 때도 가장 기분 나쁜 것으로 바로 이것을 꼽는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퇴나 외출 같은 복무를 상신할 때이다. 요즘에는 자녀 돌봄 휴가도 하나 더 추가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내가 한 부탁을 잘 따라주신다. 특히 연세가 지긋하신 오십 대 이상의 중견 교사들은 직접 교무실까지 찾아와 이러이러한 일로 조퇴나 외출을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일부러 찾아오시지 마시고 메신저로 그냥 알려만 달라고 말씀드린다. 생각해보니 중견교사들은 아예 조퇴나 외출을 잘하지 않는다. 그냥 묵묵히 학교를 지키는데 익숙하신 듯하다.


왜 나에게 말을 하지 않고 복무 결재를 올리면 기분이 나쁠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우선 내가 무시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내가 그렇게 회의 석상에서 몇 번이나 강조했는데도 지켜지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렇게 기분 나쁠 일만은 아닌 것도 같다. 복무는 법이 정한 테두리 내에서 정당하게 누려야 할 권리인데 나이스에 상신만 하면 됐지 왜 교감에게 일일이 메신저로 보고까지 해야 되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일리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처럼 개인의 권리와 행복이 우선시 되는 시대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연한 나의 권리를 앞세우기 전에 나이 든 교감이 그렇게 간절하게 부탁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듯하다. 별로 힘든 일도 아니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단지 성가시고 귀찮을 뿐이다. 이렇게 별로 힘들지도 않고 대수롭지 않은 작은 것에 사람들은 기분이 확 나쁘기도 하고 좋아지기도 한다.


사람들 사이의 분란이 일어나는 것도 원래 시작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예를 들면 내가 무슨 말을 했는데 무시하는 듯한 표정을 보여서 욱하는 경우. 지하철에서 내 발을 밟았는데도 미안하다는 말도 안 하는 경우. 등등. 무시하는 듯한 표정,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모두 극히 사소하고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이걸로 사람들은 기분이 확 나빠진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미소, 반갑게 건네는 인사 한마디,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바로 기분이 좋아지고 하루가 행복해지는 경우도 많다. 사소하다고 별거 아니다고 생략하고 대충 할 일이 아니다. 나의 소소하지만 진심 어린 따뜻한 말 한마디로 복을 짓고, 나의 귀찮지만 규칙과 관례를 따르는 작은 행동이 우리 사회를 지켜나가는 버팀목이 된다는 것! 악마는 아주 사소한 곳에서 숨어있으면서 호시탐탐 분란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소한 결재를 하면서 또 한 번 깨달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이들이 겉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