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제 열심히 안 살래요!

by 세둥맘

저번 주 급하게 수술을 하신 친정아버지의 병원비를 조금 부쳐드리고 문자를 드렸더니 이렇게 답장이 왔다.

"그래, 잘 받았다. 항상 건강에 유의하고 열심히 살아라."

이제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열심히 살아라'는 말에 왠지 가슴이 콱 조여왔다.


수술하신 후 어떻게 지내시는지 염려가 되어 주말에 안부전화를 드렸다. 친정아버지는 잘 지내신다고 하시면서 또 전화 말미에 이렇게 당부하셨다.

"열심히 해라. 열심히 살아!"

겉으로는 "네"하고 무심하게 대답하였지만 속으로는 다른 심사였다.

'아빠, 저 이제 열심히 안 살 거예요!'


나이 오십이 되어 가만히 나의 생을 되돌아보니 너무 열심히 살아왔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무작정 달려왔다. 눈을 가린 채 뛰는 경주마처럼 앞으로만 돌진해온 삶이었다. 무엇이 소중한지 나는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내면의 목소리에는 등한시 한 채로.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생각도 없이 그냥 남들이 다 하니까 안 하면 안 되니까 할 수 없이 공부를 하고 학교를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또 열심히 직장생활을 했다.


남들이 세워놓은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열심히 대학원을 다니고 젊은 나이에 학위를 두 개나 땄다. 결혼을 해서는 애들을 또 열심히 키웠다. 최선을 다해서. 워킹맘이지만 두 돌이 지나도록 모유수유를 했고 천기저귀를 썼다. 매일 출근하기 전에 유기농 재료로 이유식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충대충 살아도 될 일이었다. 그렇게 학위를 따지 않아도 승진하고 출세하는 사람들은 다 하게 되어 있었다. 오히려 이른 나이에 딴 학위가 다른 사람들의 질시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악을 쓰면서 아이들을 키우지 않았어도 아이들은 건강하게 오히려 더 둥글둥글하게 자랐을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나 자신을 돌보지 않고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열심히 산 대가로 암이라는 중병을 얻었다. 딸의 이런 속내를 모르는 친정아버지는 또 열심히 살 것을 주문하신다. 그러나 이제는 나도 나이 오십이니 아빠의 말을 좀 거슬러야겠다.


이제는 옛날처럼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겉치레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열심히 살지 않을 생각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무작정 남들이 쫓아가는 명예와 지위를 잡기 위해 열심히 살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 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요즘 젊은이들은 참으로 현명하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원하지 않는지 정확히 잘 알고 있다. 모든 판단의 기준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가 아닌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을 존중하고 아낄 줄 안다. 내가 싫으면 아무리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간 공무원도 때려치우는 요즘 젊은이들이 부럽기도 하고 그런 용기를 배우고 싶다. 이런 용기와 자신감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중할 줄 아는 자존감에서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선 나 자신을 사랑하면서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살피면서 나 자신을 애지중지 하면서 살 것이다.


아빠! 이제 더는 세상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열심히 살지 않을 거예요! 나 자신을 돌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