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시댁에 갔을 때 시어머니께서 안사돈 흉을 보셨다.
"세상에 멀쩡한 그릇을 다 버리고 새로 산단다. 글쎄!"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네"하고 가만히 있었다. 뭐든지 버리고 새로 사는 것을 죄악처럼 여기시는 짠돌이 시어머니에게는 이해 안 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내가 그 일을 하고 있다. 쓰던 그릇을 버리고 새 그릇을 사고 있다. 워킹맘인 나는 솔직히 살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릇이라고는 결혼할 때 장만한 접시와 밥공기가 다였다. 반찬을 담는 그릇은 보험을 들어서 주는 사은품으로 받은 것을 여태껏 쓰고 있었다. 지난주에 설거지를 하면서 보니 플라스틱 뚜껑의 한쪽 이빨이 떨어져 나간 것, 뚜껑에 물때가 낀 것, 모양도 들쑥날쑥 제멋대로였다.
마침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갈 참이니 만신창이가 된 찬기들을 다 버리고 새 걸로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요즘 유행하는 심플하고 깔끔한 스타일의 반찬용기로 세 세트를 주문했다. 오늘 드디어 요 예쁜 아이들이 도착을 했다.
택배 상자를 하나하나 풀어가며 그릇들을 꺼내고 모두 깨끗이 씻는 데만 시간이 한참 걸렸다. 타월로 뽀득뽀득 닦아서 싱크대 선반에 줄을 맞춰 나란히 올려놓으니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신혼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요즘 SNS나 인터넷을 보면 신혼집을 예쁘게 단장해놓고 온라인 집들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심심할 때 하나씩 클릭해서 구경해보면 다들 비슷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자신만의 취향과 개성을 살려 나름 예쁘게 꾸며놓고 있었다.
나의 신혼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결혼하면서 바로 큰 애를 임신했고 결혼과 동시에 고향을 떠나 남편을 따라 낯선 곳으로 이사를 했다. 임신한 몸으로 낯선 곳에 발령을 받아 직장생활을 하면서 살림을 살았으니 집을 예쁘게 꾸미기는커녕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거기다 직장까지 먼 도시로 발령받아 왕복 두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야 했다. 알콩달콩한 신혼 재미와는 거리가 먼 힘든 전쟁과도 같은 삶이었다.
아기자기한 신혼의 재미를 결혼한 지 이십오 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맛보고 있다. 몇 주전에는 결혼하면서 어머니가 사준 그릇들을 다 버렸다. 이십오 년 동안 한 두 번 쓴 게 고작이다. 그리고는 꽃무늬의 예쁜 파스타 그릇들과 개인접시를 샀다. 딱 여섯 개씩만! 누렇게 때가 낀 머그잔도 버렸다. 꽃무늬 머그잔으로 그릇과 무늬를 맞추어 샀다. 다음에는 검게 그을리고 코팅이 벗겨져가는 냄비를 버릴 차례다. 마음속에 점찍어 놓은 흰색 주물냄비세트를 살 것이다.
살림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 싱크장을 열어볼 때마다 흐뭇하다. 요런 기막힌 재미를 이십오 년 동안 모르고 지냈다니! 나도 새댁들처럼 SNS에 우리 집을 자랑할 날이 곧 다가올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늦바람이 무섭다는 말이 하나 틀린 말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