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를 하면서 과거를 버렸다!

by 세둥맘

어제가 마침 분리수거 날이라 미뤄두었던 정리를 시작했다. 안방과 부엌은 그런대로 정리가 되어가는데 애들 방이 문제였다. 마음먹고 애들 방 책꽂이와 책상 서랍 정리를 했다. 우선 책꽂이부터 공략했다. 마트에 장 보러 갈 때 쓰는 캐리어를 옆에다 두고 몇 년 동안 묵었던 책들을 정리했다. 한 달쯤 전에 읽을 만한 책들은 도서관에 기증을 했던 터라 책꽂이에 남아있는 것들은 문제집과 참고서 종류, 프린트물이 대부분이었다. 정리를 하면서 프린트물을 대충 훑어보니 이제 대학교 졸업반인 큰 애가 재수학원에 다닐 때 쓰던 것들이었다. 만약 이사를 가지 않았다면 또 이렇게 책꽂이 속에서 몇 년의 세월을 보낼 것들이었다. 큰 애의 손 때가 뭍은 책들과 노트들을 버리고 있자니 그때의 아팠던 기억과 힘들었던 순간이 다시 스멀스멀 떠오르면서 가슴 한편이 쓰라렸다. 책들과 노트들을 카트에 담으면서 그 쓰라렸던 기억들도 함께 담아 버렸다.


다음은 공부방의 책상 서랍을 공략할 차례였다. 서랍 속에는 몇 년 전 사은품으로 받았던 이름 모를 연예인의 사진이 박힌 텀블러부터 시작해 각종 잡동사니가 다 들어 있었다. 그 텀블러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이 박혀 있어 쓰기가 아깝다면서 딸이 책상 서랍에 고이 모셔두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소중하게 간직하고는 기억에서 사라져 책상 서랍 속에서 몇 년을 지내다 결국에는 분리수거함으로 가는 신세가 되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책상 속에는 막내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쓰던 리듬악기 세트가 3개가 나왔다. 다들 버리기가 아까울 정도로 멀쩡한 것들이었다. 핀란드 같은 외국에는 공동 주택 한편에 나눔 물건을 두는 장소가 있어 이렇게 버리기 아까운 물건들을 놔두면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곤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문화가 정착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카페에서는 이렇게 아까운 물건들을 바구니에 담아 '마음대로 가져가세요!'라는 쪽지를 붙여 엘리베이터 안에 일정한 시간 동안 둔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부지런을 떨 마음의 여유는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다 분리해서 버리기로 했다. 탬버린은 분리가 안 되어 폐기물 자루에 넣기로 했다.


이 외에도 몇 번 쓰지 않은 크레파스, 물감, 색연필이 몇 세트씩 나왔다. 리코드도 두 개, 단소도 서너 개가 쏟아져 나왔다. 미술 시간에 사용했을 벼루와 붓도 쏟아져 나왔다. 쓸만한 것들로만 한 세트씩 놔두고 다 버리기로 했다. 막내의 초등학교 시절 물건을 정리하자니 귀여웠던 막내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면서 아이들이 너무 빨리 커버린 것 같아 세월의 덧없음에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정리를 하다 보니 카트에 가득 찬 것을 두 번이나 버려도 또 버릴 것들이 나왔다. 눈이 와서 발이 푹푹 빠지는데도 불구하고 슬리퍼를 신은 채 분리수거를 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몇 차례 분리수거를 하고 나니 속이 뻥 뚫리면서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어제 못 쓰는 물건들을 다 버렸더니 너무 기분이 좋다!"


마침 인터넷 뉴스 검색 중에도 정리에 관한 기사가 떠 있었다. 정리는 비우기 즉 버리기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한 정리 컨설턴트는 정리를 하면서 자살을 시도했던 50대 남자가 삶의 의지를 다시 가지게 되었음을 회고하고 있었다. 정리를 하면서 과거를 버리고 현재에 집중하게 된다고 한다. 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물건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과거의 아픈 기억도 함께 버리는 치유의 힘이 있음을 느꼈다. 과거를 비우면서 현재를 다시 살아낼 새 힘을 얻게 되었다.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21010786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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