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라디오를 듣는데 진행자가 이런 말을 했다.
"속상할 때는 걷는 게 최고죠! 걷고 있으면 속 상했던 일들이 다 잊히죠."
오늘도 퇴근하고 머리가 복잡해 퇴근하자마자 바로 순둥이와 함께 산책길을 나섰다.
산책을 하면서 속상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내가 왠지 호구 같고, 나만 당하고 사는 것 같고, 나만 손해 보면서 사는 것 같던 더러운 기분들! 한걸음 한걸음 내디디면서, 뻥 뚫린 들판을 보면서, 날아오르는 새들을 보면서, 답답한 마음들을 하나씩 날려 보냈다. 내가 조금 금전적으로 손해 봤지만, 돈이라는 것이 돌고도는 것이라 다른 걸로 보답이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큰 병에 들었을 때 수술비와 입원비로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 생각이 나면서 가족들이 모두 건강한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앞 뒤가 꽉 막힌 집안에 있었다면 혼자 속을 끓이고 있었겠지만 밖으로 나오니 그런 생각들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저절로 감사합니다!라는 노래가 입으로 나왔다. 어둑한 노천 길을 거닐면서 감사합니다! 노래를 큰소리로 불러 젖혔다.
걷는 것이 주는 위로가 있다. 어떤 때는 그리운 사람이 보고 싶은 것처럼 걷는 것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저번 주 큰 눈으로 길이 온통 얼어 제대로 된 산책을 며칠 동안 못 한 적이 있다. 그때는 엄마가 보고 싶은 것처럼 산책이 그리워졌다. 산책의 따뜻하고 너그러운 품이 그리워졌다. 그러다 눈이 녹아 길이 조금 괜찮아지자마자 바로 순둥이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순둥이도 오랜만에 제대로 된 산책을 하면서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와서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집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딱히 누구와 함께 의논할 사람도 없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도 없을 때, 산책을 하면서 고민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나가면서 나 자신과 대화를 이어나가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속상했던 마음도 가라앉는다. 지난번에는 큰 딸과 싸우고 남편의 언성이 높아졌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순둥이와 채비를 하고 산책길을 나섰다. 나지막한 동네 뒷 산을 거닐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안정이 되고 평안해졌다.
걷기는 두 발로 하는 명상이라고 한다. 복잡한 머릿속의 양기를 걸으면서 땅으로 내려보내면 머릿속은 맑아진다. 엄마 품처럼 따뜻하게 나의 속상했던 마음을 다독이며 위로해주는 산책! 야외 배변 견인 순둥이의 하루 두 번 산책을 내가 도맡아 다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일도 동네 뒷산을 아침 일찍이 또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