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교문에서 학생들 아침맞이를 한다. 우리 학교는 교문이 두 개라서 정문을 한 바퀴 휙 둘러보고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후문으로 가자면 걸음을 재촉해서 서둘러야한다. 바쁘게 걸어가는 중에 매일 만나는 모자가 있다. 엄마는 아이의 가방과 신발주머니를 둘러매고 반 걸음쯤 잰걸음으로 앞장서 가고 아이는 주머니에 손을 꽂고 느릿느릿 여유롭게 엄마를 따라간다. 매일 같은 시간대에 만나다 보니 그 아이와 엄마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어디선가 읽은 글이 생각난다. 우리나라 엄마와 외국(아마 북유럽쪽) 엄마들의 차이에 관한 글이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하원할 때 우리나라 엄마들은 아이에게 매달려 신발 신기부터 모든 것을 다 해준다는 것이다. 반면 외국의 엄마들은 자기네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떤다고 한다. 아이들이 다 챙겨서 나올 때까지. 우리 엄마들은 아이의 모든 것을 내가 완벽하게 다 해주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나 외국의 엄마들은 아이가 좀 서툴고 미숙하더라도 아이 혼자서 자신의 일을 다 할 때까지 기다려준다. 성질이 급해서 내가 다 해주느냐 아니면 참고 기다려주느냐 그 차이다.
'좋은 엄마'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엄마들!
1학년 현장체험학습을 몇 달 앞둔 어느 날이었다. 학부모회에서 건의가 들어왔다. 코로나 이전에는 학부모들이 현장학습에 도우미로 따라갔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1학년 아이들은 정말 손이 많이 간다고 하면서. 나도 1학년 담임을 해봤지만 사실 담임선생님 혼자서는 버거울 정도로 아이들의 요구사항이 많다. 체험학습을 가서는 음료수병도 혼자 힘으로 딸 수 없어서 선생님을 찾는다. 미술 시간에 풍선을 불 때는 가관이었다. 3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의 풍선을 다 묶어주어야 했다. 그래서 도저히 걱정이 되어서 담임선생님 혼자와 아이들만 체험학습에 못 보내겠다고 했다.
교장인 나는 위의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아이들은 기다려주면 다 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리고 1학기도 아닌 2학기에 체험학습을 가는 것이니 아이들이 그동안 성장했으니 아마 더 의젓해졌을 거라고 장담했다. 정 걱정되시면 교과전담 선생님이나 실무사 선생님들을 동행해서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니 걱정 마시라고. 교장이 이렇게 나오니 더는 말을 못 하지만 영 못 미더운 눈치였다. 물론 1학년 아이들은 학부모 도우미 없이도 씩씩하게 선생님들과 함께 체험학습을 무사히 잘 다녀왔다.
우리 나라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이다. 가난한 부모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아이들을 교육시킨 덕분에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다. 그래서일까? 우리 엄마들의 뇌 속에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무조건 희생하고 내 한 몸을 불살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존재하는 듯하다. '맹모삼천지교'의 맹자의 어머니처럼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몇 번의 이사도 감뇌해야한다.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아들의 공부를 위해서라면 삯바느질과 떡을 해다 팔아서 내 몸을 불살라 뒷바라지를 해야한다. 이런 '좋은 엄마' 강박관념이 은연 중에 알게 모르게 우리 엄마들을 옥죄고 있다.
엄마도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
'맞벌이 부부의 스마트한 육아'에서 교육전문가 이민영 박사는 이렇게 조언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뭔가 해 주는' 것은 사실 아이의 성적과 상관없다'며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과연 열심히 사는 사람인지가 아이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과 육아를 다 잡아야 할듯한 강박에 시달리는 부모들에게 이 박사는 "사람의 에너지는 정해져 있다. 완벽할 수는 없고 그게 당연하니 내려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박사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맞벌이 부부의 스마트한 육아' 비법은 '다 잘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맞벌이 부부의 육아 비법은 내가 다 잘 할 수 없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내려놓는 것이었다. 이것은 전업주부인 엄마들에게도 해당된다. 내가 내 자식들을 위해 다 해 줄 수 없으니 내려놓는 마음이 중요하다. 맞벌이 엄마는 내가 다른 엄마들처럼 뒷바라지를 살뜰히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반면 전업주부인 엄마들은 내 삶을 아이들에게 모조리 헌신해야할 것만 같은 강박관념에 쉽게 빠진다. 맞벌이이든 외벌이이든 한국의 엄마들은 강박관념과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책하며 산다.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니야!' 꼭 모든 사람이 신사임당처럼 좋은 엄마나 훌륭한 엄마가 될 필요는 없다.
그냥 엄마인 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하다. 나를 꼭 빼닮은 아이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장한 엄마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 괜한 강박관념과 자책감으로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는 없다. 좀 덜 잘 해주고 좀 덜 챙겨줘도 괜찮다. 아이들은 그럴수록 내면이 더 여물어가며 혼자 설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된다. 엄마들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 궁리에 빠지면 된다. 그래야 아이들도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