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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둥맘 Sep 21. 2023

먹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엄마, 김 좀 싸주지 마!"

매일 막내를 위해 도시락을 싼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도시락에 밥을 담고 반찬으로 싸줄 치킨너겟을 에어프라이어에 휘리릭 돌린다. 지난 주말에는 도시락 반찬용 김치를 담기도 했다. 밥과 반찬을 정성스럽게 담고는 마지막 화룡점정으로 일회용 김을 도시락 가방에 집어넣는 걸로 도시락 싸기의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그런데 이제는 그 김도 싸주지 말라고 한다.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유출로 잔뜩 민감해진 막내는 모든 해산물을 먹지 않을 작정이다. 각종 유튜브 채널에서 혹은 선생님들께 들은 지식으로 막내는 총무장을 했다. 해산물을 먹으면 안 되는 이유를 백가지도 넘게 댈 기세다. 왜 맨날 해산물을 반찬으로 주냐며 화를 낸다. 급식에도 슬그머니 새우 같은 해산물이 나온다면서 불평을 해댄다.

"그렇게 따지면 먹을 게 하나도 없어! 샤인머스캣 같은 포도는 유전자 조작이지, 과일에도 농약을 뿌리잖아!"

"........."


세 딸들을 키울 때는 유기농을 고집했다. 내 아이들에게만은 합성 첨가물이 덜 섞인 걸로, 농약을 한 번이라도 덜 친 걸 먹이려고 애를 썼다. 라면도 유기농 제품을 만드는 곳에서 산 것만 사서 먹였다. 그러면 왜 이렇게 맛없는 라면만 사냐고 식구들은 난리를 쳤다. 애들이 다 큰 요즘에는 유기농에 대한 애착이 좀 시들해졌다. 이젠 몸도 따라가지 않는다. 편한 게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외식도 거의 못하게 된 코로나 이후로는 밀키트로 냉장고를 가득 채운다. 시간도 적게 들고 재료비도 적게 들고 맛도 좋고 여간 편한 게 아니다.


인간의 욕구 중에서 가장 강력한 욕구가 바로 식욕이라고 한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성욕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단다. 섹스는 안 해도 죽지 않지만 먹지 않으면 바로 죽는다. 그래서 살기 위해 먹는 식욕이 가장 강력한 욕구란다. 집에서 쓰는 생활비를 들여다봐도 거의 대부분 식비로 지출된다. 인간은 살기 위해 먹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먹기 위해 사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먹는 것은 중요하다. 먹는 것 자체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 또한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의 외모도 성격도 먹는 것에 따라 결정된다. 자신의 적정량을 지키고 먹는 것에 대한 욕정을 끊으면 적정한 몸무게를 유지하게 된다. 흔히들 살기 위해 먹기보다는 기타 많은 다른 이유로 먹는 것에 치중한다.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매운 떡볶이를 한 접시 해치운다. 꿀꿀하고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리기 위해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먹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잊어버리고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먹는 것으로 해소하다 보면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떡볶이와 아이스크림을 잔뜩 먹고 퉁퉁 부은 얼굴과 늘어난 몸무게로 또 스트레스를 받아 에라 모르겠다~~ 내 멋대로 살자~~ 한탕주의로 넘어가버린다.


채식주의자들은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난관을 뚫고 채식만을 고집한다. 간헐적 단식을 하는 사람들도 16시간 동안 공복을 유지하기 위해 저녁 8시 이후부터는 음식들의 수많은 유혹을 물리친다. 스님들에게는 식사공양이 수행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살생을 막기 위해 김치에도 젓갈을 쓰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채식을 고집한다. 자신이 먹은 그릇도 밥알 한알 없이 깨끗하고 정갈하게 마무리한다. 먹는 행위 자체가 수행이요 자신의 삶의 철학의 표현인 것이다.


아직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삶의 철학이나 신념과 종교를 확고히 세우지 못 한 때이다. 아직 몸도 계속 성장 중인 때이다. 엄마에게서 혹은 할머니에게서 먹는 것의 모든 것을 배운다. 생일날 엄마가 정성스럽게 끓여준 미역국 한 그릇의 추억으로 힘든 삶을 이겨나간다. 할머니가 해주신 달달한 식혜의 맛으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맛있는 것을 보고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증거란다. 우리의 삶에서 먹는 것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먹는 것이 곧 나이고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나의 성격과 삶에 대한 철학이 결정된다. 그래서 먹는 것 즐거운 일이지만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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