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핑퐁

by 세둥맘

어제 김 선생님과 인성부장이 실무사와 공문을 들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도 한마디 거들고 싶었지만 들어갈 때와 빠질 때를 알아야 하기에 그냥 가만히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공문을 들고 부장과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나에게로 왔다.


이유인즉슨 '재난대응' 관련 공문이 왔는데 이것은 선생님이 해야 할 업무가 아니라 행정실에서 해야 할 업무인 것 같다는 것이다. 공문을 받아 들고 자세히 보니 행정실에서 해야 할 업무와 교무실에서 해야 할 업무 즉 교육과정 부분이 썩여 있었고 결정적으로 현장지원과에서 보낸 공문이었다. 공문 배분을 할 때는 초등 지원과 와 중등지원과에서 온 공문은 주로 교무실 담당으로 선생님들께 배분하고 현장지원과나 경영지원과에서 온 공문은 행정실로 배분한다. 공문 배분을 담당하는 실무사가 쪼르르 달려오더니 작년에 안전담당 선생님께로 배분되어서 올해 안전담당 선생님인 김 선생님께로 배분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현장지원과나 경영지원과에서 온 공문은 행정실로 배분하라고 말하고는 내가 해결할 테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켜 선생님들을 돌려보냈다.


바로 행정실로 전화를 했다. 마침 그 날은 행정실장이 아파서 병가 중이라 주무관이 대신 받았다. 그러면서 무슨 일이시냐고 묻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벌써 그 공문에 대해서 다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내일 행정실장이 나오면 이야기해보겠다고 했다.


교감이 해야 할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다. 교무실과 행정실의 업무 핑퐁이라는 줄타기와 밀당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 3년 전 처음 교감으로 발령받았을 때는 열정이 넘쳐서 학교의 모든 부분을 내가 살피고 해야 할 것 같아 여러 가지 일에 참견을 하고 내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일을 벌이기까지 했다. 그때 옆에 계시던 선배 교감선생님이 충고하셨다. "교감선생님! 그건 행정실에서 하는 업무예요. 교감이 하는 업무가 아니에요." 지금 학교를 옮기고 생각해보니 내가 설쳐댔던 업무는 다 행정실에서 하는 시설 관련 업무였다. 내 업무도 아닌 일에 오지랖 넓게 나댔던 것이다.


특히 안전 업무가 애매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안전과 안전교육에 대한 공문과 사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는데 이것은 칼로 무 자르듯 행정실과 교무실의 업무를 명확히 자를 수 없는 것이 많았다. 항상 교육청에서는 시설 안전에 대한 부분과 안전교육에 대한 부분을 함께 아우르는 내용을 보내왔고 이것을 행정실과 교무실 누구에게 배분하냐고 물어보면 학교 실정이 다 다르므로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는 분통 터지는 답변만 하곤 했다. 오늘도 그 말 많고 탈 많은 안전 관련 공문이다.


오늘 아침 책상에 미해결인 채로 주인을 못 찾고 있는 공문을 보니 조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아~~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지? 분명히 행정실 업무인데. 선생님한테 배분이 되어 이미 접수까지 해버렸으니.... 어떡하지? 선생님들에게는 해결하겠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내심 걱정이 되었다.


먼저 8시 40분이 되어서 메신저로 행정실장이 출근했는지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메신저가 켜져 있는 걸 보면 출근하신 게 분명했다. 그래 출근하자마자 공문을 들이대면 기분 나쁠 거니까 좀 기다렸다가 10시나 11시쯤 전화해보자. 이렇게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행정실 주무관이었다.


"교감선생님! 어제 그 공문요. 실장님과 의논해 봤는데요. 행정실 게 맞고요... 저희들이 처리할게요!"

"고마워요~~"


아니 이런 양심적인 천사들을 봤나~~ 보통 이렇게 비록 잘못 배정되었더라도 접수까지 끝난 상태이고 작년에 접수를 교무실 쪽에서 했으면 내 경험상 행정실 것이 아니라고 끝까지 우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행정실에서 가져간다고!!


나는 얼른 이 기쁜 소식을 김 선생님과 인성부장에게 메신저로 전하고 실무사에게도 공문을 처리하도록 했다. 물론 김 선생님과 인성부장에게는 고맙다는 인사를 90도로 받고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 데도 말이다. 그저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행정실장님과 주무관과 함께 근무하는 행운을 만났을 뿐인데 말이다.


아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내가 뿌린 밑밥? 이 생각난다. 맛난 것이 생기면 행정실부터 챙겨서 갖다 주고... 저번에 재량휴업일에는 혼자서 행정실을 지키며 근무하는 주무관에게 점심도 사줬다. 다 이렇게 내가 윤활유를 친 덕분이 아닐까? 이렇게 아전인수격으로 맘 편하게 해석해본다. 세상 살기 어렵다. 오늘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간신히 넘어왔다. 착한 행정실장과 주무관 덕분이다 ^^























keyword
이전 15화선생님! 혹시, 천사이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