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미처 못 본 수업 동영상 파일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출근하자마자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이하고는 바로 수업 동영상을 공략했다. 오늘 오후 2시 30분에 수업협의회가 있는데 수업은 봐야지 해줄 말이 있다. 1학년 수업 동영상부터 봤다. 귀여운 녀석들! 수업 시간에도 역시 귀여웠다. 물론 가끔씩 돌발행동을 보여주는 센스까지! 1학년이지만 제법 의젓하게 수업에 참여한다. 발표도 곧잘 잘한다. 학교를 온 건 손에 꼽을 정도지만 그래도 많이 의젓해지고 이제는 학생티가 났다.
다음은 특수반 수업 동영상을 공략할 차례다. 우리 학교에는 일반 특수학급과 순회학급 2개의 특수학급이 있다. 순회학급은 장애정도가 심해서 학교에 나올 수 없는 학생들을 위해 교사가 직접 가정으로 방문해 수업을 진행한다. 우리 학교 순회학급에는 3명의 학생들이 소속되어 있다. 서류 상에서만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지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오늘 온라인 공개수업 덕분에 아이들의 얼굴과 수업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총 두 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각각의 가정에서 촬영한 두 개의 수업 동영상이었다. 첫 번째 학생은 현재 2학년 소속의 학생이었다. 학생은 눈 마주침이 안 되고 의사소통이 안 되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의자에 바르게 앉을 수는 있었다. 주의집중 시간은 오분을 넘기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선생님의 말귀는 알아듣고 책도 볼 수 있었다. 신나는 노래에 맞추어 악기도 흔들 수 있을 정도였다. 오늘의 수업 주제는 세모, 네모, 동그라미를 구분하는 것이었다. 다른 곳으로 도망가려는 학생들을 다시 의자에 앉히고 학생의 손에 세모, 네모 모양의 완구를 쥐여주면서 가르치는 선생님의 모습은 인내심 바로 그것이었다.
두 번째 학생의 수업 장면은 더 충격적이었다. 현재 3학년 소속의 남학생이었다. 장애정도가 심하여 혼자서는 똑바로 앉아있을 수 없는 아이였다. 항상 누워서 생활하는 아이였다. 거의 바깥을 나가보지 못해서 그런지 얼굴부터 시작해서 손, 발 모든 것이 하얬다. 누워서 허우적거리는 다리는 한 번도 땅에 디딘 적이 없어서 그런지 뼈밖에 없었다. 근육이라고는 붙어있지 않았다. 난생처음 내가 앉아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안고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은 힘든지 계속 낮은 소리를 질러 댔다.
"00야, 힘드니? 누워서 할까?"
다시 학생을 누이고 수업이 진행됐다. 선생님은 학생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학생은 듣는 둥 마는 둥 계속 낮은 소리를 질러댔고 방바닥을 누운 채로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선생님은 한자라도 학생에게 책을 읽어주고 보여주려고 학생을 안았다가 다시 뉘었다가. 수업이 아니라 학생과의 몸싸움의 연속이었다. 중간중간 선생님은 아이의 불편한 허리와 손을 마사지해주셨다. 아이는 안 보는 것 같아도 귀로는 열심히 선생님의 말씀을 좇는 것이 느껴졌다. 단지 몸이 말을 안 들을 뿐이었다. 학생은 한 명이었지만 40분 수업 후에는 기진맥진할 것 같았다. 수업 장면을 보는데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이런 수업을 매일 진행하시는구나!
작년 다른 학교에 근무하고 있을 때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우리 학교 특수학급에 전학 오고 싶어 하는 학생이 있었다. 한국 나이로는 중학생 나이였지만, 한국에서 학교를 다닌 적이 없어 중학교로 진학하려면 초등학교의 경력이 필요한 아이였다. 그래서 우리 학교 4학년에 편입하고 싶어 했다. 심한 중증장애로 휠체어를 타고 생활해야 했다. 밥도 혼자 먹을 수 없었고 무엇보다 용변을 가리지 못하였다.
관련 서류로 외국의 특수학교에서 보내온 생활기록부를 제출하였다. 영어로 학생의 상태와 교육 진행 상황에 대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음악에 반응을 하고 재활 마사지를 꾸준하게 받고 있으며 즐거운 노래를 들으면 손뼉을 치면서 좋아한다는 내용이었다. 서류만 읽어봐도 이 아이가 외국의 특수학교에서 얼마나 사랑받고 존중받으면서 지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담임선생님의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 학생의 편입 문제로 학력심의위원회가 열렸다. 우선 이 학생을 받아줄 것인지, 받아준다면 몇 학년으로 편입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했다. 교장선생님은 이 학생은 특수학교로 가는 게 맞다고 주장하셨다. 또 다른 교감선생님은 얘가 우리 학교에서 도대체 뭘 배울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집에 있는 것보다 학교에 와서 선생님과 친구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 학생에게는 자극이 되고 교육이 되는 것인데. 학교에 와서 즐거운 음악소리를 듣고 친구들이 수업하는 소리를 듣고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학생에게는 오감의 자극이 될 터인데. 나는 이 학생을 우리가 받아주지 않으면 누가 받아주겠냐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학교에 오는 것만으로도 이 학생에게는 큰 자극이 될 수 있고 교육이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결국엔 그 학생을 4학년으로 편입시킬 수 있었다. (나는 물론 미운 틀이 좀 박히긴 했다.ㅠㅠ)
매번 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등교하는 그 학생을 나는 매일 아침 반갑게 맞아주었다.
"00야, 왔니? 어서 와!"
비록 말은 못 하지만 환하게 웃으면서 휠체어에 누인 몸을 발버둥 치며 나에게 반응을 보여주었다. 내가 이름만 불러주어도 소리를 지르고 몸부림을 치면서 온몸으로 반가워했다. 그것이 나에게는 백 마디의 달콤한 인사말보다 정겹게 느껴졌다.
그 학생을 담임으로 맡은 선생님은 밥도 먹여주고 또 큰 볼일을 보면 그것도 매일 갈아주셨다. 결혼도 안 한 아가씨 선생님이 중학생 나이의 남자아이의 대소변 기저귀까지 갈아주었던 것이다. 싫은 내색 한번 없이 말이다. 그렇게 큰 볼일을 끝내고 나서는 휠체어를 밀고 학교를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점심 식사 후 나와 매번 마주칠 때마다 선생님은 항상 행복한 얼굴이었다. 나는 천사의 얼굴을 거기서 보고 말았다.
오늘은 두 번째 천사의 얼굴을 보았다. 사명감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천사들에 둘러싸여 근무하는 나의 직장은 바로 천국이란 말인가? 나는 천사들과 천국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