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점을 볼까?

-명리심리학과 나의 운명 사용 설명서-

by 세둥맘

"엄마, 나 점 봤어!"

요즘 한창 취업 준비로 힘들어하는 딸의 말이다.

"그래? 뭐라 그래? 취직은 할 수 있대?"

"응, 한 30분 동안 내가 궁금한 거 물어보고 하고 싶은 말 다 했더니 속이 후련했어!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어!"


큰 딸은 대학교도 삼수를 해서 들어가는 바람에 친구들은 벌써 취업을 했는데 자기는 아직도 대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많이 불안한가 보다. 요즘 부쩍 점집에 많이 다니는 눈치이다.


나도 대학교 다닐 때 실연을 했을 때는 언제쯤 결혼을 할 수 있는지 점집에 가서 물어보곤 했다. 그리고 40대가 되어 승진 시험에 자꾸 떨어지자 언제쯤 합격할 수 있을지 인터넷으로 나의 사주를 많이도 찾아봤다. 그러니 딸이 사주를 보러 가는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었다.


비단 우리 모녀만의 문제는 아니다. 명리심리학을 쓴 양창순 씨는 외국의 정신 의사들과의 토론에서 한 외국인 의사가 "한국인들은 인생에서 문제가 생길 때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는 대신 점을 보러 가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신과 의사로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는가?"라는 말을 듣고 명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나의 운명 사용 설명서'에서는 음양오행 혹은 명리학을 신비 혹은 미신 '사이'에 묶어 둔 뒤 그 핵심과 정수는 상류계급이 전적으로 독점해왔다고 했다. 대표적인 예로 정치가와 재벌을 들었다. 거의 모든 재벌들이 전용 역술가들을 거느리고 있을뿐더러, 그들의 노하우를 가문을 지키고 기업을 운영하는데 적극 활용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우리 모녀 같은 평범한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정치가 재벌들까지 사주와 명리학에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명리 심리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상은 내가 있기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의 앞날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 자신의 행복한 앞날을 소망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계획하는 모든 일이 내가 바라는 대로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불행을 가져오는 인생의 변수에서 자신만은 예외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그것이 비현실적인 소망이라는 것 또한 모르지 않는다. 남에게 일어난 일이 내게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불안하고, 불안이 커질수록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욕구에서 더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한 무의식적 불안감을 다스리기 위해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걱정 마, 잘될 거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이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위로에 증거를 찾고 싶어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점을 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명리 심리학 45-46쪽-


예를 들어 수십 년간 노력했는데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절망감에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진이 다 빠져버린 그에게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을 시간에 어떻게든 현재의 위치에서 도약할 방법을 찾아보라"라고 한들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랄 때는 차라리 "몇 년 후에는 좋은 일이 일어날 거야"라고 희망을 주면 오히려 견딜 힘을 찾는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불안한 심리를 극복하고자 하는 실존적인 노력, 그것이 '점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명리 심리학 49쪽-


요약하면 인간은 취직, 결혼, 연애와 같은 미래에 대한 불안한 심리를 극복하고 위안을 얻고자 점을 보는 것이다. 우리 딸이나 나부터 시작해서 높은 정치인, 재벌가 할 것 없이 인간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나약한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나의 운명 사용 설명서'에서는 여러 가지 운명론 가운데 '음양오행론'의 독보적인 장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인류가 고안해 낸 운명론 가운데 음양오행론은 단연 독보적이다. 무엇보다 의학과의 긴밀한 결합이 가능하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몸과 우주, 그리고 운명을 하나로 관통하는 '의-역학'이라는 배치, 다시 말해 가장 원대하고도 고매한 비전 탐구이면서 동시에 가장 구체적이고도 실용적인 용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점성술은 운명을 읽어 낼 수는 있지만 거기서 끝이다. 그다음 스텝이 없다. 그렇다면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아닌가? 운명을 안다는 건 '필연 지리'를 파악함과 동시에 내가 개입할 수 있는 '당연 지리'의 현장을 확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해진 것이 있기 때문에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우연일 뿐이라면 개입의 여지가 없다. 또 모든 것이 필연일 뿐이라면 역시 개입이 불가능하다.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30쪽-


그리고 '명리 심리학'에서는 '정신의학과 명리학이 교차하는 지점'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나는 명리학을 통해 자신을 아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큰 틀, 즉 프레임을 아는 것이고, 정신의학적으로 자신을 아는 것은 그 프레임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명리학으로는 내가 찻잔임을 아는 것이라면 정신의학으로는 그 찻잔에 담기는 것이 커피인지 차인 지, 그 차나 커피를 제 온도에 맞춰 내는지, 찻잔을 소중하게 사용하는지 등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명리학과 정신의학 모두 자신의 잠재 능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주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정신의학적 분석과 명리학적 분석을 같이 볼 때 한 개인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다. -명리 심리학 86쪽-


서양에서 발달한 정신의학과 동양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명리학은 모두 인간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의 서로 다른 양상이다. 사주도 미신이나 신비가 아닌 과학적인 인간의 이해 방식인 것이다. 이젠 점집을 다녀왔다는 말을 좀 더 당당하게 해도 되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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