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심리학과 나의 운명 사용 설명서-
세상은 내가 있기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의 앞날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 자신의 행복한 앞날을 소망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계획하는 모든 일이 내가 바라는 대로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불행을 가져오는 인생의 변수에서 자신만은 예외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그것이 비현실적인 소망이라는 것 또한 모르지 않는다. 남에게 일어난 일이 내게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불안하고, 불안이 커질수록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욕구에서 더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한 무의식적 불안감을 다스리기 위해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걱정 마, 잘될 거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이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위로에 증거를 찾고 싶어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점을 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명리 심리학 45-46쪽-
예를 들어 수십 년간 노력했는데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절망감에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진이 다 빠져버린 그에게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을 시간에 어떻게든 현재의 위치에서 도약할 방법을 찾아보라"라고 한들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랄 때는 차라리 "몇 년 후에는 좋은 일이 일어날 거야"라고 희망을 주면 오히려 견딜 힘을 찾는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불안한 심리를 극복하고자 하는 실존적인 노력, 그것이 '점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명리 심리학 49쪽-
인류가 고안해 낸 운명론 가운데 음양오행론은 단연 독보적이다. 무엇보다 의학과의 긴밀한 결합이 가능하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몸과 우주, 그리고 운명을 하나로 관통하는 '의-역학'이라는 배치, 다시 말해 가장 원대하고도 고매한 비전 탐구이면서 동시에 가장 구체적이고도 실용적인 용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점성술은 운명을 읽어 낼 수는 있지만 거기서 끝이다. 그다음 스텝이 없다. 그렇다면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아닌가? 운명을 안다는 건 '필연 지리'를 파악함과 동시에 내가 개입할 수 있는 '당연 지리'의 현장을 확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해진 것이 있기 때문에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우연일 뿐이라면 개입의 여지가 없다. 또 모든 것이 필연일 뿐이라면 역시 개입이 불가능하다.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30쪽-
나는 명리학을 통해 자신을 아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큰 틀, 즉 프레임을 아는 것이고, 정신의학적으로 자신을 아는 것은 그 프레임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명리학으로는 내가 찻잔임을 아는 것이라면 정신의학으로는 그 찻잔에 담기는 것이 커피인지 차인 지, 그 차나 커피를 제 온도에 맞춰 내는지, 찻잔을 소중하게 사용하는지 등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명리학과 정신의학 모두 자신의 잠재 능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주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정신의학적 분석과 명리학적 분석을 같이 볼 때 한 개인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다. -명리 심리학 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