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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둥맘 Jun 28. 2020

딸의 뺨을 때렸습니다.

세둥맘의 4전5기  도전기

"엄마, 그때 왜 내 뺨 때렸어?"

지금도 가끔 가다 정색을 하고 둘째가 묻는다. 지금은 대학교 3학년인 둘째가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였을 것이다. 오래전 일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마흔이 다 되어 낳은 늦둥이인 막내가 돌이 막 지났을 무렵부터 승진시험을 준비했다. 애가 셋이라고 나의 인생마저 포기할 순 없었다. 나의 시험공부를 위해 시골에 계시는 시어머니가 올라오셨다. 살림을 도맡아 하기 위해서였다. 시아버지와 생이별을 하고서 말이다. 20여 년이 넘게 해 오시던 성당 레지오(천주교 기도모임)도 탈퇴하시고, 친구분들과의 계모임도 다 정리하셨. 오로지 잘난 며느리의 공부 뒷바라지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나름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던 시어머니는 옛날 어머님들이 다 그렇듯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밖에 못 나오셨다. 평생 공부에 한이 맺히셨다. 그러다 잘난 며느리가 들어와 공부를 하겠다거나 승진 시험을 치르겠다고 하면 만사를 제치고 달려오신다. 나의 성공과 합격이 곧 어머니의 성공이요 합격이셨던 것이다.


그렇게 나의 승진 시험공부는 시작됐다. 길고 긴 여정이었다. 낮에는 직장에서 온종일 씨름하다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바로 독서실로 향했다. 그때마다 갓 돌을 넘긴 막내는 나와 떨어지기 싫어 울고불고 한바탕 난리를 부렸다. 시어머니는 하는 수없이 우는 애를 둘러업고 나를 따라나섰다. 고집이 센 막내는 한 번 울면 힘이 장사였다. 온몸을 발버둥 치면서 울다 보니 옷이 다 벗겨지고 애가 급기야는 포대기에 거꾸로 매달리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할 수 없이 업었던 포대기를 풀고 아이를 다시 안으셨다. 그러고는 어서 가라고,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가서 공부하라고, 네가 가야 안 운다 하면서 손을 훠이훠이 내저으셨다. 아파트 단지가 떠나가라 우는 막내의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나도 눈물을 훔치면서 독서실로 향했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아이에게 시어머니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그렇게 3년의 세월을 보냈다. 매번 시험에 낙방했기 때문이다. 독서실에서 제일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은 고3도 취준생도 아닌 바로 나였는데도 말이다. 그러다 4번째 시험에서는 합격자의 1.5 배수를 뽑는 1차 시험에 합격을 했다. 합격소식을 접하고 너무 기뻐 계속 눈물이 나왔다. 그러나 최종 면접에서 그만  떨어지고 말았다. 온몸의 피가 다 정수리로 몰리면서 머리가 새하얘지는 느낌이었다. 또 이런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이제는 지쳐서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모든 것에 분통이 터지고 화가 났다. 왜 나만 안 되는 걸까?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그런 찰나에 둘째가 아마 내 말을 안 들은 모양이다.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때는 단지 나의 분풀이 대상이 필요했던 뿐이었으니까 이유는 필요 없었다. 딸아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딸아이의 뺨을 후려쳤다. 딸이 쓰고 있던 안경이 퍽 날아갔다(다행히 플라스틱 안경이다. 사악한 나는 이것까지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내 손이 날아갔다. '퍽, 퍽.' 처음으로 아이에게 손찌검을 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머리의 꼭지가 돌았던 것이다. 합격한 줄 알았는데. 거의 합격했는데. 왜 나만,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오는 걸까? 둘째 딸에게 세상에 대한 분풀이를 해댔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할 말이 없다. 딸이 이렇게 물어오면.

"엄마가 미안해! 엄마는 그때 너무 힘들었어. 잠시 이성을 잃었나 봐! 미안해!"

아무리 사과해도 그 일은 딸에게 큰 상처로 남아있다. 못난 엄마다.


그리고 6개월 뒤 드디어 합격을 했다. 이번에는 별로 기쁘지도 않았다. 이미 6개월 전 1차 합격소식에 기쁨을 다 소진해서이리라. 그리고 몇 해 뒤 이제는 내가 승진시험 출제위원이 되어 합숙을 들어간다고 하니 시어머니가 더 기뻐하셨다. 나의 영광은 곧 시어머니의 영광이요 기쁨이다. 평생을 갚아도 못 갚을 시어머니의 사랑이다.


사진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016/000102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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