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발신번호가 전화기에 뜬다. 000-0000! 전화번호를 외울 정도가 되었다. 며칠 간격으로 계속 전화가 온다.
"네, 장학사님!"
"네, 교감선생님! 저~~ 그거 어떻게 되어가는지 궁금해서요!"
"네, 교장선생님께서 의지를 가지고 계셔서요. 아마 잘 될 겁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장학사님, 고생 많으시네요!"
"아니에요, 교감선생님! 감사합니다."
세금 독촉을 받는 것처럼 며칠 간격으로 계속 교육청 장학사에게 전화를 받는다. 다름이 아니라 바로 혁신학교 신청 때문이다. 교육청은 지금 혁신학교 수를 늘리고자 안달이다. 인근 시 교육지원청은 초등학교 100%를 혁신학교로 지정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며 홍보한다. 아마 여기에 자극을 받아 우리 교육지원청도 혁신학교 수를 50%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나 보다. 학교가 별로 호응을 안 하자 이렇게 장학사를 시켜 거의 매주 교감에게 전화를 돌리고 있다.
벌써 1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혁신학교는 남한산초등학교를 모태로 하고 있다. 풀뿌리운동으로 시작되었다. 몇몇 뜻이 맞는 선생님들끼리 모여 밤을 낮 삼아 토론하고 연구하면서 학교와 교실을 개혁하였다. 혁신교육의 최대 장점이자 특징은 바로 교사의 자율성이며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다. 교육을 개혁하고 혁신하려는 교사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혁신학교 신청을 할 때도 교직원의 동의율이 가장 중요하다.
교사의 자발성이 가장 중요한 혁신교육이 나아가는 방향이 요즘 어째 수상하다. 마치 드라마 피디처럼 시청률에 목숨을 거는 모양새다. 겉으로 드러나는 숫자놀음에 아주 민감해있다. 혁신학교 100%, 50% 달성! 새마을 구호를 닮았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혁신학교 수를 늘리는 거에 우리가 꼭 동조를 해야 하나요?"
지난번 교감협의회에서 옆 학교 교감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다.
"저도 혁신학교 철학에 동의하고 적극 찬성해요. 그래서 내년에는 혁신학교 신청하려고 알아보는 중이었어요. 그런데 교육청에서 장학사가 혁신학교 신청하라고 계속 메시지 보내고.... 이래도 되는 거예요?"
"........."
모든 제도와 정책이 처음에 입안될 때는 순수한 정신과 뜻으로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지만 이렇게 십 년의 세월이 흐르면 그 본질이 변질되나 보다. 혁신교육 너마저!
2년 전 촛불 개혁의 영향으로 전국은 2군데 정도만 제외하고 모두 진보교육감이 당선되었다. 민선 교육감 취지는 국민이 뽑은 교육감이지만 교육의 현장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교육의 본질보다는 자신을 뽑아준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보이는 수치에 민감하게 된다. 이것은 민선 교육감이라는 시스템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본다. 그래서 이런 민선 교육감에게 어필하려는 높으신 분들은 이렇게 학교와 죄없는 장학사를 조아댄다. 조금이라도 수치와 실적을 올리려고!
이것은 혁신교육에 역행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학교마다 전화를 해서 교감들을 조아대는 대신 어떻게 하면 교사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낼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열정 있는 교사들을 어떻게 양성하고 그들을 지원해줄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