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은 항상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를 하는 모습이다. 아빠는 항상 무언가를 열심히 공부하고,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한글 프로그램이 처음 나왔을 때 아빠는 밤을 새워 프로그램을 탐독하셨다. 그리고는 독학으로 프로그램을 다 깨치셨다. 내가 대학원 리포트 자료를 정리해서 드리면 아빠는 밤을 새워 워드 작업을 완벽하게 해 주시곤 하였다.
퇴직을 하시고는 족보 정리에 꽂히셨다. 종친회에서 아무도 나서지 않는 족보 정리를 아빠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자료 조사부터 정리까지 또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워 새로운 가계도와 족보를 번듯하게 완성하셨다.
그것도 모자라 아빠는 예절지도사 자격증 취득부터 시작해 제사 지내는 법에 대한 자료를 정리해서 그것을 엮어 책을 만드셨다. 여든이 넘으신 지금도 아빠는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실 줄 알고 무언가를 계속 연구하고 공부하고 계신다.
아빠는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알아주는 수재셨다. 시험만 쳤다 하면 1등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소학교, 중학교 모두 1등으로 졸업하셨다. 그 당시 가난한 수재들이 다 그러하듯 사범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셨다.
연이어 아빠는 서울대학교에 진학하셨다. 무슨 이유인지 자세하게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고 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다.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툭 던지셨다.
"내가 서울대학교만 졸업했어도 지금은....."
고모도 이렇게 말했다.
"너네 아빠가 왜 서울대 고만두고 내려왔는지 이해가 안 된다."
깊은 속내를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아마 가난 때문이었을 것이다. 밑으로 줄줄이 딸린 네 명의 여동생과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써의 무거운 책임감이 꿈을 포기하게 만든 장본인이었을 것이다.
내가 암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빠가 찾아오셨다. 그리고는 아픈 나를 앞에 앉혀놓고 끊임없이 말씀을 하셨다. 평상시 무뚝뚝한 아빠가 그렇게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그때 처음 봤다. 속으로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아빠가 저렇게 말씀을 많이 하시다니.
아빠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대충 이렇다. 학교 다닐 때 아빠보다 공부 못 하던 친구가 아빠보다 먼저 출세를 해서 거들먹거리던 이야기. 그런데 내가 학위를 따고 승진을 하는 것을 멀리서 그 친구들이 다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 아빠 딸내미가 얼마나 잘하는지 다들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
아빠가 돌아가시고 시계를 보니 거의 두 시간을 혼자 이야기를 하시다 가셨다. 아빠는 그 날 왜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하셨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아빠 방식의 위로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빨리 기운 차리고 일어나라는 이야기였지 않았을까? 네가 아빠의 한을 풀어주었으니 고마웠다는 이야기였지 않았을까? 그러니 빨리 툭툭 털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것을 그렇게 두 시간 동안 돌아서 돌아서 이야기하신 것이 아니었을까?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뒤 마음속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가득 차는 느낌이 들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무서운 병마를 이겨내야만 할 것 같은 용기와 의지 같은 것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 나는 아빠의 희망이었던 것이다. 아빠의 꺾인 날개를 내가 대신 달아주기를 아빠는 바라고 계셨던 것이다. 자식들을 통해서 아빠의 못다 한 한을 푸시고 계셨던 것이다. 일어나야만 했다. 툭툭 털고 병상에서 일어서야만 했다. 아빠를 봐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