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에 사는 친구가 어머니를 보러 본가에 내려왔다. 나도 반가운 마음에 오랜만에 그 친구와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요즈음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듣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정부의 의대 증원과 그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었다. 그 친구는 정부의 대규모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현재 의료 현장에서 나타나는 필수 의료 분야의 의사 부족과 열악한 지방 의료의 취약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방침대로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앞으로 고령인구의 증가로 인해 의료 수요가 확대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의사 부족으로 의사들이 지나친 고소득의 특혜를 누리고 있다면서 의사 수 확대로 공급을 늘려 의료비를 줄일 수 있고 필수 의료에도 의사들이 공급될 수 있다고 한다. 의료 분야에도 시장의 기능이 작동해서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듣고 나니 대학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시장의 실패나 정부의 실패. 민간 부문과 공공 부문의 조화. 이런 해묵은 논쟁들이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에 자리하고 있다니.
우선 의료 분야의 공공성에 대해 제도적 차이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두 나라는 미국과 영국이 아닐까 한다. 미국은 의료체계가 대부분 민간보험에 의존하고 있어 시장의 기능에 의해 작동하고 있는 반면 영국은 완전한 국가 주도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한국은 공보험을 기본으로 사보험이 이를 보완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필수 의료 분야는 대부분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어 공보험의 영향 아래 있다. 그래서인지 정부의 통제가 덜한 진료과목 쪽으로 의사들이 몰려 필수 의료 분야의 진료 공백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이 상황은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린다기보다는 의료 수가를 조정해서 유인책을 마련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듯하다. 필수 의료 분야가 사보험이 적용되고 시장의 영역에 있다면 의사 수의 증가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반면에 지방 의료 공백은 의사 수 증가로 완화가 될 수 있을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일정 정도의 절대적 의사 수의 증가는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정부안대로의 지나친 의사 수의 증가는 공보험 재정의 악화를 가져올 듯하다. 고령 인구의 증가는 의료 수요의 증가를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소득의 증가도 이어진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지만 지금의 경제성장률과 경제활동인구의 감소는 대규모의 적립금을 보유한 공적 연금에 대해서도 암울한 전망을 보이고 있는데 공보험의 재정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보기는 힘들 듯하다. 그리고 덧붙여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에 대해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법안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지금도 의료 사고에 대해 의사들이 법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처해 있지 않을 걸로 알고 있다. 이제는 의료 사고 피해자는 의사 개인이 아니라 전문가 집단이 포진한 거대 보험회사를 상대로 법적 분쟁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보험료를 필수 의료 분야가 아닌 미용 성형과 같은 분야에도 지원한다니.
지금도 대형병원들은 전공의들의 희생 속에 지난 시절을 잊고 사는 전문의들의 고소득을 창출하고 있다. 망국적 의대 쏠림 현상의 뒤에는 의사들 자신들의 불공정과 불합리도 한 번쯤은 자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의사들과 일방의 주장만을 관철시키려는 정부가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동안 환자들이 위험 속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