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자랑할 만한 친구가 있다. 물론 다분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평가한 것이다. 내가 선망하던 직업을 갖게 된 탓이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어엿한 교수님이다. 물론 그 과정에는 힘든 강사 시절이 있었다. 잘 견뎌내고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친구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다. 나도 공부를 좀 하는 편에 속했지만 이 친구는 학교 전체에서 한 자릿수 안에 들어갔다. 친구와 나는 한 동네에서 살았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친구가 좋아하는 조립식 장난감이 하나하나 방안에 진열되는 걸 보며 자랐다. 방학 때면 미뤄 둔 탐구생활과 일기를 베끼러 갔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학교는 달랐지만 우리는 여전히 단짝이었다. 나의 이름은 몰라도 그 친구와 친한 친구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다. 나는 가끔씩 그 친구의 친구로 불린 적도 있었다. 친구와 난 인근 도시의 영재학교와 일반고로 각각 진학했고 그 친구는 고등학교를 2년 만에 마치고 대학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서로 얼굴 보기 힘들어 좀 소원해졌지만 대학에 진학하고부터 고향에 오면 여전히 처음 찾는 친구였다. 서로 대학이 다른 지역에 있어 고향에서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순탄했던 친구의 학업은 처음 위기를 맞았다. 대학원 진학에 실패했고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나도 이 즈음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단기 복무를 마친 친구는 심기일전 대학원에 진학했고 나의 군 복무 기간 면회 온 유일한 친구다. 여자친구가 아닌 데도 외박이라는 특혜를 받기도 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내가 외국에 갔을 때 나에게 격려의 편지를 보내 준 고마운 친구이기도 하다. 내가 귀국해서 대학원에 다닐 때 결혼을 하고 딸을 둔 아빠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 친구의 딸은 대학생이 되었다. 고향집에 들를 때 친구와 나는 여전히 식사를 하거나 술을 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살아가는 얘기를 나눈다. 얼마 전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제 어머니 혼자서 고향집을 지키고 계신다. 아직은 친구를 고향에서 볼 수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친구의 어머니가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