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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타임즈W Feb 25. 2020

팬톤이 선정한 올해의 색 ‘클래식 블루’를 책으로 읽다

<파랑의 역사>, <블루엣>

내 일상의 행간엔 늘 ‘책’이 있었다. 바쁜 일상 속 틈틈이 읽는 책 한 권만큼 나의 워라밸 라이프를 풍요롭게 만들어준 것도 없다. 어떤 책이든 저마다의 교훈을 담고 있고, 내가 현재 처한 상황에 따라서 같은 책이라도 다른 해답을 보여준다. 미술책에서 사랑을 배우기도 하고, 에세이에서 청소법을 익히기도 한다. 오늘 내가 읽고 추천한 책을 통해 당신은 무엇을 발견할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색채연구소 팬톤이 발표한 올해의 색은 ‘클래식 블루’다. 매년 팬톤 컬러를 눈여겨봤지만 지적인 느낌의 이번 색이 유독 마음에 들었다. 짙고 어두운 네이비 블루보다는 경쾌하고, 밝고 연한 스카이 블루보다는 차분하다. 컬러 칩을 댄 것처럼 클래식 블루 색과 일치하는 두 권의 책을 발견했다. 두 책 모두 파란색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지와 사랑’, ‘냉정과 열정’, ‘이성과 감성’처럼 극단적으로 다른 매력이 느껴져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 권만 읽을 때보다 두 권을 함께 읽을 때 서로가 더 빛이 난다고 할까. 파란색에 대해 집요하고 끈질기게 파고드는 두 권의 책을 읽다가 문득 행복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파란색의 역사를 안다고 해서 먹고 사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전혀 쓸모가 없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 몰두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유희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란색이 사랑받게 된 역사를 소개하는 '파랑의 역사'. / 사진=민음사


파랑의 인기 비결을 파헤치다, <파랑의 역사>


팬톤은 클래식 블루에 대해 “정신적 평화와 평온을 가져다주며, 변화하는 시대에 안정적인 기반을 만들고자 하는 우리의 염원을 내비친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러한 설명에 크게 의문을 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평화, 평온, 안정 같은 단어들이 파란색과 이질감 없이 잘 어울린다. 하지만 과거에도 그랬을까? 사실 색에 대한 편견과 변화의 역사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놀랍게도 <파랑의 역사>에는 파랑의 족적에 대한 연구 결과가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 가득히 서술되어 있다. 중세 문장학과 서양 상징사 연구의 일인자로 꼽히는 저자 미셸 파스투로는 사회, 종교, 예술 등의 관점에서 파랑의 역사를 쫓는다. 가히 논문에 버금갈 만큼 방대한 자료 덕분에 사실 누구나 쉽게 읽을 만한 책은 아니다. 파란색의 감수성에 끌려 무심코 집어 들었다가는 책꽂이를 장식하는 예쁜 파란색 책에 그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를 좋아하거나 지적 호기심이 풍부한 이들에게는 더없이 만족스러운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책의 주된 스토리는 ‘이름조차 없던 파랑이 모두의 사랑을 받게 된 역경의 스토리’인데, 무명 신인이 한류스타가 되는 과정만큼이나 흥미롭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에 파란색이 인기가 없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선사 시대까지 유지되던 기본 3색은 ‘적색, 흰색, 검은색’이었다. 고대까지만 해도 파랑은 ‘보이지 않는 색’으로 각광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로마인에게는 ‘야만인의 색’, ‘죽음의 색’으로까지 여겨지며 금기시되었다. 로마인은 파란색을 가리키는 정확한 단어조차 만들어 내지 않았으며, 미술과 의상, 일상생활 전반에 이르기까지 파랑을 사용하지도, 언급하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파란색은 ‘악플보다 무서운 무플’ 상태였다. 하지만 로마 제국이 붕괴하고 중세가 시작되면서 파랑은 뜻밖의 운명을 맞이한다. 유럽의 패권을 쥔 게르만족, 켈트족 등 새로운 왕국의 주인들은 고대 로마에서 숭앙 받던 붉은색 못지않게 파란색을 애용하였으며, 성모 마리아와 제왕을 의미하는 색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괄목할 만한 수준의 가치 절상을 이루게 된다. 이후 종교 개혁, 산업 혁명 등을 거치면서 파랑의 위상은 점점 높아졌고 낭만주의가 득세하며 국가와 시민, ‘베르테르’와 ‘푸른 꽃’의 색채로 발돋움한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블루스’와 ‘청바지’, 젊음과 자유를 의미하는 색채가 되었으며, UN과 지구의 색으로까지 받아들여진다.


파란색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늘의 청명함과 바다의 차가움에도 영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 파란색은 따뜻한 색으로 통했으며, 17세기에 이르러서야 점차 ‘차가워지기’ 시작한다. 사실 고대와 중세 사회에서 물이 파란색으로 인식된 일은 거의 없었다. 과거 그림들에서 물은 거의 모든 색으로 표현됐으며 상징적인 물의 색으로 초록이 꼽히곤 했다.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크레파스에 ‘살색’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색의 상징 역시 수많은 사회적 편견과 주입식 교육이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사실에 다시금 놀라게 된다. 책을 읽고 나면 무지개를 이루는 모든 색의 역사가 궁금해진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것에 의문을 제시하는 태도야말로 <파랑의 역사>가 건네는 메시지다.



파란색에 관한 240개의 단상을 엮은 '블루엣'. / 사진=사이행성


파랑에 대한 가장 뜨거운 고백, <블루엣>


고백하건대,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순전히 표지 디자인 때문이었다. 책을 보는 순간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책을 처음 펼치고는 적잖이 당황했다. 책에는 목차가 없다. 1번부터 240번까지 번호가 붙은 파란색에 대한 짧은 에세이들이 이어진다. ’색깔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면서 시작하면 어떨까’라고 시작되는 이야기는 갑자기 지난 섹스를 추억하다가, 몇 달 전 꾼 꿈의 단상을 쫓기도 하고, 괴테가 쓴 <색채론>을 소개하다가, 사고를 당한 친구의 사연에까지 이른다. 각각의 이야기들 사이에는 언뜻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어 보인다. 처음에는 파란색 마약을 마신 이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기억나는 대로 쓴 메모들을 두서없이 건네받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저자의 리듬과 템포에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그 모든 이야기들이 파랑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매력적인 문장들에 마음을 사로잡히면 파란색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블루엣>은 2009년 미국에서 초판 출간된 이래 북포럼이 꼽은 ‘지난 20년간 출간된 최고의 책 10권’에 선정되며 지금까지도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독특한 주제와 글쓰기로 전미비평가협회상을 받는 등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이자 비평가인 매기 넬슨은 시와 산문, 에세이와 역사, 예술과 철학의 범주를 자유롭게 오가는 글쓰기의 신선한 형식을 보여준다. 파란색이 호명해낸 마르그리트 뒤라스, 앤디 워홀, 비트겐슈타인, 뉴턴, 괴테 등 예술가와 철학자들의 이야기들이 매기 넬슨의 개인적 경험과 교차하며 매우 독특하면서도 미학적인 글쓰로 탄생했다. 논증이 뒤집히는 전복적인 글쓰기, ‘독자 발밑의 카펫을 잡아 빼는 비트겐슈타인의 글쓰기’라는 평과 함께, 에세이의 한계를 문학 비평으로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저자 머릿속에 든 방대한 지식과 사유도 놀랍지만, 나는 이처럼 생생하고 대담하고 솔직하게 파란색을 표현한 문장들을 아직까지 만나본 적이 없다. 모든 글씨가 파란색인 것도 한몫하겠지만, 읽는 내내 파란색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 ‘블루는 식욕을 빼앗을지는 몰라도 다른 욕구를 도발한다. 예를 들어, 손을 뻗어 소담스레 쌓인 안료를 흐트러뜨리고 싶다든가, 손가락이 파랗게 물들면 그 손가락들로 세상을 물들이고 싶다든가 하는, 파란 가루를 풀어 파랗게 물든 물속에서 헤엄치고 그 손가락으로 젖꼭지를 문질러 파랗게 물들이고 성모상의 드레스를 칠하고 싶은 그런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이 문장을 읽는 동안 우리는 원초적인 파란색과 마주치게 된다. 각각의 짧은 이야기 사이의 행간을 즐기며 직접 읽어야만 ’파란색으로 수놓은 사랑, 상실, 희망에 관한 가장 강렬하고 시적이고 아름다운 책’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일리타임즈W  에디터 김수영 dtnews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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