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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타임즈W Feb 25. 2020

힘센 여자들이 운동장을 되찾는 법

내 일상의 행간엔 늘 ‘책’이 있었다. 바쁜 일상 속 틈틈이 읽는 책 한 권만큼 나의 워라밸 라이프를 풍요롭게 만들어준 것도 없다. 어떤 책이든 저마다의 교훈을 담고 있고, 내가 현재 처한 상황에 따라서 같은 책이라도 다른 해답을 보여준다. 미술책에서 사랑을 배우기도 하고, 에세이에서 청소법을 익히기도 한다. 오늘 내가 읽고 추천한 책을 통해 당신은 무엇을 발견할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올해도 우리는 운동을 하리라 다짐한다. 운동이라고 적고, 살 빼기라고 읽는다. 몇 킬로그램을 어떻게 뺄지 고민하는 당신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나는 왜 살을 빼야 하는가? 그것은 나를 위한 욕망인가, 남에게 잘 보이려는 욕망인가, 남이 만들어준 욕망인가? 나는 당신이 스스로를 위해 운동하길 바란다. 거울 속에 비친 몸을 부정하는 대신 땀 흘리고 먼지를 뒤집어쓰며 동료들과 교류하는 희열을 맛봤으면 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운동은 마른 몸을 향한 다이어트로 귀결되곤 했다. 이 문장이 과거형인 이유는 최근 서점가에 나타난 변화에 있다. 2018년부터 눈에 띄게 늘어난 운동 에세이의 화자는 모두 여성이며, 그들은 체중계에 올라설 생각이 없다. 책만 파고들던 저질 체력의 에디터가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하는 ‘마녀체력’, 축구하는 것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인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읽다 보면 남성들에게 빼앗긴 운동장을 되찾고 싶은 생각에 가슴이 들뜬다.

남성 위주의 헬스 문화에 대해 꼬집은 책 '살 빼려고 운동하는 거 아닌데요'. / 사진=휴머니스트

‘살 빼려고 운동하는 거 아닌데요’는 좀 더 노골적으로 운동센터 안과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성 불평등에 대해 꼬집는다. 헬스장의 남자들은 살 뺄 생각이 없다는 저자에게 ‘아이고, 힘들어! 나도 날씬하게 태어날걸!’이라는 추임새를 넣고, 레깅스를 입고 스쿼트하는 여성의 뒷모습을 노골적으로 쳐다보는가 하면, 생리 중이라는 말에 못 볼 걸 본 표정이 되어버린다. 여자라는 이유로 살 빼기를 세뇌당하고, 운동센터에서조차 차별당했던 지난날들을 떠올리다 보면 예쁜 여자 대신 힘센 여자가 되고 싶어진다. 저자는 무례했던 헬스 트레이너를 변화시켰어야 했나 고민하다가도, “살아갈 힘도 없어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헬스장에서까지 그런 추가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불가능했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대신 여성들끼리 새로운 판을 짜자고 제안한다.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약자인 여성들이 연대를 통해 힘을 키워야 한다.


여성과 운동에 관한 실질적 조언을 담은 '여자는 체력'. / 사진=메멘토

운동하고 싶은 마음은 불끈불끈 솟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여자는 체력’을 펼칠 때다. 유년시절, 뚱뚱하고 조신하지 못하다고 비난받던 저자는 맹목적인 다이어트에 빠지게 된다. 살을 빼기 위해 찾아간 격투기 도장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성폭력과 홍일점에 대한 배려랍시고 행해지는 배제를 목격하고 좌절한다. 제대로 된 운동장을 10년 넘게 찾아 헤매던 그녀는 결국 직접 운동 코치가 되기로 결심한다. 근육 운동부터 자기방어까지 그녀가 전하는 단련법은 매우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다. 당장 그녀를 스승으로 모시고 무딘 나의 몸을 맡기고 싶어진다. 점수로 순위를 가르는 대신 ‘최선’을 측정하는 체육시간, 실패를 자책하기보다는 그다음을 고민하는 다이어트,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운동에 대해 고민하는 그녀는 강인하면서도 유연하고 지혜롭다. 운동장에서 여자를 배제했던 남성들처럼 나 역시 장애인의 존재 자체를 잊었다는 사실에 폐부를 찔린 기분이었다.


책의 가장 빛나는 지점은 끝부분에 있다. 어떻게 나를 방어하고 건강하게 살 것인가에 대한 조언이다. ‘나이 들어도 매일 꾸준히 운동하세요’라든지 ‘호신술을 배워 나를 지키세요’라는 말은 실질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자는 진정한 노후대비는 나이 들어도 꾸준히 운동할 시간을 만들 수 있는 경제력을 키우는 것, 그리고 혼자 살아도 도태되지 않고 마음이 외롭지 않도록 꾸준한 사회 교류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또한 성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고, 일상에서 끊임없이 마주치는 차별과 혐오에 대응하도록 꾸준히 훈련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발차기 같은 격투 훈련뿐 아니라 지하철에서 나를 불쾌하게 보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보는 것, 누군가의 부탁을 정중하면서도 명확하게 거절하는 법, 평소 앉거나 걸을 때 바른 자세를 익히는 차원의 훈련이다. 자신감 있고 당당한 기운을 눈빛, 자세, 걸음걸이에서 보이는 ‘태세 갖추기’. 이것이야말로 근육 단련과 함께 우리가 키워야 할 힘이다.




데일리타임즈W 에디터 김수영 dtnews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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