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다양한 꿈이 있었다. 멋진 뮤지컬 배우 아니면 자유로운 예술가? 살다 보니 회사와 집만 오가는 그런 삶이 되었다. 회사가 무료해질 때쯤 뭘 하면 재밌을까 고민하다가 직장인 뮤지컬 동아리를 시작했다. 그 후로 직업이 되지는 못했지만 어렸을 때 꿨던 꿈을 소소하게 이룰 수 있는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뭐 하고 놀까?' 아니 '뭘 하면 더 재미가 있을까?'를 고민하는 30대 대한민국 평범 직장남의 더 즐거운 횰로 도전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한다.
해외에서 '당구'는 우리와 180도 다른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다. 고전 영화나 옛 자료를 보면 신사들이 당구를 즐기는 모습이 묘사되거나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영국에서는 귀족들의 사교 게임으로 포켓볼이 인기를 끌었고, 벨기에에서는 우리나라의 태권도처럼 당구가 국기며, 현재까지도 귀족 스포츠로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당구장은 1995년 생활체육 시설로 바뀌기 전까지 유흥오락 시설이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담배 연기가 자욱한 당구장은 현금이 오가는 도박판이나 비행 청소년의 일탈 장소로 묘사되곤 했다. 학창 시절 좀 노는 학생처럼 보이고 싶어서 몇 번 갔던 기억에 비춰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많이 과장된 것 또한 사실이다.
어서 와, 당구는 오랜만이지? 승부욕이 불러일으킨 새로운 취미
얼마 전 퇴근 후 회사 근처 친구들과 가볍게 당구 한 게임 치러 갔다. 요즘 당구장의 가장 큰 변화이자 장점은 흡연실이 생겼다는 것이다. 가장 싫어하는 담배 연기가 없어졌을 뿐인데 이제 더 이상 유해업소의 느낌이 아닌 남녀노소 건전한 스포츠를 즐기는 곳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가볍게 한두 게임을 시작했다. 몇 번의 패배에 지갑은 가벼워졌고 승부욕에 시동이 걸렸다. ‘승자는 세면대로, 패자는 카운터로, 억울하면 한 게임 더’라는 말이 있다. 주로 당구장 벽에 붙어있는 문구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 그리고 도전정신을 위트 있게 잘 나타냈다. 이때부터 당구에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멋지게 이기고 세면대로 가서 친구들에게 약을 올리고 싶었지만, 계획은 대 실패. 그 이후에도 연속된 패배로 나는 좌절하고 말았다.
우리는 스포츠의 불확실성을 이야기할 때 공은 둥글다고 말한다. 당구공은 매우 둥글지만, 확실성이 담보된다. 각을 재고 두께를 조절해 계획대로 움직일 때 승리의 확률이 높아진다. 직관적인 감도 중요하다. 이 두 개의 밸런스가 맞춰질 때 최고의 결과를 낸다. 가설을 세워 결정하고 실행하여 결과가 맞았을 때의 쾌감, 실패를 통해 얻어지는 소중한 교훈. 이런 일련의 담금질과 노력이 곧 실력이 된다.
패배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다시 가설과 계획 그리고 실행을 반복하면 언젠간 승리한다. 문득 이런 모습이 회사 생활, 나아가서 인생과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구에서 인생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다.
당구에서 배운 회사 생활 손자병법
당구라는 게임의 규칙은 매우 간단하다. 수구(공)를 쳐서 연속적으로 목표(적구) 2개를 맞추면 된다. 규칙은 간단하나 과정은 복잡하다. 두께, 힘의 세기, 각도, 공의 회전량 등 여러 가지 조합을 통해 결과물을 낸다. 이 모든 조합을 결정하고 감을 더해 실행에 옮긴다.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된 실패에도 감으로 친다고 하면 정답이 아니다. 실패를 통해 배워야 한다. 공을 1/2두께로 맞추면 45도로 공이 흘러간다. 이 사실을 깨닫고 안 깨닫고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이 깨달음이 시작도 하기 전 확률을 50% 이상 상승시키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실패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실패의 감으로 다른 도전을 하는 것보다 실패의 보완점을 조금 더 구체화하면 회사 생활에서 더욱 발전할 수 있다. 그게 바로 실력이다.
당구를 치다가 상대방에게 쉬운 공을 내어줄 때 우리는 흔히 ‘밥’ 줬다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어디 쉬운 공만 있겠는가? 게임을 하다 보면 정말 어려운 공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럴 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어려운 공도 내가 먹으면 그게 ‘밥’이 된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도저히 안될 것 같은 일이 종종 생긴다. 남들이 모두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들이다. 근대 왜 내가 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판단을 남들에게 맡길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 있는 목소리를 내자. 그 목소리에 상급자의 허락이 떨어지면, 그건 혼자만의 책임은 아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도전하는 순간 조력자가 생기고 일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며 성공에는 더욱 가까이 다가가 있을 것이다.
당구의 비속어 중 ‘갠세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말의 견제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당구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게임이다. 승부에 목이 마른 친구들은 상대방의 집중력을 흩트려 놓는 말로 갠세이를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기세로 눌러야 한다. ‘길이 어렵다’, ‘절대 못 칠 것 같다’는 말들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회사는 비밀이 없는 소문의 집단이다. 내 의도와 다르게 표현과 행동이 왜곡될 수도 있고, 이미 선입견을 가지고 나를 대할 수도 있다. 당구에서나 회사에서나 이런 말들에 휘둘려선 안 된다. 본인만의 소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사람과 일을 대한다면 언젠가는 본인만의 스타일이 완성된다.
스트레스 풀고 인생 교훈도 얻고, 당구가 선물한 워라밸
‘당구를 통해 무슨 교훈까지 얻겠느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번 경험해보면 느끼게 될 것이다. 그간 당구 생활에 비춰볼 때 장점이 참 많았다. 우선 퇴근 후 친구들과 당구를 치며 스트레스도 풀고 워라밸도 즐기고 회사 생활에 대한 교훈까지 얻었으니 말이다. 당구에 대한 열정으로 동네 당구장을 찾아가 연습에 매진했다. 주변에 네모난 것들이 모두 당구대로 보이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 길을 보곤 했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만족을 느꼈다. 이제는 항상 나를 이겼던 친구들과 얼추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 가끔 이기기도 하는 성취감까지 맛보게 되었다.
당구에 아직도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다면 떨쳐 버리자. 퇴근 후 당구장에 들러 한 게임 쳐보는 것도 워라밸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친구들과 매일 술만 마시고 즐길 거리가 없었다면 당구 게임을 함께 해보는 건 어떤가. 돈독한 우정은 물론, 회사 생활, 나아가 인생의 교훈을 당구에서 얻을지도 모른다.
데일리타임즈W 박현호 기자 dtnews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