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다양한 꿈이 있었다. 멋진 뮤지컬 배우 아니면 자유로운 예술가? 살다 보니 회사와 집만 오가는 그런 삶이 되었다. 회사가 무료해질 때쯤 뭘 하면 재밌을까 고민하다가 직장인 뮤지컬 동아리를 시작했다. 그 후로 직업이 되지는 못했지만 어렸을 때 꿨던 꿈을 소소하게 이룰 수 있는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뭐 하고 놀까?' 아니 '뭘 하면 더 재미가 있을까?'를 고민하는 30대 대한민국 평범 직장남의 더 즐거운 횰로 도전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한다.
난생처음 시 낭송과 마주하다
낯설었다. 처음 시 낭송을 접했을 때 느낌이다. 인턴으로 시작해 운 좋게 들어간 첫 회사의 첫 업무가 시 낭송 대회 담당자였다. 재능교육의 시 낭송 대회는 국내 최대 규모로, 시낭송 협회와 함께 운영한다. 협회는 대회에서 배출된 시 낭송가들로 구성, 시 낭송 공연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입사 후 일련의 업무 중에는 협회 지원업무가 있어 월례회를 참관해야 했다. 그곳에서 처음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시 낭송가들의 시 낭송을 듣게 되었다. “이게 뭐지? 이런 문화가 있었나?” 매우 품격 있어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오글거리기도 했다. 그게 바로 시 그리고 시 낭송과의 첫 만남이었다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가 왔을 때 읽었던 법정스님의 시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 동영상=박현호 기자
배운 게 도둑질, 시에서 힐링 포인트를 찾다
입사 후 첫 1년 시 낭송 전국대회 담당자로 전국을 누볐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목포, 제주까지 5월부터 10월까지는 매주 출장을 다녔다. 고은, 김용택, 도종완, 나태주, 신달자 시인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시인을 만났다. 당시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SNS에서 한창 유행했었다. 전문은 이렇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한 번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나태주 시인과 대회 담당자들이 저녁 먹는 자리가 있었다. 당시 한창 연애 초기였는데 문득 시인의 손으로 직접 쓴 시를 선물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 식사 후 조심스레 부탁했는데 흔쾌히 적어 주셨다. 너무 좋았고 따듯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은 잠시, 주중에는 대회 준비로 주말에는 대회로 매주가 고달팠다. 주말도 반납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쳐만 갔다. 심지어 아프기까지 했다. 당시에는 아무리 좋은 시와 시인을 만나도 별 감흥이 없이 그냥 일로만 느껴졌다. 그러다 회사를 그만 두고 다른 일을 하던 중 문득 그 당시 즐겨 듣던 시를 접하게 되었다. 아니 이렇게 좋을 수 가 있을까? 왜 그땐 몰랐을까? 도종환 시인에 ‘내 안의 시인’의 한 구절처럼 내 안에는 시인이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힘들고 고달픈 회사생활로 인해 그 감성이 숨어있었는지도… 힘든 시기에 무의식적으로 내 주변에 맴돌았던 시가 이제는 가끔 쉼과 힐링이 필요할 때 마음에 울림으로 다가오곤 한다.
시나브로 우리 곁에 있었던 시
세계 역사를 돌아보면 시를 좋아하고 사색을 좋아했던 희랍은 철학을 남겼지만, 돈과 노예와 권력을 좋아했던 로마는 폐허만 남겼다. 프랑스인들에게는 봄이 아예 시와 연애하는 계절이다. 매년 3월이면 한 달 내내 ‘시인들의 봄’이란 전국 규모 시낭송행사와 함께 다양한 주제로 8000여 개의 시 축제가 열릴 정도로 대중화 됐다. 하지만 우리에게 아직 시 문화는 조금은 낯설고 생소하다. 알고 보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나브로 우리 생활 곳곳에 많이 퍼져 있었지만 말이다. KBS 1TV에서는 <낭독의 발견>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었고, 시 관련 드라마와 영화도 생각보다 많다. tvN에서 방영했던 일상을 시(詩)와 함께 그려낸 감성 드라마 <시를 잊은 그대에게>, 2017년 개봉작 <시인의 사랑>까지 말이다. 혹시 시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가볍게 한 두 편 보는 것도 추천한다. 차츰 시와 친숙해지면 꼭 시를 읽거나 낭송하지 않아도 감정에 맞는 좋은 시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스트레스 받은 직장인의, 슬기로운 시 문화 생활
직장생활은 스트레스와의 전쟁이기도 하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며 우울, 불안, 무기력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어 힐링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 읽기, 나아가 시 낭송을 추천한다. 경험을 통해 이야기 해보자면, 우선 자신의 구체적인 감정을 초록창에 적고 덧붙여 시 추천을 검색해 보자. 예를 들어 ‘비 오는날 촉촉한 감성 추천 시’, ‘무기력할 때 읽으면 좋은 시’ 라고 말이다. 검색된 시 중 자신에게 맞는 시 한 편을 고른 뒤 가사 없는 잔잔한 음악을 틀고 따듯한 차를 마시며 읽어보자. 점차 차분 해지며 스트레스가 완화될 것이다.
감정이 살아 움직이는 시는 나의 삶을 한결 윤택하게 해주었다. 날씨와 계절 변화 혹은 기분에 따라 시를 찾다 나와 꼭 맞는 시를 발견하고 읽었을 때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내 기분을 시가 복 돋아주기도 하고 달래주기도 하는 것 같았다. 좋은 구절이 있다면 몇 번이고 되뇌이곤 했다. 더 나아가 가끔은 직접 읽어보기도 한다. 이렇게 한 두개 쌓인 시가 어느새 감정의 자산이 됐다. 시 읽기, 시 낭송이 그리 거창한 건 아니었다.
시 낭송은 가슴으로 낭송하되 자연스러워야 한다.
시 낭송을 도전해 보고싶다면 어디서부터 해야할까? 시 낭송가 지인은 이렇게 조언한다. 시 낭송은 목소리로 하는 것이 아니며 가슴 밑바닥에서 울려 퍼지는 영혼의 소리, 울림의 소리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언어가 아닌 내 언어로 할 때, 자기의 감정과 삶의 궤적이 시에 녹아들도록 할 때, 비로소 본인 스스로도 만족 할뿐 아니라 듣는 이에게 감동을 전해줄 것 이라고 말이다.
시 문화는 어쩌면 지금 시기에 꼭 필요할지 모른다. 거친 말보다 아름다운 말, 저속한 말보다는 우아한 말, 딱딱한 말보다는 부드러운 말을 통해 자극적인 것들을 한 단계 순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예민해져 있는 요즘, 조금은 생소하지만, 나의 정서를 아름답게 가꾸어 줄 수 있는 시 문화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데일리타임즈W 박현호 기자 dtwnews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