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다양한 꿈이 있었다. 멋진 뮤지컬 배우 아니면 자유로운 예술가? 살다 보니 회사와 집만 오가는 그런 삶이 되었다. 회사가 무료해질 때쯤 뭘 하면 재밌을까 고민하다가 직장인 뮤지컬 동아리를 시작했다. 그 후로 직업이 되지는 못했지만 어렸을 때 꿨던 꿈을 소소하게 이룰 수 있는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뭐 하고 놀까?' 아니 '뭘 하면 더 재미가 있을까?'를 고민하는 30대 대한민국 평범 직장남의 더 즐거운 횰로 도전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한다.
옛말에 ‘똥’ 차가고 ‘벤츠’ 온다는 말이 있다. 이 문장은 많은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남자의 부와 명예 그리고 잘 다듬어진 외적 이미지까지 말이다. B사의 똑똑한 마케팅 전략이긴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 말을 부인하지 않는다. 스페인어에서는 남성명사 앞에는 관사 EL, 여성명사 앞에는 LA가 붙는데, 차 앞에는 EL이 붙는다. 차를 남성명사로 구분한 것이다. 물론여자들도 차를 많이 몰지만, 차에 대한 애정이나 열정 만큼은 남자가 더 열렬하다. 차는 남자를 상징하는 물건이요, 남자는 차고, 차는 곧 남자다.
물론 나도 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야흐로 2010년에 1년 동안 회사생활을 통해 열심히 차곡차곡 모은 돈과 집에서 약간의 도움을 받아 내 나이 스물일곱 살에 첫차를 살 수 있었다. 처음에는 실감이 나지 않아서 일하다 말고 잠깐 나가서 보기도 하고, 운전하지 않는 날에도 차에 가서 음악을 듣기도 했다. 남자의 최고의 장난감이 차라는 말이 실로 맞는 말 같았다. 어느덧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가까운 지인에게 추억이 담긴 소중한 차를 팔게 됐다. 뚜벅이 생활이 불편하긴 했지만 그럭저럭 잘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이야기 도중 솔로로 꽤 오랜 시간을 지낸 친구 A가 “명품 옷과 신발로 이성에게 어필해 보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말을 들은 친구 B가 매우 빠르게 그리고 심플하게 답했다. “그냥 차를 바꿔.” 그날부터 친구 A는 외제 차 매장을 수시로 드나들기 시작했다.
한 번은 친구A와 외제 차 매장에 함께 가게 되어 호기심에 고급 중형세단에 앉아 보았다. 아뿔싸 이건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긴 느낌? 프리다 칼로의 작품세계 마냥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때부터 다시 차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2차 성징을 겪는 사춘기 소년처럼 가슴이 뛰기 시작한 것이다.
차를 구매하는 다양한 방법
남자들이 차를 사기 전 한 번씩 검색해 보는 글이 있다. 바로 ‘연봉별 차량’이다. 가령 1000만 원대 연봉자라면 따릉이•걷기•지하철•버스를, 1억 대 연봉자라면 벤츠 E 클래스, 포르쉐 등 구간별로 타야 할 차량을 친절하게 소개한 글이다. 국산 차부터 외제 차까지, 신차부터 중고차까지, 종류도 브랜드도 다양하다. 선택의 폭이 넓지만, 자산에 비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고급 외제 차를 사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삶에 차가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여 ‘카푸어’가 돼도 괜찮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내가 감당 가능한 선에서 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차를 이리저리 알아보면서 얻은 노하우라면, 일단 신차는 국산•외제 차 모두 프로모션을 잘 살펴봐야 한다는 점이다. 월별 할인율도 다르고 몇 개월 할부가 되는지, 보증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외제 차의 경우 보증기간이 끝나면 엄청난 수리비가 나올 수 있다는 것도 간과해선 안 된다. 역시 외제 차를 타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신차가 부담스럽다면 중고차도 괜찮다.
중고차 시장에서 딜러 하면 ‘사기꾼’ 이미지가 강하다. 차에 관해 잘 모르면 엄청난 바가지를 씌울 것 같은 공포감이 있다. 차를 알아보며 대표적인 중고차 시장 몇 군데를 둘러봤다. 국산 차 위주로는 ‘장한평 중고차 시장’, 외제 차로는 양재동에 있는 ‘서울 오토갤러리’다. 처음 장한평 중고차 시장을 방문했을 때 내가 만난 딜러가 좀 험상궂었다. 그래서일까? ‘여기서 사면 망하겠는데?’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에 반면 양재동 오토갤러리는 훨씬 체계가 잡혀 믿음이 갔다. 인터넷 업체도 많다. SK엔카, 케이카 등 말이다. 이곳저곳 알아본 결과 차에 대해 박학다식하지 않으면 대기업 브랜드를 이용하는 편이 훨씬 낫다. 우선 SK엔카는 각 중고차 대리점들의 매물을 모아서 보여 주지만 ‘엔카 보증제도’가 있어 다소 안심할 수 있다. 이도 무섭다면 ‘케이카’를 추천한다. 케이카는 아예 중고차를 직접 매입해 파는 직영점이며 일정 비용을 내면 최대 1년까지 보증해 준다. 또한 완납 시 3일 동안 타보고 환불할 수도 있다. 중고차 시장도 이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차알못’ 이라면 이런 대기업 브랜드 제품을 추천한다.
즐겁지만 고민의 연속, 내 차 고르기 탐구생활
나는 무슨 차를 구매해야 할까? 예전에는 K5를 몰았다. 당시 3000만원이라는 나름 거금을 들여 샀다. 10년 동안 탔으니 1년에 300만원 정도 든 셈이다. 추억도 많고 잘 탔으니 아깝다는 생각은 없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지금은 어떻게 기준을 잡아야 할까? 연봉별 추천 차가 있긴 하지만 사실 큰 의미는 없다. 100만원을 벌더라도 모두 투자하면 그 만큼좋은 차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연히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따라온다. 저축, 옷, 신발, 전자기기, 생활비 등이다. 나만의 기준이 필요했다.
초기 저축해둔 돈으로 선수금을 늘리고 월급의 1/4 정도를 할부로 차에 투자하기로 했다. 그리고 기왕사는 거 외제 차로 사고 싶었다. 3000만원대로 예산을 짜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이 금액이면 중고 외제 차로는 3~4년 된 준중형의 벤츠 C클래스, 4~5년 된 중형의 BMW5 시리즈와 아우디 6시리즈를 살 수 있다. 기준은 이렇게 쉽게 정할 수 있지만, 결정은 항상 미궁에 빠지고 만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인데 지를까?’, ‘아니야 차곡차곡 돈을 모아 미래의 살림에 보태야지’ 이 두 가지생각이 마치 선과 악의 대결처럼 매번 머릿속을 다툰다. 어떤 이는 결혼 전 30대 중반인 지금이 구매 적기라며 구매를 부추기기도 하지만, 명분보다 실리를 중요시해온 내 삶에서 그리 쉬운 선택은 아니다. ‘언젠가 이 고민도 끝나겠지?’ 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요즘도 여전히 고민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친구와 차를 알아보던 중, 삼각별이 설레는 벤츠 럭셔리 세단의 수려하고 늘씬한 모습을 보며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남자라면 한 번쯤은 타봐야 하는 거 아냐?” 그러나 곧 “당장 사면 재미없지”라고 자기 합리화하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성을 만나기 위함이든, 차가 좋든, 이제 차는 단순히 이동 수단을 넘어 가치관을 표현하는 수단이 됐다. 멋진 드림카를 타고 다니는 내 모습, 여친을 데리러 갈 때 자동차 등장으로 여친 친구들 시샘과 더불어 알 듯 모를 듯한 여자친구 눈빛에서 느껴지는 ‘남자친구 참 잘 뒀네’라는 표정을 상상하면 그 자체로 기분이 좋아진다. 아마 모든 남자가 그럴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이곳저곳 사이트에서 가격을 따져보며 ‘살까 말까?’ 늘 고민하는 비루한 월급쟁이지만 차를 알아보는 것 자체가 나에겐 워라밸이었다. 열심히 살아야 할 원동력이기도 하다. 혹시 돈에 관해, 일에 관해 즐거운 상상의 동기부여가 필요한 직장인이 있다면 한 번쯤 꿈꿔본 차량을 직접 사기 위해 알아보는 건 어떨까?
데일리타임즈W 박현호 기자 dtnews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