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효녀’의 셀프 플라워박스 만들기

by 데일리타임즈W
커피 한잔하면서 수다를 떨 수도 있고, 운동하며 땀으로 진한 스트레스를 배출할 수도 있다. 그 밖에 일과 일상의 온도 차를 줄이기 위해 소소하게 퇴근 후에 할 수 있는 것으로 무엇이 있을까? 혼술, 혼밥, 혼영…. 요새 혼자 하는 게 유행이라는데? 평소 혼자 얕고 넓게 배우기 좋아하는 이 과장이 퇴근 후 취미 탐색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자 한다.


5월 가정의 달은 유리 지갑 직장인에겐 파산의 달이 되기도 한다. 챙겨야 하는 공적 기념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오늘은 전국의 부모님들이 기대하는 어버이날이다. 일 년에 한번씩 나타난다던 전설의 ‘연간 효녀’는 10여 년 전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는데, 애석하게도 그날은 ‘어버이날’이였다. 부모님에게 그럴싸한 선물은 못 해 드릴 망정 의도치 않은 ‘걱정’을 선물해 드린 격이다. 그 일이 항상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던 연간 효녀는 일을 시작한 이후로 매년 이맘때 쯤이면 어떤 선물을 드려야 할지 고민됐다. 지금까지 먹여주시고 재워주신 부모님의 크나큰 은혜를 어떠한 것으로도 갚을 순 없지만, 무심히 넘길 순 없지 않은가? 부모님은 ‘너희들만 건강하면 된다.’며, 미혼인 기자가 신속히 따뜻한 가정을 꾸리는 게 제일 큰 효도며, 기쁨이라고 말씀은 하시지만, 물질 앞에서 잇몸이 만개하시는 부모님을 외면할 순 없기 때문이다.

‘용돈 플라워박스’로 센스있는 효도가 가능해졌다. / 사진=마치플라워 블로그 캡처


누군가 말했다. 머니머니 해도 현금이 최고라고. 언제부터인가 꽃바구니에 용돈을 넣어드리는 ‘용돈 플라워박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과거 현금 봉투 하나로 심플한 효도가 가능했다면, 꽃을 더해 ‘센스’라는 옵션을 추가할 수 있다. 요즘 유행한다던 머니건으로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팝콘이 눈처럼 내리는 장면처럼 현금을 사방에 쏴 드리고 싶었지만, 올해는 셀프 플라워 박스 만들기로 우아한 효녀가 되기로 했다. 아, 물론 현찰은 기본 옵션이다. 원데이 클래스를 가볼까 싶기도 했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한편으론 꽃 구매부터 제작까지 셀프로 해보고 싶은 열정이 생겼다. 열정은 때론 화를 부른다.



꽃을 따려면 꽃밭에 가야지요

먼저 핀터레스트나 구글을 통해 플라워박스 이미지를 검색했다. 모니터에 고급스럽고 감각적인 디자인들이 빼곡히 떴다. 스크롤을 내려가며 초보도 따라 하기 수월할 것 같은 이미지를 캡처해서 핸드폰에 저장했다. 유튜브에서 ‘플라워박스 만들기’를 검색해 제작과정 몇 개를 보면서 꽃꽂이 감을 익혀본다. ‘오 왠지 나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명치끝에서 근본 없는 자신감이 올라왔다.


2310_2972_3845.jpg 지하철 3호선 고속버스터미널역 3층 꽃시장은 생화와 조화, 그리고 부자재를 판매한다. / 사진=이예림 기자


이제 꽃을 구하러 꽃밭에 가야 한다. 서울 꽃시장은 두 곳이 대표적이다. 양재동 꽃시장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화훼시장(이하 고터)인데, 고터는 보통 밤 11시 30분부터 다음 날 낮 12시까지 꽃시장이 열린다. 싱싱한 꽃을 구매하고 싶다면 꽃이 들어오는 월ㆍ수ㆍ금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시간대로는 아침 7시~9시까지가 여유롭게 꽃을 구매하기에 좋으니 아침 일찍 방문하는 걸 추천한다. 고터에는 생화 외에도 조화와 부자재도 판매한다. 조화시장은 자정 12시부터 다음 날 저녁 6시까지라고 하니, 꽃시장을 모두 아우르고 싶다면 생화 영업시간에 맞춰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 나는 방문 경험이 있던 고터에서 꽃과 부자재를 사기로 했다. 일정상 연휴 마지막 날인 어린이날 9시쯤 고터로 향했다.

꽃 시장은 지하철 3호선 고속버스터미널 역 경부선 방향 3층에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서 내리니 꽃이 반, 사람이 반이다. 어버이날은 대목이라 코로나가 무색하게 꽃시장은 사람들로 빼곡했다. 오랜만에 보는 활기찬 풍경이었다. 형형색색의 다양한 꽃을 보니 기분이 좋은 것도 잠시, 수북이 쌓인 꽃들이 뿜어내는 꽃향기와 넘쳐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소음이 섞여 혼이 나갈 것만 같았다. 마스크를 쓴 얼굴에 습한 기운이 올라왔다. 여유롭게 꽃을 즐기고 싶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2310_2971_388.jpg 꽃만큼 다양한 박스와 부자재가 즐비하다. / 사진=이예림 기자


구매할 꽃의 양을 가늠해야 하므로 먼저 부자재 코너에서 꽃을 담을 박스를 먼저 구매했다. 꽃만큼이나 박스 종류도 다양한데 ‘플라워 용돈 박스’ 전용 박스도 판매하니 초보자도 쉽게 구매해 제작이 가능하다. 나는 색다르게 흰색과 검정색 원형 박스를 구매했다. 박스에 묶을 그레이톤의 리본과 꽃꽂이에 필요한 초록색 오아시스도 바구니에 담았다. 이제 좁은 통로를 비집어 가며 신속하게 미리 찾은 시안과 비슷한 종류의 꽃을 찾아야 했다. 같은 꽃이라도 가게마다 가격이 다르고, 싱싱함도 다르기 때문에 시간 여유를 두고 돌아다니면서 꼼꼼히 비교 후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꽃은 전장에 꽂는 깃발이 아니다

2310_2973_4514.jpg 꽃과 오아이스를 미리 물에 적셔 꽃꽂이를 준비해본다. / 사진=이예림 기자


꽃만 사 왔을 뿐인데 진이 다 빠진다. ‘연간 효녀’ 발행이 중단될 뻔했다. 하지만 애써 사 온 꽃이 아까워 몸을 분주히 움직였다. 우선 꽃이 시들기 전 물통에 꽃을 담아 심폐소생을 해 놓고, 오아시스도 미리 물에 적셔 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오아시스는 물을 뿌려서 적시는 게 아니라 물을 받아 놓고, 오아시스가 물을 먹도록 오랜 시간 담가 두는 것이 올바른 사용법이라고 한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왕 분위기 있게 즐기자 하고 향초도 켜고, 음악도 틀었다. 캡처해 둔 이미지를 핸드폰 화면에 켜둔 체 꽃 한 대를 집어 들었다. ‘그래, 꽃대는 사선으로 잘라줘야 오래간다고 했지.’ 문득 유튜버가 했던 말을 기억하곤 가위로 들어 꽃대를 45도로 잘랐다. 꽃을 들고 전장에서 승리한 장군처럼 과감하게 꽃을 오아시스 한가운데 꽂아본다. 오아시스에 꽃대가 푹 꽂히는 맛이 좋다. 큰일을 해낸 것 같아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조심조심 한 대 한 대 심혈을 기울였던 꽃꽂이는 점점 기준이 없어졌다. 힘조절을 못해 꽃대가 꺾이기도 하고, 꽃을 뒷받침해줄 장식용 식물들의 꽃대가 약해서 초보가 꽃꽂이로 활용하기엔 어려웠다. 겉모습만 이쁘다고 사 왔다가 크게 혼쭐이 난 격이다. 슬슬 멘탈 붕괴 조짐이 보였다. ‘어? 내가 그리던 그림은 이게 아닌데?’ 세 글자가 자꾸 머릿속에 떠오른다. ‘망. 했. 다.’ 급하게 꽃꽂이에 조예가 깊은 친구에게 SOS를 쳤다.


2310_2974_4732.jpg ‘망했다’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 사진=이예림 기자


친구의 조언대로 오아시스를 낮게 잘라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세 시간의 고군분투 후 두개의 플라워 박스가 완성됐다. 뿌듯함이 밀려왔지만 군데군데 시든 꽃들이 마음에 걸렸다. 조심 조심 다뤘어야 할 꽃들이 조급한 마음에 상처를 많이 입은 것이다. 이쁘게 선물을 하고 싶었는데 마음이 아쉬웠다.



남의 직업은 넘보는 게 아니다

2310_2975_5453.jpg 우여곡절 끝에 두개의 플라워박스가 완성됐다. / 사진=이예림 기자

꽃은 종류가 너무나 다양했다. 얼핏 비슷해 보여도 자세히 보면 다른 종이기 일쑤. 광활한 꽃밭에서 어떤 꽃이 좋을지 선택하는 날 선 감각이 필요할 것 같았다. 어떻게 믹스매치 하느냐에 따라서 보기에 별로였던 꽃도 달리 보일 수 있다.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남의 직업은 넘보는 게 아니라는 교훈을 진하게 얻었다. 꽃 시장을 방문하기 위해 할애해야 할 시간과 노동력, 이쁨과 싱싱함 둘을 모두 만족할 만한 꽃을 찾는 감각과 체력, 잘라낸 꽃대, 이파리, 오아시스 자투리 등 생각 보다 치워야 할 쓰레기가 많이 생긴다는 점을 비춰봤을 때 꽃 주제에 비싸다고 투덜댔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시기 때문인지 꽃 가격이 생각보다 높아 집에서 클릭 몇 번으로 편하게 주문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모든 단점을 상쇄하고도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꽃이 주는 여유와 기쁨은 분명 있으니까. 누군가는 꽃이 ‘돈 주고 사는 쓰레기’라는 다소 야만적인 말을 서슴지 않지만, 그들에게 묻고 싶다. 향기 나는 쓰레기를 세상 어디 본 적이 있는가?




데일리타임즈W 에디터 이예림 dtnews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