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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타임즈W Jun 19. 2020

[W렌즈 꼰대의 재구성④] 꼰대를 선포하다

“라떼는 말이야”라며 꼰대를 저격하고 놀리던 현상이 이제는 ‘혹시 나도 꼰대?’라는 공포로 뒤바뀌어 꼭 해야 할 충고까지 속으로 삭이고 넘어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참다못한 기성세대들은 <회사는 유치원이 아니다(조관일 저, 21세기북스)>라며 밀레니얼 세대에게 일침을 가하는가 하면, <나는 그냥 꼰대로 살기로 했다(임영균 저, 지식너머>며 따뜻한 꼰대, 세련된 꼰대가 되기를 선언하기도 한다. 이제 맹목적인 비판과 공격에서 한 발짝 물러나 세대 간의 차이를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이해하고, 서로 공존하는 스킬을 배워야 할 때다. 국내 유일 워라밸 전문 매체 <데일리타임즈W> 5월 W렌즈에서는 애매한 꼰대질에 대한 설문부터 20대와 40대 직원의 꼰대 대담, 내가 겪은 최악의 꼰대질, 꼰대의 이유 있는 변론, 꼰대와 MZ세대가 공존하는 방법 등을 소개한다. 모쪼록 무의미한 꼰대짓은 청산하고, 진정한 조언과 충고를 통해 양 세대 모두가 성장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꼰대’가 이슈다. 자신이 꼰대로 불린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기분이 유쾌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꼰대가 앞뒤가 꽉 막힌, 소통이 불가한 꼬장꼬장한 느낌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말했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 흔히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요즘 것들’이 말하는 꼰대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고, 그 시대에도 꼰대는 늘 존재했다. 하지만 90년대생 밀레니얼 세대가 몰려오면서 꼰대의 의미는 한 층 더 부정적으로 폄하되기 시작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자칫 ‘꼰대’라는 이름으로 매도되기도 한다.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꼰대 탈출, 꼰대 방지 등 꼰대라는 불명예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쳐야만 하는 현실이 구슬프다. 


요즘 것들의 시대에 당당하게 '따뜻한 꼰대'를 선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들은 왜 꼰대가 될 수밖에 없었을까?

꼰대는 세대 차이를 기반으로 탄생한다. 도서 <요즘 것들과 옛날 것들의 세대 공존의 기술>에서는 세대 차이가 나는 이유를 크게 3가지로 말한다. 첫째, 역사적 시기에 따른 사회문화적 상황과 경험의 차이가 다르다는 점이다. 둘째, 반항적이고 자유로워지려고 하는 신세대인 청년 혹은 청소년기와 보수적이고 통제하고자 하는 성향의 강화되는 기성세대에 해당하는 장년기처럼 인간의 발달 단계에 따른 단계별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셋째, 세대별 변화의 수용 능력의 차이다. 청년 혹은 청소년의 경우 정보화 같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변화에 대해 학습과 수용의 속도가 빠르지만, 장년 이후 갈수록 학습 속도가 느려지고,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데 힘이 든다. 이는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처럼 살아온 환경, 생활 방식 그리고 생성된 인식이 세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밀레니얼과 베이비붐은 뿌리부터 온전히 다르다. 급격한 사회 변화가 몰고 온 시대에 전혀 다른 경험을 가진 세대가 공존한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이들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의 경험과 깊이가 ‘꼰대질’로 매도되고 터부시되기에는 안타까운 점이 많다. 인생의 선배로서 후배 세대에게 주는 진심이 담긴 조언마저도 자신과 맞지 않으면 귀찮고 불쾌한 ‘꼰대짓’으로 평가 절하되는 경우가 빈번해 아예 입을 닫는 걸 선택하는 기성세대도 존재한다. 이 정도면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들이 특권층인 줄 착각하는 집단이 아닐까? 


꼰밍아웃, 따뜻한 꼰대의 탄생

기성세대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꼰대’는 나이를 불문하지 않는다. 2030 사이에서는 ‘젊은 꼰대’라는 신조어가 생겼는데, 1년 일찍 들어온 입사 선배가 젊은 꼰대의 대표적 예가 될 수 있다. 젊은 꼰대 외에도 따뜻한 꼰대(이하 따꼰)가 있다. 꼰대를 수식하는 ‘젊은’, ‘따뜻한’이라는 단어에서 이질감마저 느껴지기도 하는데, 일부 기성세대들은 보통 꼰대가 아닌 따꼰을 선언하기도 한다. 도서 <나는 그냥 꼰대로 살기로 했다>에서 말하는 ‘따꼰에게 필요한 네 가지 마음’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따뜻한 꼰대에게 필요한 네 가지 마음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상대방의 의견을 수용하고 실천하는 마음

-자존심을 내려놓고, 사람에 대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내가 한 말과 행동이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마음 


‘혹시 나도 꼰대가 아닐까?’하는 꼰대 포비아에 휩싸여 떨기보다는 ‘꼰밍아웃’을 통해 아예 꼰대를 자처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도 새로운 변화 중 하나이다. 이것은 따꼰의 등장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들은 꼰대 딱지가 무서워 ‘할많하않’하며 속이 터지기보다는 소신을 택한 것이다. 꼰대가 아닌 진정한 어른으로서 행동을 보여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개인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이 짙은 밀레니얼 세대들이 자유와 방종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널을 뛸 때 진정을 시켜줄 수 있는 누군가는 필요하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회사는 유치원도 아니고 놀이터도 아니며, 사회생활을 위한 기본적인 예의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추구하는 가치와 의견을 존중하되, 기본 요소에 대한 부재를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 주는 것이 따꼰을 지향하는 기성세대가 해야 할 몫일 것이다. 이를 지적하는 사람을 꼰대라고 단정 짓는 밀레니얼 세대가 있다면 그들이 찐꼰대와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아무리 발버둥 치고, 도망가려 해도 강제적으로 떠먹여지는 것이 나이고, 흐르는 것이 세월이다. 언젠가 꼰대를 바라보며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했던 다짐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 오게 될 수도 있다.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다. 


물론 고집스럽고 융통성 없고, 내 말이 법이라고 설파하는 찐 꼰대도 아직 존재한다. 그들에게 밀레니얼 세대와의 관계는 수평적이 아닌 수직적일 뿐이다. 여기에는 어떤 감동도, 배움도 없을뿐더러 상호 간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그저 서로가 이해 못 할 족속일 뿐이다. 하지만 양립된 가치관 속에서 불화를 택하기보다 융화를 택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40대 이후의 삶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묻는 말에 누군가 말했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그때는 피식하고 웃고 넘겼던 그 대답의 깊이를 지금에야 깨닫는다. 그 사람이라면 분명 최소 따뜻한 꼰대가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데일리타임즈W 이예림 기자 dtnews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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