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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기 Jan 22. 2024

철들려면

도무지 철들지 않는 우리들

 친구 W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너는 참 철들어 보인다’라고 말했는데, 친구의 얼굴 어느 구석인가에서 어른들이 짓는 표정이 엿보여서 그렇게 말했더니, 친구는 냅다 그렇다며 자신은 철들었다 말했다. 그러고 약간의 침묵 뒤에 내가 먼저 표현해 놓고는 철든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의문이 생겼다. 방금 사전적 의미를 검색해보니, ‘사리를 분별할 줄 알게 되다’라는데 아무래도 조금 전 내가 말한 ‘철들다’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철들다’가 명확히 저 뜻을 두고 말하는 것 같진 않았다. 친구랑 또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는 ‘철들다’가 무슨 뜻일까 또 ‘어른스럽다’는 무슨 뜻일까 고민하며 친구는 어른스럽고 철들어 보이는데 나는 어른스럽지 못하고 철들지 않은 어리광쟁이다 보니 두 사람의 차이를 이해하면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철들다’와 ‘어른스럽다’의 의미를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그 친구와 나의 차이가 무엇이냐, 바로 책임을 지느냐 마느냐였다. 책임을 지려고 하느냐 마느냐.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을 하느냐 마느냐, 스스로 책임을 지기 위해 나서느냐 마느냐. 그 차이인 것 같았다. 친구는 많은 사람들을 관리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을 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지치지 않게 도와야 한다. 때로는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친구는 자발적으로 그런 일을 하고 있다. 반면 나는 시키는 일을 한다. 최대한 책임지지 않으려고 궁리한다. 다른 사람과 협업하기보단 혼자 일을 하고, 모르는 것은 다른 이에게 의지한다. 다른 사람을 관리할 처지가 못 된다. 그런 게 확연히 다르다는 걸, 눈치채고야 말았다.


 그러나 이런 나도 책임지는 것이 있다. 가능한 가족들에게 말한 것은 지키려고 한다. 가능한 가정을 화목하게 유지하려 한다. 또 최소한의 것은 지키려 한다. 정말 최소한의 것(부끄러움). 약속 시간. 맡은 일은 기한 내에 하기. 내 반려 식물을 책임지고 관리하기…. 간소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책임지는 것들의 무게를 헤아려보면 내가 얼마나 어른스러운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철든 사람인지 역으로 알 수 있으려나? 책임지는 게 별로 없는 삶은 어쩌면 가볍고 자유롭다는 걸 뜻 할지도 모른다. 책임질 게 많다는 건 반대로 발이 묶여,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도 몸이 이끄는 대로 전부 던져버릴 수 없다는 것일 수 있다. 사람 사는 형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 그런 것 같다.


 난 앞으로 얼마나 더 책임을 지고 살아야 할까? 무엇을 더 책임져야 할까? 30을 바라보는 나이에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나를 ‘책임’이라는 무게를 실감하도록 나아가야 할까? 30이면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책임져야 하는 게 맞을까? 물론 정해진 것은 없고 선택은 나의 몫이다. 희한하게도 책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다 보니 글 하나 적는 것마저도 책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 글 또한 누군가에게 읽힐 것이므로 내가 쓴 글에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맞겠지. 그러니 매사에 신중함이 철들기 위한 첫걸음 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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