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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와이 Feb 14. 2019

집에서 죽고 싶다

암 환자에게는 죽음의 순간이 너무나 빨리 찾아온다. 

 이렇게 완강한 보호자들은 처음이었다. 화가 난 얼굴은 아니었다. 단지 의사가 자기 아버지를 못 건드리게 하겠다고 마음먹은, 비장한 표정이었다.

 의사로서 오늘 내가 마주한 이는 80대의 남자, 그가 대면한 일생일대의 도전은 대장암이었다. 매끄러이 빛나는 붉은 점막을 밀고 나와 울퉁불퉁한 투구처럼 이고 있는 적장은, 긴 시간 대한민국 곳곳의 유명 의료진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이끌었다. 환자는 패자였지만 강한 삶의 의지를 가졌다. 항암치료는 고통이었지만, 그의 의지는 고통을 이길 수 있었다. 다만 그 의지는 무한정 가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아직 젊은 나이여서 죽음을 대하는 자의 공포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본 어떤 환자들도 노인이라고 그 공포에 익숙해진 자는 없었다. 공포에 익숙해지려면 무엇보다 시간이 제일이다. 긴 고통의 시간은 '차라리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노인이 되면 긴 시간 장애를 얻어 살고, 그래서 젊은이보다는 그 공포를 잘 받아들이는 편인 것 같다.

그런데 암환자에게는 진단의 순간도, 죽음의 순간도 다가오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치료를, 어려운 말로 설명하는 의사의 말을 듣고 빨리 결정해야 하고, 혹여나 치료에 실패할 경우 마지막도 빨리 받아들여야 한다. 서둘러 짐을 싸느라 빠뜨린 것이 행여나 있을까, 인사도 못하고 가지는 않을까 복잡한 마음이 들겠지만 빨리 곁으로 치워야 한다. 가는 열차는 나를 억지로라도 집어 태운다.

그런데 이 환자는 죽음을 맞닥뜨렸을 때의 공포를 두려워하던 용자였다. 준비하지 못한 공포감은 자기를 탐탁지 않은 곳으로 인도할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건강하던 때에 이미 저승 가는 보따리에 무엇을 넣어가야 할지 고민을 끝냈다. 그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둘은 아래와 같다.

첫째,  '병을 얻는다면 완치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이 대단한 생의 의지, 승리를 향한 기치였지만 병의 거센 바람에 꺾여 버렸다. 이 준비물은 넣어 가는 데 실패했다. 둘째 준비물은 '집에서 죽고 싶다'였다. 보호자에 따르면, 거의 유언의 주제를 이루는 선언이었다.

낯설고, 차갑고, 비인간적인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다


 지극히 당연한 생각이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 쉽지는 않아, 현실에서는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중환 병환이라도 이번 고비만 넘기면 그래도 1-2주는 더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을 때가 다 된 몸상태라면 대부분의 환자는 정신을 잃어버린다. 아무리 죽음에 대해 훌륭한 대비 안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자기 결정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환자의 죽음에 대한 고유의 결정 권한은 보호자에게 넘어간다. 대부분은 자식들이다. 1. 일단은 '내 죽음'이 아닌, 2. 그래서 별로 생각 안 해본 부모의 죽음을 결정하는 게 그 자식이라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환자가 오랫동안 중병을 앓아왔다 하더라도, 자식들은 그 순간이 오면 슬퍼하고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한다. '일단 살려주세요.' 환자가 평소 '어떻게 죽게 해 달라'의견을 피력했다 하더라도 그 순간이 오면 그대로 이행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죽음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단 한 번뿐이기에, 그 중요한 순간은 모두를 당황하게 한다. 하지만 그 당혹감은 매우 이해할만한 것이다.


「나는 낯설고, 차갑고, 비인간적인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다」환자의 유언이었다.

photo by: florian klauer on unsplash


그런 점에서 이 완고한 자식들의 태도는 고무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평소 환자는 자식들에게 '나는 반드시 집에서 죽으리. 너희는 내가 그렇게 갈 수 있도록 해라.'라고 끊임없이 말했고, 자식들은 그의 뜻을 그대로 이행하기로 결정했다. 사람이 병원에서 죽으면 의사 사망 선언으로 끝이지만, 집에서 죽으면 경찰이 간다. 이런 번거로운 절차도 거쳐야 하고, 자식들 입장에서는 '물론 아버지의 뜻은 그렇다만, 아프신데 그래도 병원에 모셔야 하지 않나'는 효자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에 결코 결정하기 쉽지 않았을 터이다. 나는 그런 점에서 이들의 결정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 환자는 암의 전이뿐 아니라, 패혈증을 맞이한 상태였다. 패혈증으로 전신 컨디션이 떨어지며 정신을 잃자, 보호자들이 혹여나 마지막일까 병원에 모시고 온 것이다. 환자는 병도 중했지만 호소하는 증세도 심했다. 암이 복막을 건드려 복부 통증이 심해 주사제로 마약성 진통제가 꼭 필요할 정도였다. 그것 없이는 마지막 순간 극한의 통증에 고통받을 수도 있었다. 때문에 나는 그들의 의중을 충분히 이해했지만, 병원에서 마지막을 보내시기를 여러 차례 권유했다.

그때 나는 이 보호자들의 완강한 표정을 목격한 것이다. 삼 남매 모두 한 뜻이었다. 그중 막내딸은 나와 비슷한 또래였는데,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니 평소 자기 모든 뜻을 관철시키는 대단히 똑똑한 사람 같았다. 그녀는 '이 의사는 내게 맡겨.' 란 눈짓을 형제들에게 보내고 나를 무섭게 쪼아대기 시작했다.

"우리 아버지는 강한 사람이에요. 평생을 고생만 하고 사셨지만 다 이겨내셨어요. 아버지가 죽을 때가 다 되었다는 말이죠? 그 말은 잘 알아듣겠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만큼은 당신 뜻대로 하고 싶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약 다 알약으로 주시고, 집에 보내주세요."

그녀 논리의 허점을 찾았다.

"알약이라뇨. 정신이 혼미하신데 어찌 알약을 드십니까. 주사제 모르핀을 얼마나 드려야 통증이 잡히는지 알 때까지만이라도 여기 계시고, 그 용량이 정해지면 맞는 용량대로 마약성 패치를 붙여 귀가하는 걸로 하면 어떨까요."

"선생님이 조금 전에, 금방이라도 돌아가실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입원해서 있다가 돌아가신다면 당신의 소원대로 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그녀도 내 논리의 허점을 찾아내 무서운 반격을 퍼부었다.

정말이지 난감했다.  DAMA (Diacharge against medical advice). 의학적 조언에 반(反)해 퇴원시키는 데 생기는 딜레마. 어떤 선택이 환자에게 가장 좋은 길일까. 패혈증이 있는데도 항생제 안 쓰고 집에 보내는 게 잘하는 일일까? 통증이 있더라도 자기 선택대로 하게 하는 편이 옳은 것일까?






우리 의료진은 고민 끝에 그를 집에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환자의 침대가 저녁시간 텅 빈 병동 복도를 미끄러져 나갔다. 이송 요원과 보호자는 천천히 걸었고, 무거운 침묵이 클래식 장송곡처럼 낮게 들렸다. 중년의 삼 남매는 그들의 아비 곁을 뚜벅뚜벅 걸었다.

아무도 소리 내어 울지도, 눈물 흘리지도 않았다. 입을 굳게 다물고 가끔씩 자기 아비를 내려다보며 '우리가 지켜드릴게요.' 하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본 글은 월간 시사문단 4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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