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터 와이 Feb 15. 2019

한 러시아인의 죽음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렸다. 목숨이라는 건 애초에 그렇게 생겨 먹었다.

니나 카나예바, 대충 이런 전형적인 러시아 인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34세의 젊고 아름다운 백인 여성이었고 직업은 경찰이었다. ‘정말 인형처럼 예쁘고 멋진 언니' 간호사들은 첫인상을 이렇게 기억했다.

이 러시아인의  병명은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이었다. 부유하지만 더 나은 치료를 기대해 한국으로 건너오는 다른 많은 러시아인들처럼, 그녀도 젊은 나이의 암을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해보고 싶었다. 우리 병원에서 치료받은 기간은 총 6개월이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투병은 힘들었다. 하지만 새로 사귄 친구는 아름다움에 자비를 베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니나의 죽음을 선언한 사람은 나였다. 나는 당시 중환자실 야간 당직을 맡아하고 있었다. 병동에 있을 때 여러 번 니나의 주치의를 맡았기에 그녀와 보호자와는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의학적인 대화 이외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구글 번역기로 나누고는 했었다.

수차례의 항암치료를 진행했으나 암의 사이즈는 줄어들다 말기를 지속했고, 백혈구 감소증 때문에 면역저하로 인한 감염이 잦았다. 항생제 치료는 당연히 병행해야 했다. 잘 낫지 않는 감염 때문에 한 번 입원하면 퇴원할 줄을 몰랐다. 면역저하자가 감염을 맞았다면 곰팡이 같은 무시무시한 균이 오기도 한다. 그래서 항진균제도 썼다. 이 곰팡이 약은 몸을 정말 피폐하게 만든다. 셀 수 없는 합병증들이 생겨났다. 또 많은 다른 암환자들처럼 혈전이 잘 생기는 경향도 있었다. 그래서 폐색전증이 생겼다. 숨쉬기도 힘들어했다. 암은 뇌로도 전이했다. 가끔씩 그리고 긴 시간 간질발작(경련)을 하기도 했다.

병원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쌓여갔다. 보호자는 딸이 호전되지 않지만 입원하고만 있는 상황에 지쳐 예민해졌다. 한편 니나도 힘들어했다. 더 이상 주사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팔에 상처가 가득했다. 그녀는 처음 입원할 때의 미모는 완전히 잃은 상태로, 멍한 눈으로 병실 벽을 바라보기만 했다.

급기야 급성 종양 용해 증후군(Tumor lysis syndrome)이 찾아왔다. 이는 치료 중 합병증의 하나인데 암세포가 죽으면서 혈류 내에 자신의 일부가 녹아드는 것이다. 이때부터 그녀의 상태는 급속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피는 산성화 되었고, 나쁜 연료를 먹고사는 모든 장기들은 스트레스를 받아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했다. 이제 마지막 때가 오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는 원체 말이 없는 사내였다. 190센티미터쯤 되는 큰 덩치에 과묵하기까지 했으니 보는 모든 이에게 위압감을 줬다. 그가 한 번 의료진에게 짜증을 낼 때면, 솔직히 말하면 무서워서 가까이 가기가 싫었다. 러시아 남자는 통이 크다더니 정말 그랬다. 회진 때마다 선물로 초콜릿 에너지바를 주곤 했는데, 한 번에 30-40개씩 움큼으로 줘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모든 보호자에게 그렇듯 흐르는 시간의 고문은, 결국에는 이 강한 남자도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딸을 사랑했다. 아픔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그는 딸이 살았을 때도 죽었을 때도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그는 한결같이 굳건한 아버지로 남고 싶어 했다. 불곰 같은 이 사내가 마지막 순간, 내게 요구한 것은 단 하나였다.


어떻게든, 내 딸을 러시아로 보내 주오

딸은 마지막으로 러시아의 풍경이 보고 싶다 했다. 그 풍경이 비록 공항의 활주로일지라도. 그는 사랑하는 딸을 낫게 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딸은 좌절하던 그에게 새로운 숙제를 던졌다. 그는 마지막 과제물을 받고 불타 올랐다. 아비로서 반드시 수행해야 할 임무였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의 풍경을 보고 싶어요" 는 환자의 마지막 소원이었다.

photo by: vidar-nordli-mathisen on unsplash



'러시아 전원이라니. 그것도 이런 중한 상태에서!'

난감하다. 난감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아니면 내일, 그것도 아니라면 모레 죽을 상태였다.

그런데 주치의는 환자의 마지막 소원에 동의했다. 이제 나를 포함한 레지던트들은, 그 가느다란 목숨을 어떻게든 러시아 갈 때까지 살려놔야 했다.  

우리 의료진이 생명연장에 힘쓰는 동안, 국제 진료팀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비행기표 구매와 중환 이송에 수반하는 많은 문제들은 낮 동안 모두 해결됐다. 바로 내일 러시아로 가는 비행기가 잡혔다.

같이 이송 가는 의료진은 내 레지던트 의국 동기인 의국장으로 결정됐다. 같이 가는 간호사 하나 없이 홀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환자를 모실 막중한 임무를 띤 그에게, 동기들은 심심한 위로를 보냈다. 이렇게 '러시아 전원'은 현실이 되었다. 내일 아침 비행기. 그리고 나는 오늘 밤 당직의사였다




허나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렸다. 목숨줄이란 건 기본적으로 그렇게 생겨 먹었다. 사람이 사람을 살린다는 말은 반만 맞는 말이다.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그리고 나머지를 하늘에 맡긴다. 이 명제를 부정한다면 그는 자기가 신이라 착각하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자가 틀림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 여자를 살리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 밤 만을 살리고 싶었다. 내게는 뼈아픈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도 러시아 여자였다. 원래 그런지, 아파서 그랬는지 정말 하얀 피부를 가졌더랬다. 40대의 젊은 나이. 난소암 말기. 포기하지 못하는 남편. 니나와 너무 비슷한 신파극 같은 이야기인가? 하지만 적어도 거짓은 아니다.

그때도 나는 중환자실 당직이었다. 새벽, 아랫 기수인 병동 당직에게 전화가 왔다. 좋아질 가망이 없는 말기 암환자라 했다. 그런데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중환자실을 내려온단다.

'아니, 가망 없는 말기 암환자한테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고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심폐소생술은 엄청난 외력으로 심장을 직접 주무르고, 복장뼈를 부러뜨리고, 목구멍을 통해 폐까지 관을 박아 넣는 공격적인 술기다. 말기 암환자에게 그런 고통을 가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이유가 있었다. 포기 못하는 남편이었다.

나는 병동으로 올라갔다. 다들 자는 고요한 새벽, 병동 처치실은 난장판이었다. 인턴 둘이 돌아가며 심장압박을 하고 있고, 남편은 살아나지 않는 아내 곁에서 통하지도 않는 말로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통역에 의하면 더 열심히 계속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압박 시간은 벌써 30분이 넘었고, 에피네프린, 비본, 수액 로딩 등 할 처치는 다 했다.

남편은 분노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운명을 받아들이기에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았다. 죽을 것을 안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평생의 반려자라 여겼는데, 젊은 날 자기를 이렇게 허무하게 떠날 줄은 몰랐을 터였다.

"사망하셨습니다."

통역은 내 말을 전했다. 남편은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러시아어로 중얼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통역은 방금 "꼭 집에 보내주고 싶었는데······."라고 했다고 내게 알려줬다. 그게 무슨 소리냐 했더니 환자가 며칠 뒤 러시아 전원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니나처럼 그녀도 고향의 마지막 풍경을 보고 싶어 했다. 보호자는 반드시 그 업을 이뤄 주겠다는 강한 목표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러시아 남자의 강한 목표의식을 경험했던 터라, 니나에 대한 내 의지 역시 강할 수밖에 없었다.

니나는 원래 정적인 성격의 환자였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저녁이 되자 동물적인 반응을 보였다. 괴성을 지르고 몸을 뒤흔들고 협조가 되지 않았다. 보호자가 봤으면 놀라든 슬퍼하든 큰 충격을 줄 법한 모습이었다. 그나마 보호자 출입이 제한되는 중환자실이라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편 이런 평소와 다른 모습이 느낌이 영 좋지를 않았다. 오늘 밤 버텨 내일까지 살려 낼 자신이 없었다.


"최선을 다 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오늘을 못 넘길 수도 있을 듯합니다."


니나의 어머니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는 입을 굳게 닫고 자기 아내를 다독였다. 그들이 얼마나 오늘 하루를 원하는지 잘 알기에, 그리고 오래 알고 지낸 내가 얼마나 잘 아는지 그들이 알기에, 오늘 밤은 우리 모두에게 비장한 시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실패하고 있었다.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님은 잘 알았다. 하지만 싸움에서 지고 있어 속이 쓰렸다. 밤새 이리저리 써 봤던 약은 미비한 성과만을 이루고 있었다.

니나의 동물적인 반응은 이제 사라졌다. 내 생각이 맞았다. 아까 저녁의 거센 움직임은 마지막 몸짓이었다. 이제 혈압은 떨어지고 혈액의 산성화는 극도로 심해졌다. 정신은 완전히 잃었다. 나는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보호자에게 도의상의 전화를 걸었다.

보호자들은 어디 가지도 않고 밤새 중환자실 입구 바로 앞에 있었다. 아버지는 들어오면서 딸보다도 나를 먼저 찾았다. 그리고 내 어깨에 그 두터운 손을 얹고 탁탁 두들겼다. 수고했다는 것이다. 고마웠다. 나는 그의 눈을 보면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니나의 어머니는 딸의 몸에 고개를 묻고 흐느꼈다. 아버지는 곁에 서서 딸의 얼굴을 보며 길게 무언가 중얼거렸다.

“Мне так жаль. Мне так жаль. Я пытался отвезти тебя домой······.”

가망 없는 환자가 죽었다면, 그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의사로서 유감일지언정 미안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 날 나는 니나와 그의 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니나의 아버지를 옆에서 안고 영어로 말했다.

“I am so sorry.”

나는 영어의 sorry가, 미안함과 유감의 뜻을 같이 담은 단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문의 러시아어는 같이 있던 통역을 통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본 글은 '월간 시사문단' 2019.3월호에 실렸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집에서 죽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