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터 와이 Mar 19. 2019

컨타는 절대 안 돼

환자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천재성이 아니라 언제나, 성실함이다

 의대 시절 얘기다. 동기 의대생들은 병원 실습이 끝나고 돌아오면 나름의 피로를 호소했다.

 처음 경험하는 병원 생활이었다. 병원의 룰은 일상생활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혹 내 잘못으로 환자가 나빠지지는 않을까 하는 부담에 모든 것이 두렵고 조심스러웠다. 선배 의사들은 우리의 태도를 하루 종일 비난하기 일쑤였다. 교수님, 레지던트, 심지어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병원 최하층민이라는 인턴들도 우리에게는 하늘 같은 선배로 군림했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규칙은 수 없이 많았다. 회진 1시간 전 나와 환자 파악을 해야 하고, 미리 환자를 봐 둬야 하고, 넥타이를 해야 하고, 구두를 신어야 하고, 가운 안에는 와이셔츠를 입어야 하고, 염색을 해서는 안되고, 병원 내에서는 항상 의료진에게 인사하고······.  개 중 비합리적으로 느껴지는 것들도 있었다. 그중 최악은 실습을 나올 때 비가 와도 우산을 써서는 안 된다는 지침이었다. 정 쓰고 오고 싶다면 별관 복도의 우산 보관함에 넣으면 되었는데, 어차피 병동이 있는 본관까지는 비를 맞고 가야 했다. 그래도 아무도 크게 불평하지 않았다. 윗사람의 권위는 병원이, 병원의 권위는 현대 의학이, 의학의 권위는 과학이 세운 것이었다. 모든 지침이 합당한 이유가 없었을지는 몰라도, 모두 따를 때에만 불편 없이 배울 수 있음은 명확했다.

  어떤 습관을 고치라는 지침은 법령 수준으로 중요한 사항이라서, 평소처럼 했다가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었다. 그나마 우산을 두고 오라는 지침이면 약간만 긴장하면 문제없이 따를 수 있었다. 가끔 우산을 안 쓰고 다니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테니 '비 오지만 우산 잠깐 놓고 가지'정도의 생각만 하면 된다. 비 오는데 우산을 가지고 나간 '실수'를 하더라도 만회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병원 입구 안 보이는 구석에 잠깐 숨겨 둔다거나, 아니면 우산을 쓰고 숙소에 가져다 두고 비를 맞으며 다시 나오면 된다. 다만 완전히 굳어 버려 별생각 없이 하는 일상적인 습관은 고치기 어려웠다. 예를 들면 「컨타의 룰」이었다.


완전히 굳어 버려 별 생각없이 하는 일상적인 습관은 고치기 어려웠다

 Photo by The Roaming Platypus on Unsplash


 당연히 진료지침이다. "컨타는 절대 안 된다." 흔히들 병원에서 하는 말이다. 의료인들은 영어 Contamination을 줄여 흔히 '컨타'라고 부른다. 오염이라는 뜻이다. 피부 안 쪽의 사람 몸은 기본적으로 무균상태가 정상이다. 수술이나 시술 시 이 무균상태로 진입 (사람 몸 안을 뚫거나 째거나 까거나 자르거나)한다면, 손 피부의 물로 닦고 강력한 소독약으로 균을 죽여 손을 완전한 무균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쉬워 보이지만 막상 해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오염된 공기가 손에 붙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누굴 만지거나, 긁거나, 스치거나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래서 수술방 안에서 컨타를 주의하는 의료인들의 모습이 좀 우스워 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부딪히거나 스치지 않기 위해 무중력 상태의 우주인처럼 두둥실 떠 다닌다. 의학드라마에도 자주 나오지만 집도의가 손을 씻을 때 무릎으로 밸브를 조절하는 것도 이 때문이며, 손을 다 씻고 하늘을 향하는 기이한 행동도 손의 물을 더러운 땅으로 흘리기 위해서다.

 누군가 컨타를 행했다면 그 순간 모두의 시간은 정지한다. 범인은 고개를 숙여 유감을 표한다. 모두의 날 선 눈총에 항복을 고한 다음, 당장 신고 있던 라텍스 장갑과 족히 1만원은 넘어 보이는 번쩍이는 1회용 수술용 가운을 벗어던지고 나가야 한다. 그다음 10분간 손을 씻고, 수술방 안으로 들어와, 문 앞에 서서 소리친다. "죄송합니다." 꾸벅 절 하고, 장갑을 끼고, 수술 가운을 입는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거쳐야 한다. 이 모든 일은 간호사가 도와야만 할 수 있기에 그 간호사가 수술 중 하고 있던 다른 업무는 잠시 또 중단된다. "죄송합니다." 간호사를 지나 엉거주춤 수술 베드로 돌아온 다음엔 수술팀에게 고해야 한다. "죄송합니다." 아무도 대꾸해 주지 않더라도 무조건 해야 한다. 매우 미안한 마음을 담아 해야 한다. 가장 미안해해야 할 사람은 역시 수술받는 환자겠지만, 정작 그는 마취상태여서 듣질 못한다.

 컨타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제 아무리 방송에 출연하는 '이 시대의 명의'라도 컨타의 대가는 동일하게 치러야 한다. (물론 명의라 알려진 분들은 백전노장이므로 컨타같은 간단한 실수는 안 한다.) 하물며 대가 의사들에게도 이런데, 의대생 나부랭이가 이 수술방의 정의의 칼을 피해 갈 방법은 없다. 나도 몇 번 컨타를 만든 적 있었다. 수술과 관련 없는 곳에 서 있었지만 대기조로 있는 내가 저지른 컨타를 어떻게 알아챘는지, 치프 레지던트가 나를 수술방에서 쫓아냈다. 보고 싶은 수술이었지만 내게 두 번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학점도 영향을 받아 속이 쓰렸다.

 점수만 깎이면 다행이었다. 인턴이 되었을 때는 사회 초년생으로서, 일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 빠릿빠릿 움직였다.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해선 많은 일을 동시에 해야 했고, 당연히 조심성은 떨어졌다. 내가 만든 실수 중 하나는 컨타였다. 당시 나는 '박살'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혼난 다음, 다시 들어와 수술에 참여해야 했다. 한 번 천덕꾸러기로 찍히자 집도의는 냉혹한 평가의 잣대를 여러 번 들이댔다. 나는 몇 시간 수술 동안 몇 번이나 박살 나야 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단 생각을 했을 정도로.

 컨타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줬을까?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던 것 같다. 일단 무균상태에 도달하는 습관이 익숙하지 않고, 무의식적인 행동 하나하나에 평가를 당해서 그랬던 듯하다. 의대 동기 하나는 수술방에서 컨타를 저지르고, "이 기본도 안 된 XX, 당장 나가서 씻고 와."라는 폭언을 듣고 수술방에서 쫓겨났다. 이 가여운 의대생은 심하게 주눅이 들어, 잠시 그 똑똑한 머리의 생각 회로가 고장이 났다. 그래서 그는 수술방 밖에서 손을 씻는 대신 기숙사까지 가서 샤워를 했다. 아마도 폭언에 놀라 "이 더러운 놈, 냄새나니까 씻고 와."라고 오해했을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한 예는 내가 아는 한 안경 쓴 선배 얘기다. 그 선배는 안경을 자주 고쳐 잡고, 얼굴을 만지는 고약한 버릇이 있었다. 안경 한 번 올려 쓰면 컨타. 코 한 번 긁으면 컨타. 문제는 자기가 방금 콧등을 만지고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는 허구한 날 컨타를 범했다. 매일같이 혼쭐이 나던 어느 날, 급기야 "너 같은 놈은 의사가 되면 안 된다."는  폭언까지 들은 후, 그는 자기 습관을 고쳐야겠다는 강한 동기를 갖게 된다. 얼굴 좀 만진다고 최악의 인간으로 평가받는 대신 얼굴을 만지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놀랍게도 하루 내내 생각하며 긴장하고 있으니 일상생활에서도 이 버릇이 고쳐지더란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얼굴을 만지는 습관은 고쳤지만, 또 하나 난관이 있었다. 만지고 싶었던 부위가 너무 간지러웠던 것. 결국 뼈를 깎는 마음으로 레지던트로 일하는 동아리 형에게 술을 사며 물었다.


"형님, 얼굴이 너무 긁고 싶은데 수술 중이라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후후, 맨날 여자 뒤꽁무니나 쫓던 네가 드디어 고민다운 고민을 하는구나. 한 잔 받아라."

"정말 진지합니다. 제발 도와주십쇼!"

"방법은 멀리 있지 않아. 간호사에게 긁어달라고 하면 된다."

"네? 그건 좀 민망한 부탁 아닌가요?"

"환자는 수술하는 우리에게 목숨을 맡겼어. 대의 앞에서 그 정도 민망함은 감수해야지."

"그리고 그건 형님한테나 가능한 일이지요. 저 같은 학생이 어떻게 그런 부탁을 합니까?"

"너도 우리 감독하에서는 엄연한 의료진이다. 비록 열린 환부 잡고 있는 역할이라 해도 그 점은 변하지 않아."

"음······. 알겠습니다. 가능하다 하더라도, 도저히 긁어줄 수 없는 부위가 가렵다면······."

"오! 좋은 질문이야. 나도 한 번 그런 적이 있었거든. 대여섯 시간 정도 걸리는 수술이었는데 겨드랑이가 너무 간지러운 거야. 차마 긁어달라고 간호사에게 부탁할 수는 없었지. 하지만 사람은 의지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나 보더라고. 나는 잠시 정신을 집중해 겨드랑이가 가렵지 않다고 생각했어. 그럼에도 소양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지. 하지만 알 수 있었어. 해결할 수 있다는 기분! 그래서 나는 가려운 부위를 생각만으로 옮길 수 있었어. 겨드랑이에서 팔로 어깨로 목으로 그리고 뺨까지 올려 버렸지. 놀랍게도 올라오는 동안 가려움도 많이 사라지더군. 결국 부탁할 필요도 없어졌지 뭐야.”


 이런 우스개 같은 조언도 안경 선배에게는 진지한 도전과제였다. 그는 결국 원하던 목표에 도달했을 것이다. 컨타는 모두가 성취할, 아니 제거할 나쁜 습관이지만, 의식적인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루게 된다. 한 사람의 의사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시간 정도만 필요하다. 환자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천재성이 아닌 언제나, 성실함이다.



 그렇게 매일을 고통받으며 습관을 고친 의대생들. 나와 내 친구들은 시간이 흘러 졸업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편안히 소파에 누워 다 같이 TV를 보다가, 의학드라마 속 멋진 남자 주인공이 집도의가 되어 수술방에 들어가며 안경을 고쳐 쓰는 장면에서, "쟤 저거 교수씩이나 되어서 컨타네."라고 심드렁하게 말할 정도, 그래서 주인공의 수술 실력이 의심스럽다고 생각할 정도의 수준 높은 의료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본 글은 월간 시사문단 4월호에 실렸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러시아인의 죽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