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아파트 방화살인사건에 부쳐
나는 종합격투기 스포츠의 열렬한 팬이다. 10여 년 전 종합격투기 열풍이 불기 이전부터도 열심히 경기를 시청했고, 남들 토크쇼 볼 때 격투기 리얼리티 쇼를 볼 정도니 정말 좋아하는 편이다. 고대 중국 무술부터 현대 MMA까지 책도 많이 읽어 지식도 많다. 아마도 이런 성향은 어릴 때부터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관념을 갖고 마초성에 대한 선망을 가져서일 텐데, 불행히도 정작 나의 몸은 격투 인구의 평균도 못 쫓아가는 것 같다. 운동에 나름 시간을 투자했지만 재능은 따라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뛰기보단 남이 뛰고 때리는 걸 TV에서 보고 만족하는 정도 취미에서 머무르고 있다.
나와 친한 사람들은 대부분 내 이런 취향을 잘 알고 있다. 단순히 취향 때문에 모르는 사람과 친해지기도 되기도 했다. 그들 중 하나는 딱히 운동을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보는 것만 좋아하는 나를 신기하게 봤다. 내가 격투기를 너무 좋아하니까 한 친한 동생은 내게 이렇게 묻기도 했다. "형 아들이 세계적인 격투선수가 된다고, 자기 운동시켜달라고 하면 뭐라고 할 거예요?" 나는 별로 생각하지도 않고 "그건 좀 인정하기 어려운데."라고 대답했다. 이 친구로서는 기대 밖의 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아버지가 그렇지 않을까? 자기 자식이 다친 모습을 보기 좋아하는 부모는 없다. 견딜만한 상처고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면 모르겠지만, 그래도 웬만해선 안 맞았으면 한다. 맞아야만 먹고살 수 있다면 부모 마음에 좋을 리가 없다. 자녀가 다치면 부모는 차라리 그 자리에 자기가 있었으면 한다. 그게 아비의 마음이다. “내 아들이 맞는 모습을 눈 뜨고 보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라고 나는 동생에게 대답했다.
병원에는 상처 받은 이들 투성이다. 그중 가장 마음 아파 보이는 이는 단연코 다친 자식을 데리고 오는 사람들이다. 자식이 어리면 더 그렇겠지만 다 큰 자식을 데리고 오는 이들도 충분히 슬퍼하고 있다. 그들은 노년의 자신에게 왜 이런 큰 시련이 닥쳤는지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부모는 자식이 병들었을 때 힘들어하지만, 다친 경우 정신적 충격이 더 크지 않을까 한다. 모든 병은 나타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고 진단을 기다리는 동안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있다. 하지만 외상은 다르다. 모든 상해는 갑작스럽게 나타나고, 최선의 선택을 부모가 보장하지 못하고, 한 번 생겼다 하면 치명적일 가능성이 있다. 외상으로 인한 죽음은 전 세계와 모든 역사를 통틀어 매우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 누구도 피해 가기 어렵지만, 본인에게 생겼다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응급실에서 일하다 보면 자식의 갑작스러운 상해를 당해 정신없는 부모를 많이 만나게 된다. 주로 어린아이들의 낙상사고다. 엄마들은 아이를 둘러업고 헐레벌떡 응급실 안으로 뛰어들어온다. 아이가 소파에서 뛰다가 떨어져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고 잘 놀지도 않고 이상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식에 대한 걱정과 죄책감에 터져 나갈 듯한 감정에 몸이 받쳐주질 못해 고통받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는 큰 일 없지만 확신할 수는 없기에 ‘아무 일 안 생길 거다.’라는 안심을 주기는 어렵다. 다만 의사 입장에서 뇌 CT 같은 영상검사를 권하는데, 또 부작용을 설명할 수 의무가 있기에 설명하다 보면, ‘고농도 엑스레이 조사에 백혈병 등의 위험도가 있고...’ 정도에서 엄마들은 울음을 터뜨린다. 자식의 외상은 이 정도로 부모에게 큰 정신적 스트레스다.
이미 크게 다친 자식이 있는 이라면 그는 평생을 고통받아야 한다. 떠올리면 강한 기억이 있다. 어느 60대 아버지였다. 그는 걸핏하면 화를 냈고, 직업은 택시기사였다. 나는 그의 아들의 드레싱 때문에 하루 30분씩 싫어도 얼굴을 봐야 했다. 아들은 교통사고로 벌써 1년째 누워 지내고 있었다. 가해자 역시 택시기사였다. 다른 환자 간병인들에 의하면 그는 하루에도 여러 번 그 택시기사의 부주의한 운전을 욕한다고 했다. 화내는 걸 보면 그 역시 길에서 그럴 것 같았지만, 상처 받은 아비 앞에 누가 그리 말할 수 있겠는가?
병원에서 보호자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기는 어렵다. 나는 보호자에게 잘 휘둘리는 편은 아니라서 경중을 잘 판단해 들어주는 편이다. 하지만 그의 경우 아무리 시답잖은 요구를 해도 한 번도 무시하거나 허투루 여긴 적이 없다. 그에게 그 정도는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드레싱 하는 동심원 방향이나, 거즈를 붙이는 각도같이 별 것 아닌 걸로 트집을 잡을 때는 나도 발끈했지만, 한 번 더 참아 그를 노엽게 하지 않았다. 옆 침대의 다른 보호자가 그의 예전 모습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저 양반, 원래 안 저랬어. 우리 교회 사람이거든요. 조용하고 착하고 그랬지. 화 내고 그러지 않았는데, 아들 저렇게 되고 사람이 변한 거야.”
아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환자는 식물인간으로 입을 헤 벌리고 숨은 목에 뚫린 구멍으로 기계에 의존해 쉬고 있었다. 밥은 배에 뚫린 구멍으로, 약은 팔에 파고든 관으로 받고, 소변은 성기에 쑤셔 넣은 관으로 빼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곳을 지키며 아들의 이를 닦고, 눈곱을 떼고, 몸을 닦고, 기저귀에 똥을 받았다. 점심에는 책을 읽어 주고, 일요일에는 병원 교회 강단 바로 밑에 아들 바퀴 침대를 끌어다 놓고 설교를 들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다른 환자를 보러 병실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그 환자를 보게 되었다. 환자의 아버지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아무 말이 없는 아들의 몸을 닦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아들이 다친 처음 순간부터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인생에서 열정이란 열광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시간을 견디는 인내야말로 한 인간을 칭찬하기 마땅한 성품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매일 같이, 벌이도 없이 한 곳에서, 성과 없는 지겨운 수발을 드는 그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모습에서 이전에 느끼지 못한 큰 감동을 받았다.
나는 그의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가 오랜만의 인사를 건넸다. 자기를 기억해주는 어린 의사를 그 역시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는 과일 음료 하나씩을 들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는 좀 더 깊거나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불행의 흔적인 움푹 파인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긴 이야기의 끝을 이렇게 맺었다.
“선생 말처럼 난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건, 한 번이라도 저 녀석과 눈을 마주치는 것뿐입니다.”
2019년 4월 20일,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방화 살인으로 다섯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중 둘은 12세, 18세의 어린 여성이었다. 나는 유족 인터뷰에서 한 아비를 보았다. 그는 어린 딸의 죽음을 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떤 모르는 미친 사람이 집에 불을 지르고 흉기를 휘둘러 딸과 어머니를 죽였다. 그리고 자기 손으로 딸을 수습해야 했다고 했다.
슬프고 화가 난다. 모두가 그럴 것이다. 타인도 이런데, 실제로 딸을 잃은 이 아비의 심정은 어떨까? 그 어떤 말로 표현함이 가능이나 할까?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 육체 안에 차마 한 글자 새기기도 어려울, 극한의 감정이 분명하다. 언어는 영혼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하지만, 가장 질 낮은 표현 도구다. 나는 이럴 때 글 쓰는 사람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 한탄스럽다.
아까운 생을 맺어야 했던 아이들을 포함해, 모든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Photo by: Joanne Francis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