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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쌤 Nov 19. 2018

산이를 향한 디스 랩, 한계점.

제리케이, 슬릭의 산이디스에서 소외된 힙합

 나는 힙합장르를 주로 듣는다. 힙합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 및 정신을 노래와 가사를 통해 승화시켜낸다. 가장 자유로운 음악장르가 힙합이다.


 물론 지나친 자신의 생각의 표현에는 상대에 대한 디스를 포함한다. 디스가 심해 법적고소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디스역시 힙합의 문화라 할 수 있다.


왜곡된 페미니즘을 디스한 산이와 이를 디스한 제리케이ㅣ 사진출처 : http://m.ihalla.com/Article/Read/1542503865613618322#06yC


 남성혐오를 목적으로 사건을 왜곡한 것으로 잠정확정된 이수역사건을 계기로 래퍼 산이가 남혐으로 변질된 일부 페미니스트를 디스하는 곡을 냈다.


 왜곡된 페미니즘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산이의 노래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래퍼 제리케이가 이에대한 디스곡을 냈다.


 제리케이는 산이가 군대를 가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군대를 지적할 자격이 있냐 및 여전히 남녀간의 임금격차가 크다는 사실을 근거로 산이를 디스했다.


제리케이에 실망해, 그동안 모았던 제리케이 엘범을 부숴버린 일부 팬ㅣ 출처 : http://hiphople.com/kboard/12954550


 사실 이러한 산이를 향한 제리케이의 디스는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옮긴 힙합스러운 것이 아닌 워마드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


 산이의 노래가 나온 후 워마드에서는 산이가 군대를 가지 않은 미국인이라는 사실과 임금격차는 통계로 존재한다며 산이를 공격했다. 제리케이는 이러한 논리를 그대로 가사에 담았다.


 엄밀히 따지면 군대이야기는 산이가 같은 권리를 주장하며 의무를 하지않는 주장을 비판한 것으로 이에 산이의 군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물타기이다.


 또한 임금격차에 대한 통계역시 같은 근무환경, 같은 업무강도, 같은 업무시간을 했을때의 통계가 아닌 전반적 성별격차에 대한 통계이다.


 다른 업무, 다른 시간의 일을 하는데 같은 돈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억지다. 만약 같은시간동안 같은 업무를 하는데 임금이 다르면 위법이다.


 페미니스트들이 혹여나 이에 대한 문제지적을 하려면 왜 다른 일을 하는지를 분석해서 이를 해소하기위해 노력하는게 맞지, 단순 결과인 임금격차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틀린 사고이다.


 결국 제리케이는 산이를 디스하며 쓴 가사들은 팩트체크없이 단순히 워마드의 논리를 인용한 가사라고 할 수 있다. 이건 힙합이 아니다.


산이, 제리케이 디스를 본 래퍼 도넛맨의 반응


 마이크를 받지 못해서 유명한 래퍼 도넛맨은 이 상황에 대해서 위의 이미지와 같은 생각을 뱉었다. 전적으로 맞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산이는 자신의 생각을 음악을 통해서 드러내는 것이지만, 제리케이는 산이디스를 통해 자신의 이름 및 음악을 알리려는 행위이다.


 즉 제리케이의 행위는 주객이 전도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산이의 2차 디스랩과 슬릭의 산이 디스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한국 힙합의 원로 원썬이 평가한 산이의 랩


 맞다 원썬의 이야기처럼 산이의 가사에는 힙합적 사회적 개념이 잘 나타나있다. 산이는 굳이 인기를 위해 페미니즘이슈를 건들 필요가 없다.


 산이는 남성혐오로 변질된 일부 페미니스트들에 대해서 분노했고, 이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3분여의 힙합을 통해 표출해 내었던 것이다.


 단순히 무명이여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페미니즘을 이용한 제리케이, 슬릭과는 다른 랩가사의 깊이를 산이는 보여줬다.


비트코인을 패러디한 페미코인이라는 단어가 온라인에서 쓰인다.



 요즘 온라인상에서는 페미코인이라는 단어를 쓴다. 이는 페미니즘이 돈이 되기에,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하는 행동을 희화화시키는 표현이다.


 요즘 한국 힙합의 트랜드는 돈이다. 많은 래퍼의 가사에서 돈이 언급된다. 하지만 그들은 돈이 메인이 아닌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기위해 돈을 사용한다.


 즉 돈만 쫓아 자신의 이미지를 깎아내며 가사를 쓰지않고, 돈을 소재로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표현한다. 그속에서 멋이 느껴진다. 그건 힙합이다.


 제리케이와 슬릭은 자신의 가치관 및 신념에 대한 고민없이, 자신의 인지도를 위해 그냥 극단적 온라인 여론를 차용해서 가사를 써서 산이를 디스했다.


 제리케이와 슬릭 그들은 힙합은 소외시켰다. 힙합속의 페미니즘이 아닌 페미니즘속의 힙합이 되어버렸다. 전혀 멋있지 않다. 이건 왜곡된 힙합이다.


 페미니즘성향으로 페미니즘을 디스한 산이를 디스한 제리케이와 슬릭의 디스가 씁쓸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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