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춥고, 외롭고, 깊고, 짙은

by 분더비니






침묵만이 가득한 밤, 책장 넘어가는 소리만이 켜켜이 쌓인다. 다음 문장으로 매끄럽게 잘 넘어가지 않는 순간이 있다. 슬픔의 단어들이 자꾸만 눈에 밟혀서다. 글자 사이 작은 여백에, 그리운 얼굴이 스친다. 귀에 익은 말들이 들린다. 먼저 떠난 이의 사무치는 얼굴이 보이고, 희끗한 눈물도 보인다. 그들의 또렷한 문장을 한참 듣고 또 듣는다.

그들은 그들을 더 세게 붙잡지 못했던 나를 원망하고 있을까. 마지막인 줄 몰랐던 우리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있을까.

나만큼 그들도, 나를 그리워 하고 있을까.

시집에 여백이 많은 이유는 천천히 시상에 젖기를, 독자 그 자신 또한 한 편의 시를 담아내기를 바라기 때문이리라. 이제는 주인 없는 말들을 책장 한 구석에 받아 적는다. 전할 수 없는 말들을 꼭꼭 눌러 담는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라고.







잠들기 전이면 머리맡에 둔 박준의 글을 읽었다. 겹겹이 쌓이는 어둠의 크기만큼 울적한 마음도 함께 쌓였다. 한동안 꿈에서 그리 환하지 않은 꿈을 꿨다. 누군가 나를 떠나가는 꿈을 꿨고, 떠나간 이가 오랜만에 나타나는 꿈을 꿨다. 눈을 뜬 나는 어린아이처럼 뜨겁게 울었다. 눈물은 눈가를 타고, 뺨을 지나서 베갯잇에 가닿았다. 축축해진 베개는 금세 차가워졌다. 나는 한참을 울고, 또 울다가 다시 다른 꿈으로 꿈을 덮으며 잠을 청했다.

시인이 제 글에 정직했다면, 그는 분명 많이도 울었을 것이다. 시인이 제 말들에 솔직했다면, 그는 분명 많이도 외로웠을 것이다. 울음을 머금은 종잇장이 무겁다. 외로움을 적신 글들이 춥다.


혼자라고 생각했을 때, 그의 외로움을 읽는 것은 작은 위로가 된다. 남의 슬픔과 나의 슬픔을 비교해서 얻는 위안은 아니다.

다만, 습자지처럼 무언가를 잔뜩 머금은 활자에는 강한 힘이 있다는 것. 그래서 언제든 분명히 기댈 수 있다는 것. 이 깊고 짙은 밤에 깨어있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 나보다 조금 더 살아낸 그의 농익은 슬픔으로부터 용기와 희망을 배울 수 있다는 것. 그걸로, 마음은 조금이나마 안정이 된다. 그래 그걸로,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