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봄, 뉴스마다 산불 소식이 이어졌다. 붉은 불길이 산허리를 삼킬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줄짜리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산청 산수유꽃 축제 취소.”
불빛이 삼켜버린 봄, 그 문장 하나가 이상하게도 마음을 밝히고 지나갔다. 산수유꽃 —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의 이름이었다.
산수유꽃을 처음 본 건 전남 구례였다. 3월의 끝자락, 마을 전체가 노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산허리까지 번진 노랑이 햇살에 부서져, 마치 마을이 빛을 이불처럼 덮고 있는 듯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차나 약재의 열매로만 알던 산수유가 이렇게 따뜻한 꽃을 피운다는 걸.
꽃 한 송이는 작고 단정했다. 개나리처럼 선명하지도, 유채처럼 화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여러 송이가 모여 가지를 채우면 그 단정함이 모여 부드러운 온기를 만들었다. 가지들이 모여 한 그루의 나무가 되고, 그 나무들이 다시 산을 덮을 때, 산수유꽃은 마침내 봄을 밝혀주었다.
그 풍경 앞에서 나는 생각했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고. 혼자일 때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만, 함께 모이면 서로를 지탱하며 빛을 낸다. 산수유꽃은 말없이 그 사실을 가르쳐준다. 작은 빛 하나로는 어둠을 뚫을 수 없지만, 여럿이 모이면 산을 덮을 수 있다고.
젊을 때 나는 화려한 것들에 눈을 빼앗겼다. 벚꽃의 요란함, 진달래의 붉음이 봄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때의 나는 눈부심을 사랑했지만, 이제는 눈부심보다는 따뜻함의 색을 찾는다. 단정한 노랑, 조용한 빛, 함께 있을 때 피어나는 색.
시간이 흘러도 산수유꽃은 매년 같은 자리에 핀다. 누런빛이 전하는 말,
“함께 살아가라.”
그 조용한 속삭임에 마음이 멈춘다. 우리의 삶도 그 꽃처럼,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있을 때 더 환하고 더 오래 빛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