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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선아 Jan 19. 2023

좋은 생각을 자주 생각해

행복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듯 좋은 것들은 찰나에 사라지니까

#생각하기, 떠올리기, 기록하기


 대체로 산만하고 어느 하나 집중이 어려워 성인 ADHD를 심각하게 의심하곤 하는 내가 생각이란 것을 제대로 할 때가 있다. 혼자 운전하는 순간이 바로 그렇다. 운전이란 핸들을 잡고 무조건 한자리에서 해야 하는 일이므로 어디론가 이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단 몸을 붙잡아둔다. 앞을 보지 않으면 운전이 불가할뿐더러 잠깐의 주시 태만으로도 큰 사고의 위험이 있어 시선 또한 붙잡아준다. 도통 가만히 앉아 침착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얌전히 앉아서 앞만 보며 한 가지 일만 하고 있으니 운전하는 동안만큼은 강제로 주의가 집중된다. 덕분에 사정없이 날아다니던 생각의 편린들도 나 홀로 있는 차 안에서는 살며시 보조석에 자리를 잡아 앉는다.      


 흔치 않은 집중의 시간. 모처럼의 고요. 그간 미루었던 고민이나 문제를 곱씹어 보기도 하고 쏟아지는 햇빛, 새파랗거나 희뿌연 하늘, 내리치는 눈과 비를 오롯이 느끼며 이런저런 사색을 하기도 한다. 사유의 대상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부러 드러내는 것도 있고 불쑥 나타나는 것도 있다. 억지로라도 번잡함과 어수선함에서 벗어나서인지 그럴 땐 복잡하지 않은 좋은 생각들이 많이 떠오른다. 부정에서 멀어져 기대와 희망 같은 간지러운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얼추 명언처럼 꽤 쓸만한 문장이 불현듯 스치기도 한다. 다만 이 순간 아쉬운 것이 있다면 몸과 시선이 붙잡혀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기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좋은 생각들이 내 머리에서 나왔다니 크으- 나중에 글로 써야지. 아무튼 어떤 식으로든 써먹어야겠다는 다짐으로 다시 운전을 하다 보면 결국 그 멋진 생각들이 뇌 어딘가로 다시 흡수되고 만다. 돌아와 떠올리면 무엇을 떠올렸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심지어는 무언가를 떠올렸다는 기억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운전하다 말고 떠오른 문장을 기록하기 위해 급히 차를 세웠으려나.      


 나쁜 생각 아니, 좋지 않은 생각이라고 해두자. 딱히 내게 이롭지 않은 생각들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 무덤을 몇 개나 쌓아 놓고도 떠날 줄을 모르면서 좋은 생각은 왜 그토록 쉽게 휘발되는지. 좋은 생각, 좋은 기분, 좋은 문장이 떠올랐을 때 오래도록 기억하며 곁에 두고 싶은데 좋은 것들은 너무 찰나에 나타났다 찰나에 사라진다. 형태를 갖지 못한 생각은 별로 힘이 없다. 관념이란 잡히지 않으므로 곁에 둘 수 없고, 곁에 없는 것을 느끼기란 쉽지 않으니까. 좋은 것들을 붙잡아두고 힘을 얻고 싶다면 글자로든 음성으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하는 수밖에 없지만 무성의한 나는 기록에도 부지런을 떨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형태를 갖지 못한 채 스치고 지나갔던 무수한 생각들 때문에 나는 가끔 구멍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무언가 나를 가득히 채웠던 것 같은데 아무것도 남지 않고 전부 사라져 버린 것 같은 기분. 자주 공허에 시달리는 데에는 제때 기록하지 못하는 게으름도 한몫할지 모르겠다.     

     


 

 긍정 언어, 중립 언어, 부정 언어 중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더 잘 기억할까. 우리의 뇌는 부정언어, 특히 욕과 같은 금기어를 다른 언어보다 4배 더 강력하게 기억한다. 한 번 떠오른 부정적인 생각을 아무리 떨쳐내려야 떨쳐낼 수 없는 것은 공포에 더 쉽게 반응하고 위험에서 도망칠 궁리밖에 없는 우리 뇌와 몸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좋은 것, 행복한 것, 안온한 것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느슨하게 만들어 타이트하게 각인되지 못하는 것이다. 역시 좋은 것들이 그리도 빠르게 자취를 감추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좋은 생각은 뇌 과학적으로도 금세 사라지고 만다는데 그때그때 기록하지도 못한다면 그저 이렇게 늘 구멍이 뚫린 채로 살아야 하는 걸까.       

 

 ‘행복은 아이스크림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이스크림은 입을 잠시 즐겁게 하지만 반드시 녹는 것처럼 행복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에 따르면 행복은 큰 것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라고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주, 여러 번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것. 행복이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그렇다면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좋은 생각, 좋은 문장도 자주, 여러 번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떠올린 만큼 순간순간 기록하면 좋지만 기록하지 못했다면 기록하지 못한 만큼 더 자주, 의식적으로 좋은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우리의 뇌가 긍정보다 부정을 4배 더 기억하는 상황을 어쩔 수 없다면 좋은 생각을 4배보다 더 많이 떠올려 보는 것. 글자와 음성으로 기록하지 못해 형태도 없이 그 힘이 미약하더라도 아주아주 자주 떠올리다 보면 미약한 그 힘에도 근력이 붙지 않을까. 그 좋은 생각들이 생각 그 자체로 내 안에 식스팩처럼 기록되진 않을까.      


 실은 언제 행복했느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을 만큼 나는 행복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좋은 생각을 떠올리면 좋은 생각을 떠올릴 수 있는 내가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내가 멋지다고 느껴지는 때. (윽, 지독한 나르시시스트) 그럴 때는 만족감이랄까, 행복 비슷한 기쁨을 조금 맛보는 것도 같다. 그렇다면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길은 역시 더 많이, 더 자주, 계속 계속 멋지고 좋은 생각을 떠올리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그로 말미암아 결국에 진짜 멋지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참 좋겠다. 좋은 생각이 가득한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책을 한 권 펴내는 것도.


 좋은 생각 많이 하기 프로젝트를 위해 오늘부터 혼자 운전하는 시간을 데일리 루틴으로 만들어야 하나 싶다. 디젤차라 기름값이 걱정이네. (멋지고 좋은 사람 되기에 걸림돌이 기름값이라니 요지경이다.)   


 

휘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름 열심히 기록하는 중 / 차 안에서 바라본 노을 / 차에서 듣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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