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 끓는 소리

by 유선아

냄비가 끓는다. 양지를 사다가 1시간 이상 끓인다. 시판 음식이나 코인육수 등을 자주 사용하는 편이지만, 가끔씩 이렇게 한우 양지를 덩어리째 사다가 국물을 낸다. 최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냉동식품과 레토르트 식품, 시판 소스와 육수의 조합으로 끼니를 차리다 보면 어쩐지 몸이 마이너스 통장 같은 느낌이 들어 한 번씩 신선한 재료와 아날로그 기술로 상환을 시도한다. 몸은 통장처럼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동등하게 쳐주지 않지만, 그래도 죄책감을 덜기 위해 허우적허우적 음식을 할 때가 있다.


양지는 끓일수록 고기가 연해진다고 시어머니께 배웠다. 불판에 익는 고기는 익을수록 질겨지는데, 물에 삶는 고기는 익을수록 물러지는 것도 인생과 비슷하다. 누구를 만나고 어떤 환경을 접하느냐에 따라 나도 질겨지거나 물러진다. 바짝 구워진 고기는 칼과 가위가 필요하지만, 물에 삶은 고기는 손으로도 쫙쫙 찢어진다. 질겨질수록 더 날카롭고 무시무시한 것들이 필요하다.


고기를 넣은 물이 끓기 시작하면 갈색 거품이 솟구치는데, 생각보다 그 속도가 엄청나 얼른 거품을 걷어내거나 불조절을 하지 못하면 냄비 밖으로 전부 넘쳐버린다. 솟구친 것들은 일단 어떤 식으로든 밖으로 나가려는 속셈이다. 너무 오랫동안 죽은 고기 안에 있었던가. 아무튼 오랜 세월 나름의 노하우가 생겨 이제는 난리법석 없이도 거품을 걷어낼 수 있다. 비결은 물이 끓는 소리가 날 때 즈음 냄비 곁을 잘 지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냄비에 대한 적잖은 관심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솜사탕처럼 부푼 거품을 걷어내고 또 걷어내고 물 위에서 부글거리는 기름띠까지 계속 걷어내다 보면 이내 맑은 육수가 나온다. 육향은 충분히 머금고 있으면서도 핏물의 불쾌함이나 기름의 느끼함 없이 깔끔하고 담백한 육수.


그러니 속은 좀 끓여도 괜찮다. 속을 좀 끓여야 불쾌하고 느끼한 것들을 걷어내기 좋다. 끓지 않는 냄비에 관심을 두는 이는 없다. 어느 정도는 팔팔 끓어오를 줄 알아야 내 곁에 정성을 다해 머물러주는 이도 생긴다. 행여 타지는 않을까 넘치지는 않을까 국자를 준비하고 곁을 지키며 불조절을 해줄 누군가가.


자, 이제 소고기 뭇국을 할 수 있다. 미숙한 요리사는 손맛을 위장한 감칠맛을 위해 약간의 MSG도 첨가할 예정이지만 괜찮다. 대체로 건강하고 꽤 맛있는 소고기 뭇국이 될 예정이므로.


끓어 넘치는 것이 두려워한 번도 끓지 않은 삶이란 얼마나 비릿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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