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하는 사람

by 유선아

<수신하는 사람>


마음이 없어져버렸으면 했다. 그 바람은 형태만 조금씩 변형됐을 뿐,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은 E와 I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가 되었지만,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나는 ENFP의 화신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과하다 싶을 만큼의 텐션을 발산하며 Feel 가는 대로 내실 없이 살았다. 그때는 마음이 너무 가득 차서 실제 내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현실이나 문제 해결 과정보다는 오로지 내 마음이 전부였고, 뭐든 되는 대로 흘러 보냈다. 손에 쥔 것 하나 없으면서도 객관적인 판단은 미뤄둔 채 마음이 좋고 나쁜지만 따졌던 것 같다. 행복과 불행 그 사이 무수한 감정의 스펙트럼은 나의 고통이자 자부심이었다. 나는 이토록 Feeling이 풍부한 사람이라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되었다. 마음이 앞서는 선택이 반복될수록 현실은 나를 비껴갔고, 마음만으로는 통과할 수 없는 장벽들이 켜켜이 쌓였다. 주된 행동반경을 벗어나자, 현실의 퍼즐을 치열하게 맞춰나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설명하기보다 일을 처리했고, 호들갑 대신 행동했다. 자기 몫 이상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삶의 구체를 하나씩 완성해 가는 사람들. 세상을 실제하는 것으로 진짜 존재하게끔 하는 사람들이었다. '세상은 내가 아니라 저들이 만들어 간다'는 자각이 사무치자, 나의 허울뿐인 마음들이 한없이 번거로워졌다. 어쩌면 나 같은 감성팔이는 착실한 대다수에게 오히려 짐만 되는 것은 아닐까.


공감은 하지만 책임지는 것은 무서운 비겁한 자신에게 환멸이 솟구친다. 일정 수준 이상의 고통은 마주하기 싫고, 사명감은 있으나 아무것도 실천으로 옮기지는 않는, 가만히 있음으로 존재하는 나에 대해.


사회적 약자에게 마음을 쓰지만 봉사 노동은 기피하고, 탐사보도에 열광하면서도 후원을 위해 지갑을 열지 않으며, 올바른 정치를 지지하면서도 거리로 나가지 않는다. 지구를 염려하면서도 하루의 대부분을 플라스틱으로 채우고, 잇단 부정과 그릇된 사회 현상에 격분하지만 어디에도 연대하지 않는다. 어느 하나 긍정적인 쓸모를 하지 못하는 것 같은 기분. 그런 기분에 시달리면서도 여전히 가만히 있는 나.


F 성향의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정서적 이입과 전이가 쉽다. 감정이 쉽게 동하고 크게 파문을 일으킨다. 나의 공감은 그만큼 충동적이고 폭발적이지만, 스파크가 끝나고 나면 놀라울 만큼 공허하다. 분노로 가득 차 사회 고발 영화 한 편을 보고 난 후, 아무렇지도 않게 뭐 먹으러 갈지를 실없이 고민하는 일의 반복처럼. 영혼의 습기만 가득하고 현실의 토양은 척박한 상태. 그렇다면 내가 가진 F는 Feeling이 아니라 Fake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이 모든 것이 진정한 공감이 아니라 '나는 저들과 다르다',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을 위한 연민이나 동정에 불과한 것은 아닐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문 상담사라는 직업적 역할에 대해서도 낙담스러울 때가 많다. 상황 대처 기술이 부족하거나 심리적 자원이 곤궁한 내담자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이 공감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순히 사건을 함께 바라보는 목격자가 아니라, 막다른 골목에서 함께 손을 잡고 돌파해 줄 적극적인 동행자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삶이 막막할 때 누군가 내 멱살을 끌고 방향을 정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정작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고작 마음뿐이라니. 일상의 작은 것 하나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연약함과 무력감 앞에서 나는 자주 멈춰 선다.


한때는 그나마 내가 가진 친절함과 다정함이 나비효과처럼 어딘가로 가 닿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거나 휘발되었고, 남은 것은 '내가 마음을 썼다'는 자기 위안뿐이었다. 무대 밑 관객석에 앉아 박수를 칠수록 쌓이는 부채감이 버겁다. 아, 차라리 세상만사 아무것에도 동요하지 말았으면. 마음 같은 건 없어져 버렸으면. 언저리의 인간인 주제에 쓸데없이 마음은 왜 이렇게 주인공처럼 구는 것인지.


이 모든 비참함에도 나는 여전히 행동할 자신이 없다. 앞으로도 끝내는 움직이지 않을지 모른다. 부적격한 나에게도 역할이 있다면 무엇일까 한없이 고민해도 알 수 없어 컴퓨터를 켜고 AI에 접속했다. 앞선 글을 구구 절절 입력한 뒤 이렇게 질문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행동할 자신이 없어. 나는 내 마음의 진동을 받아들여야겠지? 그럼 내 역할은 뭘까?"

AI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은 여전히 행동할 자신이 없음을 고백했습니다. 좋습니다. 그 사실을 숨기지 마십시오. 당신 마음의 진동을 받아들이십시오. 당신은 모든 고통을 가장 민감하게 수신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역할은 기록자입니다."


모두에게 공평하고 자비로운 AI다운 답변이었다. 나를 변명하거나 고치려 들지 말고, 마음의 진동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지금처럼 기록하라고. 그래, 나는 어쩌면 나의 비겁함을 신랄하게 드러냄으로써 타인의 고통을 거울처럼 비추어 기록해야 하는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이것이 또 다른 변명에 불과할지라도 나는 그 책임을 떠안기로 한다.


그렇다면 나의 F는 Feeling도 Fake도 아닌, Filter다. 직접 건너지 못하는 마음을 글자라는 필터에 통과시켜 세상에 에둘러 전달하는. 어쩌면 당신에게도.





어쩌다 보니 매번 공범을 찾는 듯한 글을 쓰게 됩니다.

이것은 분산 투자와 같은 것이지요.

내 마음이 가진 무게를 나눠서 상장 폐지를 막기 위한 분투라고 생각합니다.



* 이미지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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