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야할 보고서가 있어 별다방에 왔다. 오늘처럼 보고서를 써야 하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해 이곳을 찾을 때면, 거의 늘 오늘의 커피 그란데 사이즈를 마신다. 초록색 모자를 쓴 직원이 갓 내린 커피가 매우 뜨거우니 꼭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럼 얼음을 좀 넣어주실 수 있겠느냐는 나의 부탁에 친절한 그 직원은 난감해했다. 이미 머그잔 가득 커피가 넘실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음이 들어가자 순식간에 부피가 커진 커피는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다. 뚱뚱한 머그컵 안으로 새까만 커피가 바다처럼 출렁인다. 초록색 모자를 쓴 직원이 이번에는 커피가 넘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여전히 친절하게 물티슈까지 챙겨주면서.
쟁반에 놓인 머그컵을 들고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발을 옮긴다. 자칫하면 컵 너머로 커피가 흘러내릴 판이다. 조심조심 계단을 올라가는데, 아차 하는 순간! 커피 표면이 경사를 이루더니 테트라포트를 치고 넘는 파도처럼 머그잔 밖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튀어 올랐다. 한 번 탈출을 시도한 커피는 여기저기 후룩후룩 쏟아져 내렸다. 한 방울도 흘리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나도 ‘에라, 모르겠다!’ 싶어지는 지점이다.
한 번 크게 흔들린 것은 한동안 흔들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커피도 그렇고, 사람 마음도 그렇다. 흔들리는 것을 멈추고 넘치거나 쏟아지는 일을 그치게 하기 위해서는 일단 잠시 멈추어야 한다. 멈춰서 흔들림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시작하던지, 아니면 컵 안에 있는 것을 미련없이 덜어내고 흔들려도 넘치지 않을 만큼만 남겨 두어야 한다. 나처럼 과격하고 조심성 없는 사람이라면 멈춰서 다시 시작하더라도 넘치기 쉽기 때문에 애초에 넘치지 않을 만큼의 양으로 시작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면 적당한 양의 뜨거운 커피를 천천히 식혀 마셨으면 됐을 일을, 흘리지도 않겠지만 뜨겁지도 않겠다는 얄궂은 욕심이 또 한 번 일을 키웠다.
돌아보면 늘 그랬다. 두세 단계로 나누어 차근차근 진행하면 별 탈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나는 언제나 한 번에 해치우려 드는 버릇이 있다. 당장 오늘 아침도 마찬가지다. 외출을 위해 문 앞을 나서는데, 시간이 없다고 허둥대면서도 차키, 마스크, 장갑, 목도리, 혹시 모르니 모자, 또 혹시 모르니 립틴트까지 손에 닿는대로 붙잡는다. 양손으로는 감당이 안 돼 그것들을 양팔에 품어 안고 방과 현관을 들락날락한다. 그러다 결국 하나가 떨어지고, 그 하나를 줍기 위해 허리를 굽히는 순간, 양손과 양팔 가득 쥐고 있던 것들까지 커피처럼 와르르 쏟아진다. 쓸데없는 욕심을 부린 것은 정작 나인데,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를 외치며 세상을 탓하는 어리석은 버릇.
보고서를 쓰기 위해 켜둔 노트북 옆에서 쟁반 여기저기 묻은 커피를 닦아내며 생각했다. 한꺼번에 모든 일을 할 수는 없다. 나에게도 만족스럽고 타인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을 만큼의 ‘넘치는 적당함’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알면서도 나는 앞으로 몇 번이고 이렇게 쏟아내겠지. 그래도 괜찮다. 다시 닦아내며, 넘치는 욕심에 울고, 세상에 외치면서 배워나가면 된다. 그러니 일단은 불필요하게 컵의 크기를 키우는 대신 내가 흔들림 없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채워 넣는 연습부터 해야겠다.
그래도 안되면? 넘치고 흘러도 괜찮다는 주문이라도 외워볼까.
야발라바히기야 야발라바히기야
*이미지출처: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