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찌 Dec 30. 2022

출혈경쟁으로 가격선도? 가치로 시장과 소통했으면

기업의 존재를 타당하게 만드는 가치에 대해 생각하다

독점을 위해 많은 스타트업들이 출혈 경쟁을 당연시하고 있다. 쿠팡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숱한 의심과 지난한 세월을 통과해 결국 축포로 하늘을 물들였다. 승전보를 들은 스타트업씬에선 자신도 줄줄 새는 돈의 흐름이 조만간 역류하여 깨진 독을 차고 넘치게 하리라는 기대감에 취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시장 독점을 노린 기나긴 출혈 게임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 경쟁을 통해 품질 개선, 합리적인 가격, 각종 혜택들의 덕을 보며 언제 어디서 프로모션이 뜰지 눈을 부릅뜨고 살피고는 있지만 말이다. 나는 이제 아주 영악해져서 이미 털릴대로 털린 내 개인정보를 한 번 더 오픈해주는 조건으로 각종 100 원딜 이벤트를 열심히 챙기고 있다.(그 이후에 앱을 삭제하거나 채널톡 친구를 차단하는 것은 기본이다.)


돈을 쏟아 붓는 마케팅은 최근 몇년 사이에 흥행했지만, 나같은 체리 피커들에겐 단 한 번의 Wow 밖에는 이끌어내지 못했을 테다. 물론 퍼널 개선을 위한 실험이 부단히 이뤄졌겠으나 경쟁사들의 비슷한 마케팅에 의해 고객님의 첫 방문은 그야말로 가시가 다 제거된 꽃길이 되었고(100 원딜에는 심지어 배송비도 붙지 않고, 최소 주문금액이 없는 형태까지 등장했다.) 서비스들은 각자의 색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향평준화됐다.



유동성이 풍부했던 지난 몇 년간 모두의 관심은 고객 수에 집중되었다. 그들이 얼마나 수익을 가져다주느냐는 완전히 뒷전이었다. 고객의 시선과 시간을 얼마큼 사로잡았는지가 가치 평가의 기준이 되었다. 기업들은 사람만 모으면 언제든 수익화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카카오톡과 메타가 멋진 선례를 보여준 것처럼 활성 사용자는 그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이 보였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고객이 느끼는 가격 앵커*는 바다 깊이깊이 내려가 바닥에 드러누워 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료로 서비스를 사용하는 동안의 편익은 당연시되고, 잠깐의 로딩 시간과 기대에 어긋난 경험은 별점을 여럿 깎기에 충분한 동인이 된다. 그런 고객들이 모여든 후에 청구서를 들이밀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가격 앵커* : 특정 서비스나 상품의 구매를 고려할 때 기준으로 삼는 가격대)


기업 입장에선 그동안 우리 서비스나 제품을 이용해달라며 그렇게 허리를 숙였는데 이제 와서 무료 잔치는 끝났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서비스와 제품은 카피하기도, 대체하기도 너무나 쉽다. 핸드폰 화면 일부를 부동산처럼 임차하여 광고주들을 들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저하되는 서비스 만족도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고객 중심 사고를 부르짖던 그들이 교묘하게 고객의 돈을 원한다는 사실이 기업의 도덕성을 찾는 시대에 상당한 불편감을 조성한다는 것 또한 내게는 기괴한 일이다.



만일 시장점유율이 최우선 목표라면 
그저 상품을 공짜로 나누어주면 될 일이 아닌가?

(그리고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시장 점유는 꿈같은 일이 되어버렸지만)

헤르만 지몬 <프라이싱> 중에서


스타트업 대표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사업의 시작은 고객의 불편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우리네 일상은 각종 버티컬 서비스로 인해 촘촘히 편리해졌다.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으니 우리가 할 일은 몇 번의 클릭 뿐이다. 웬만한 서비스들이 무료로 제공되는 마당에 돈을 내야하는 서비스는 상당한 심리적 저항을 일으킨다. 돈을 낼 때가 되어서야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는 불편에 얼마를 내는 게 적당할 지 고민하게 되며, 잃어버릴 돈은 얻게 될 가치보다 더 큰 크기로 지불 의사를 짓누른다.


가격 정책을 세우다 보면, 서비스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돈을 내서라도 써야만 하는 서비스란 어떤 것인가? 많은 스타트업들이 시장 규모를 보고 문제에 집중하지만, 많은 경우 그 해결책을 '플랫폼'으로 풀어내면서 소비자에게선 돈보단 시간을 요구하고 있다. 광고를 너무 심하게만 노출시키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자신이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테니 말이다.


광고를 보지 않기 위해 돈을 내는 소극적 소비가 아닌 삶에 필요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돈을 내는 적극적 소비가 많아지길 바란다. 기업 내부에선 활성 사용자 수와 체류 시간 대신 매출과 이익, 만족도(재구매, 리뷰)가 더 중요한 지표가 되길 바란다. 수없이 많은 무료 플랫폼에서 오랜 시간을 허비해 온 소비자로서 그러하며, 양질의 손익계산서를 뽑아내고 싶은 영리 기업의 조직원으로서 그러하다.



이 글은 서비스 과잉 시대에 소비자이자 생산자로 사는 것의 지겨움을 풀어낸 글이다. 그러니 모든 산업과 기업에 적용되진 않음을 인정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즈니스 모델 캔버스로 회사의 경쟁력 파악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