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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찌 Jan 11. 2023

유난한 도전이 없다면 스타트업이 아니다

토스팀 이야기를 읽으며 앱 서비스의 본질을 생각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준이 높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요구 수준이 매우 높다. 심지어 무료 서비스를 받을지언정 조금의 불편함도 감수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 게 요즘의 '유저'들이다. 그리고 나도 그 '유저' 중의 일부로서 때로는 한 소리를 하고, 광고를 꾸역꾸역 보면서 결제는 최대한 피하려고 애쓴다.


스타트업은 세상에 없던 서비스(나 재화)를, 혹은 있는데 불편한 것들을 개선한 그것을 만드는 회사다. 그래서 특정 니즈는 기똥차게 해결해 줄 수는 있어도 조금 더 광범위한 유저를 만나면 다양한 불만족 사항에 맞닥뜨리기 일쑤다.


그동안 나는 유저들의 콧대 높은 요구가 서비스 수준의 상향 평준화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이런 편협한 관점은 토스팀의 <유난한 도전>을 읽으면서 유저에 대한 이해로 전환되었다.



토스팀은 고객의 '미친 만족도'를 목표로 혁신을 거듭하는 조직이다. 과거엔 배민이 스타트업 씬의 조직문화를 대표했다면, 지금은 명실상부 토스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들이 대표 개인이 아닌 조직 차원의 회고록을 내놓았으니 스타트업 종사자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어쨌거나, 토스팀은 고객에게 압도적인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총력을 다한다. 처음에는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토스의 단순함을 지키기 위해 연 300억에 달하는 송금 수수료를 포기한 것, 이름 때문에 오해를 산 토스 대부 서비스를 즉각 종료시켜 버린 것, 외부의 개인정보 도용 사기로 인한 토스 고객의 피해에 토스가 보상안을 마련한 것까지 모두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들이었다.


투자금을 파먹으며 생존해야 하는 스타트업이 매출을 포기한다는 건, 미래의 BM을 뚜렷하게 그리고 베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수개월 수많은 팀원이 매달려 준비한 서비스를 잠깐의 고객 반응에 접어버린다는 건, 고객 경험에 마이너스 요소는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단호함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토스 고객이 어떤 이유에서든 토스를 사용하며 피해를 입지 않게 하겠다는 건, 보안 시스템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는 의미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토스는 우리 눈앞에 보이는 실질이 아니다.

앱을 실행하기 전까지 토스는

스마트폰 안에,

다른 앱들 사이에,

파란색 로고에 불과하다.


토스의 경쟁자를 살펴보면, 이 차이는 더 극명해진다. 은행과 증권사는 대한민국 여기저기에 지점을 갖고 있고, 은행 본점이나 증권사는 여의도나 종로와 같은 서울 노른자위 땅 위에 자리한다. 그들은 수십 년간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 앉아 돈을 빌려주거나 맡아주는 업무를 해왔다. 은행은 수십 년간 거의 망하지도 않았고, 돈을 떼먹는 일도 없었다. 은행은 신뢰할 수 있는 곳이다.


반면 토스는 편하기는 해도 나의 자산을 통째로 맡기기엔 한낱 앱에 불과하단 생각이 먼저 든다. 고객은 망설인다. '여기서 간편 송금을 하는 것까지야 좋지만 토스에서 증권 거래를 하고, 대출을 받고, 카드를 발급하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안전하게 할 수 있을까?'


토스는 "그래도 됩니다."라고 말하기 위해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만족감을 추구해야 했던 것이다. 고객에게 유일한 선택지가 되기 위해, 경쟁사들이 오랫동안 쌓아 온 신뢰자산보다 더 큰 자신감을 보여주기 위해 토스는 비교할 수 없는 우위를 점해야 했다.


토스만 유난스러운 게 아니어야 한다. 스타트업은 어떤 서비스/제품 분야이든지 간에 어느 정도 '대체재'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유난스럽게 굴어야 고객의 눈에 띄고, 선택을 받을 수 있다. 그동안 고객들이 유난스럽다고 생각한 나 자신을 반성한다. 스타트업은 고객보다 더 유난을 떨어야 생존한다.


책을 내 준 토스팀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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