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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Oct 20. 2023

시골 전문 여행자입니다-충남 태안편

태안에서 한 달 살기를 마치며

 먼저 나는 충청도를 몹시도 사랑한다. 충청도에서 광고 의뢰받은 것도 아니고 충청도에 어떤 적을 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곳은 나의 고향이 아닐뿐더러, 처음 이사 왔을 적에 충청도 통틀어 아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충북에 산 지 겨우 3년 넘었을 뿐이다. 그런데 충청도는 그 어떤 도시보다 정말 매력적이다. 앞선 글들에도 나의 충청도 사랑이 곳곳에 묻어나 있을 것이다.


 3년 전 내가 정착한 곳은 충청북도 음성군이었다. 나는 충북의 곳곳을 다 돌아다녀 보았다. 내 발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는 나의 ‘충북력’이 꽤 만족스러웠다. 나는 올해 봄부터 여름까지의 원주-함안-함양의 긴 여행을 마치고 이제 좀 회사 일에 집중하면서 진득하게 사무실에 눌러앉아 개들 밥도 잘 챙겨주며 살고 싶었다. 날도 점점 추워졌고 추운 날은 밖에 다니길 꺼리는 편이다. 그런데 태안이라니. 태안에서 한 달 살기를 모집한다는 모집 글을 봤을 때 이미 심장은 서해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평생 살면서 충남은 가 볼 기회가 아예 없었던 곳이었다. 당장 신청서를 썼다. 그리고 합격 문자를 받았다. 오예.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은 정말 놀랍다. 충남 지역은 먹방 여행 명목으로 하루 숙박비 최대 7만 원, 체험비 1인 2만 원(최대 2인까지)을 지원한다. 하루 최대 10만 원까지 정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2인 1팀으로 식비 4만 원을 쓰려면 6만 원의 숙소를 잡아야 한다. 먹방이 필수 옵션으로 붙자 출발하기도 전에 각종 맛집부터 검색했다. 때는 가을철이라 태안은 꽃게와 전어, 새우의 계절이었다. 영상으로 남길만한 것도 많고 볼거리도 많았다. 나는 회는 좋아하지 않지만 갑각류는 다 좋아한다. 가을의 태안은 해산물이 넘쳤다. 심지어 펜션 사장님도 갓 잡은 왕새우를 얻었다며 찜을 해 주셨는데 크기가 어찌나 큰 지 5개 먹고 배 부르다는 곡소리가 절로 났다. 태안군은, 사방을 두르고 있는 테두리 모두가 해수욕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서해 바다를 올 일이 없었으므로 모든 해안가를 처음 가보았다. 여름에 휴가를 내어 온다고 해도 한 두 군데 정도의 해변 밖에 머무르지 못할 일이었다. 어쩜 그렇게 매일 밖으로 쏘다녔나 모르겠다.


 나의 여행 메이트인 강아지 길동이를 데리고 다녀야 했기에 강아지 동반 가능한 숙소를 알아보았다. 태안은 역시 여행지라 숙소가 많았고 퀄리티도 너무 좋았으나,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비수기라 자신 있게 장박을 신청하며 할인율을 알아보았지만 그럼에도 할인이 거의 되지 않았다. 그중 알아보았던 한 숙소는 내가 쓸 수 있는 지원금과 금액대도 비슷하고 강아지가 언제든 나가 놀 수 있는 앞마당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예약을 했다. 물론 6만 원짜리 강아지 동반 가능한 숙소는 없었다. 사장님께 사정을 얘기했더니 장박 조건으로 할인을 해 주셨다. 태안 중심지에서 많이 떨어져 있는 서해 땅끝마을이지만 나는 시골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만족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나쁘지 않았다. 숙소는 만대항 근처에 있는 곳이었다. 차를 타고 1분만 나가면 만대항이 나왔고 갓 잡아온 새우와 꽃게를 살 수 있는 횟집들이 있었고 해변을 걸을 수 있는 데크가 조성되어 있는 곳이었다. 30분 이상씩 운전을 해서 읍내를 나가고 유명 해수욕장을 다녔다. 안면도까지 가려면 1시간이 걸리는 곳이었다. 그래도 매일 길동이를 차 뒷자리에 태우고 하루에 한 번씩 나들이를 다녀왔다. 오전 일찍 업무를 시작해서 할 일을 끝내고 오후 3시쯤 놀러 나가는 것이 우리의 루틴이었다. 나중에는 3시가 넘어가면 강아지가 낑낑거리며 나가자고 보챘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앉아 있던 테라스. 작은 마당은 강아지가 왔다갔다 하기에 충분했다. 사장님이 특별히 좋으셨다. 아무 간섭도 안 하시고 :)



 시골길은 속도를 내서 달릴 수가 없다. 원래 운전도 느린 나는 따라오는 차도 없고 꼬불꼬불한 2차선 시골길을 50km 이하로 주행하며 천천히 다녔다. 창문을 열어주면 강아지는 코를 킁킁 거리며 드라이브를 즐겼다. 난생처음 바닷물의 짠맛과 무서운 파도를 마주한 강아지는 적잖이 당황하였으나 이내 즐기게 되었고 나중에는 매일 퐁당퐁당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모래를 한 움큼씩 묻혀 나왔다.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 매일 강아지를 씻겼다. 그런 다음 나도 개운하게 샤워를 했다. 낮동안 햇볕에 널어놓았던 잠옷을 갈아입으면 섬유유연제 향이 햇살에 소독된 개운한 내음이 났다. 10월의 태안의 밤 온도는 최저 16도를 내려가지 않았다. 내가 사는 충북은 같은 시기 밤 온도가 10도나 더 내려간다. 아직도 만리포해수욕장에서는 서핑하는 사람이 즐비한 것을 보면 여름이 다 가지 않은 것 같아 반갑다. 나는 밤에도 마당 데크에 앉아서 쌀쌀 미지근한 바람을 맞으며 맥심 커피를 마셨다. 일찍 자고 다음 날 새벽에 일찍 깼다. 바닷가라 바람이 꽤 불었는데, 파라솔 껍데기라도 하나 바스락거리며 날아다닐라치면 평소엔 짖지도 않는 강아지 녀석이 낮은 음성으로 월월 거리며 경고음을 알리는 바람에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니 하루하루가 길었다. 여행지에서 보내는 시간은 더디게 간다.     




제가요, 요기서 인생의 짠맛은 처음 봐서요.. :)





 올해 들어 6개월을 밖에서 지냈지만 여행지에서 찍은 내 사진이 거의 없다. 여행지에서 인생샷을 건지는 사람도 많던데 혼자 다니는 여행에 화장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선크림만 바른 채 생얼로 다닌다. 셀카를 찍고 나면 깜짝 놀란다. 그렇기에 남길 내 사진이 없다. 매일 만날 사람도 없고 친해질 사람도 없고 격식을 차릴 필요도 없으니 시간이 얼마나 더 남아도는지 모른다. 머리 드라이도 대충 한다. 조금 뻗쳐도 고데기 따위를 하는 대신 모자를 푹 눌러쓴다. 옷은 거의 츄리닝 단벌이다. 웬만해선 차를 타고 이동을 하니 외출복도 매일 빨지 않는다. 할 일이 이렇게 많이 줄어들다니. 책을 읽을 시간이 남았고 밀렸던 유튜브 편집을 실컷 했다. 영상과 사진들을 정리했고 글을 아주 많이 썼다. 글은 쓰고 써도 쓸 것이 많다. 다만 시간이 부족해서 다 못쓸 뿐이다.

 여행하는 동안 커피를 마시는 일이 많이 줄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캡슐 커피를 내리거나 드립커피를 만들던 루틴들을 바꿔 나갔다. 솔직히 말하면 원두를 가지고 오는 것을 깜빡했다. 카페를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동네 20분 거리에 카페가 단 한 곳도 없었다. 지도에 나오는 한 곳마저 실제로 가보니 문이 닫혀 있었다. 그런데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되지 않는가. 한 주 정도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큰 일은 나지 않았다. 커피가 너무나 마시고 싶었다면 드립백이라도 주문했을 텐데 기왕 많은 것이 달라진 여행길에 뭔가를 더 바꿔보고 싶었다. 대신 오렌지주스를 한 병 샀다. 일상의 변화는 충분히 스스로 줄 수 있다고 본다. 며칠을 참았다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한 향과 목 넘김은 말도 못 한다. 역시 삶에는 변화가 필요한가 보다. 오감이 깨어나는 느낌이다.

 여행하는 동안 운동을 더 자주 했다. 여행지에 오면 노트북을 펴놓고 있는 시간도 많을뿐더러 운전을 하는 시간도 길다. 어깨와 허리가 결리지 않을 리 없다. 그런데 요가도 커피와 같은 것이 매일 하는 것보다 어쩌다 한 번 하면 그 시원함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응?) 그러므로 스트레칭은 매일 하지 않고 근력운동 위주로 하는 운동 중간에 가끔씩 해준다.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원체 유연성이 좋은 편이고 웬만한 스트레칭으론 시원함을 느끼지 못한다. 단 근력은 몹시도 가난하여 어딜 가든 4kg 아령을 가지고 다니며 근력운동 비중을 더 높게 두는 편이다.     


 자주 가는 상점이 생기고 음식점이 생기니 사람들이 곧잘 새로 이사 왔냐고,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한다.

 “이번에 태안에서 한 달 살게 된 여행자인데요.”

 세상에, 여행자라니. 내가 나를 소개할 때 여행자라 말하다니. 단순하게 2박 3일 정도 여행할 때에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데. 요 몇 달 여행자로 살면서 함안에서도, 함양에서도 이렇듯 스스로 여행자라 이름을 붙였다. 퍽 만족스럽다. 여행자라니.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난 여행이 싫다며 친구들이 코로나로 여행을 못 떠난다고 했을 때 하나도 아쉽지 않았는데. 나는 여행이 싫은 게 아니라 나의 여행 스타일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한국에 몇 개의 도시가 있나 세어 보았다. 무려 75개의 시와 82개의 군이 있다. 한 달 살기를 일 년에 12달 꼬박 채워서 매달 다닌다고 해도 일 년에 열 두 개의 시도 밖에 살지 못한다. 대한민국 곳곳을 한 달씩 쉬지 않고 살아본다고 해도 13년이 넘게 걸린다. 생각해 보면 아쉽다. 직업을 선택할 때에도 몇 개 되지 않은 직종 중에 골랐고, 살 곳을 찾을 때에도 직장이 잡히는 대로, 살아온 대로, 되는대로 그냥 골라 사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평생 몇 곳을 못 살아보고 몇 가지 일을 하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나는 호기심도 많고 궁금증도 많아서 더 많이 찾아보고 경험해 보고 싶다. 내 노후의 정착지는 단순히 익숙한 곳 아는 곳이 아닌 더 많은 곳을 돌아다녀보고 나에게 가장 잘 맞는 곳으로 고르리라. 만일 나에게 또 훌쩍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짐을 싸고 강아지 길동이를 데리고 떠날 것이다.     


 여행이 슬슬 종료되며 다시금 짐을 싼다. 이번엔 제출해야 할 영수증도 많고 콘텐츠도 많다. 원래 내가 또 기회를 부여받으면 받은 거 이상을 해내지 않는가. 나는 시키지도 않은 영상을 찍고 글을 쓰며 태안 홍보에 열심히 힘을 보탠다. 이런 지자체 프로그램이 더욱 활성화되고, 여행자들이 사명감을 안고 홍보해서 전국이 더 활성화되길 바란다. 시골에 살면서 시골의 아름다움을 알아버린 나는 이 큰 대한민국 영토의 거의 대부분인 시골을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개개인의 취향이 다르겠지만 나는 만족스러웠으므로 자신 있게 추천해 본다.      


“시골로 살러 오세요, 시골 정말 좋아요.”     



2023년 10월 20일 태안 여행 마지막 날 아침, 펜션 퇴실 전 테이블에서 씀



길 위에서 마주한 태안의 가을. 이곳은 태안군 이원면 내리.



영상으로 찍어 본 충남 태안에서의 일기

https://youtu.be/L2lDE_AXsiA?si=2RLmz0KWVIZBXmB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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