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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Dec 04. 2023

머문 자리를 아름답게 남겨야 하는 이유

 나는 모텔을 많이 다녔다. 엄마가 이런 식으로 어그로 끌지 말랬는데... 10대 시절 운동선수로 다른 지역에 시합을 나간 적이 많았기 때문에 정말 많은 숙소를 전전하며 다녔다. 그래서 정작 데이트할 때는 모텔을 갈 수가 없었던 아이러니한 상황도 생겼다. 모텔은 대회 전 날 긴장하며 잠 못 이루었던 기억이 지배를 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로맨틱한 분위기를 잡을 수 없는 탓이었다.


 20대 때도 모텔을 많이 다녔다. 선수생활을 그만두고 난 후에도 지도자 연수, 심판 연수 등을 받으며 며칠씩 묵어야 할 때에는 가장 저렴한 지방의 모텔들을 골라 머물게 된다. 이렇게 10대와 20대를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는 얼굴들이 많아지고, 학교 친구들보다 더 친한 운동 친구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대개는 2박 3일이나 그보다 더 오랫동안 한 방을 쓰게 되는데, 모텔 키를 프런트에 맡겨 놓고 밖에 나가 일을 보고 오면 방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고 새 수건이 교체되어 있곤 했다. 머리를 감고 드라이를 해도 머리카락이 떨어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자고 난 이불도 그대로 놓고 다녔다. 20대 초반의 나는 아직 엄마가 집에 가면 이부자리 정리부터 청소 빨래까지 다 해주던 어린 아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선수시절부터 심판시절까지 함께 보낸 친구와 친해져서 전국 대회에 참석을 할 때마다 그 친구와 한 방을 쓰게 되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언젠가부터 자꾸만 바닥을 닦는 것이었다. 내가 떨어뜨린 과자 부스러기를 물티슈로 훔치고, 내가 널브러뜨려 놓은 내 수건을 네모반듯하게 접어놓고, 침대에 놓인 내 베개까지 네모반듯하게 오와 열을 맞추어 침구 정리를 하는 것이었다. 결국 나의 청소력은 이 친구 덕에 많이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왜 청소를 하느냐 묻거나 따지지도 않고, ‘내가 원래 좀 정리 벽이 있어’라며 되려 미안한 듯 내 눈치를 보는 친구의 눈치를 나도 보기 시작했다. 별 일 아닌 일이었고 1,2분이면 끝나는 일이지만 하고 나면 몹시도 마음이 편해졌다. 엄마가 백날 청소하라 정리하라 말하는 것은 들을 생각 조차 하지 않았지만 일 년에 몇 번 만나는 친구가 당연히 모텔 사장님이 하셔야 할 일이라 생각했던 숙소를 정리하는 것을 보고 나는 조금 감동을 했던 것 같다. 우린 나이가 같은 또래였는데 말이다. 난 그전까지 숙소의 청소는 당연히 업소의 청소 담당자의 몫이라 생각했고 내가 낸 숙소비에는 청소 서비스료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취를 하면서도 청소가 몹시도 귀찮았던 20대의 내가 고무장갑 끼고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기 시작한 것도 이 친구의 영향력이었다. ‘미안, 깔끔 좀 떨게’하며 신나게 청소하는 그 친구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20대 후반이 된 나는 내 방 한 칸을 쪼개어 에어비앤비 운영을 하게 되었다. 재미를 붙이자 오피스텔 한 칸을 임대 내어 작정하고 외국 손님들에게 대여를 하게 되었다(지금은 이것이 불법이지만, 초창기에는 관련 법령이 아무것도 제정되지 않았다). 외국 손님들은 자기가 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청소해 놓고 갔다. 설거지는 당연한 것이고, 1주일 넘게 머물다 간 손님들은 자신이 쓴 수건, 이불까지 세탁기에 다 돌려 널어놓았다. 그리고는 ‘너의 집을 셰어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색다른 충격이었다. 아니, 난 돈 벌자고 한 것인데...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개념이었던 것 같다. 과금을 했지만 기꺼이 빌린 집에 대해서 원래 상태대로 돌려놓고 가는 예의인 것이다. 해외여행을 가면 아시아인들이 숙소를 가장 지저분하게 쓴다는 말이 있다. 한국인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컵라면 국물을 방바닥에 엎질러 놓고 가거나, 이불에 음료수를 쏟아놓고 가는 손님, 욕실을 오일 범벅으로 만들어 놓고 갔다는 손님까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별별 유형이 다 거쳐 간다고 했다. 우리가 내는 숙소비에 과연 어디까지 더럽힐 수 있는 범위가 포함되어 있을까? 잠시 빌려서 다리를 뻗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할 수 있는 금액이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닐까.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텔 커피포트에 양말을 넣고 삶는다는 얘기를 듣고 경악을 하며 절대 공용 커피포트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골로 한 달 여행을 다니며 펜션이나 민박집을 전전하면서도, 커피포트를 포함한 살림들을 이고 지고 다니느라 트렁크가 가득 찼었다.     


 그렇게 여행과 외박을 자주 하며 큰 나는, 요즘 장박 여행을 하며 내 손에 잘 맞는 밀대까지 들고 다니게 되었다. 지방 한 달 살아보기 프로그램에서는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숙소를 찾았기 때문에 특히 강아지 때문에 피해가 가는 일이 없도록 더욱 신경을 써서 집을 사용했다. 사실 그렇게 매일 집을 청소해 주지 않으면 강아지털 때문에 내가 지내기 불편하기 때문에 쓸고 닦는 걸 하루에 두 번씩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 날 숙소를 비우기 전에는 대청소를 했고, 내 필요에 의해서 옮겼던 책상이나 의자들도 다 원 위치로 옮겨 놓았다. 장기 숙박을 했기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어 있을 줄로 아셨던 지, 강아지로 인해 파손된 곳이 없는지 확인하러 오신 사장님은, 예상외로 깨끗하게 사용한 집에 대해 저마다 감탄을 하셨고, 깨끗하게 집을 사용해 줘서 고맙다며 기프티콘을 보낸 분도 계시다. 난 단지 다 쓴 수건을 개고,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쓰레기를 분리수거함에다 버리고 바닥을 한 번 밀었을 뿐인데. 내가 머문 자리를 정리하는 데에 든 시간은 10~20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았는데. 그것이 유별나게 느껴지셨나 보다.

  최근 SNS에서 일본 유저가, 14~15년 간 살았던 세입자가 깔끔하게 청소를 한 후 퇴거를 한 사진을 올린 적이 있다. 처음 튀어나온 감탄사는 '선진국이네' 였다. 문화 소양이나 선진 마인드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우리 집 에어비앤비를 쓰고 말끔히 정리해 주고 간 친구들과 그들의 나라에 대한 경외심이 절로 든. 인간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들게 되는 마음 말이다.  


 어쩌면 이것은 그냥 나의 만족이고 내가 차리고 싶은 예의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인사를 하고 집을 빌렸는데, 적지 않은 숙박비를 내고 난 후 ‘더럽다’며 뒤통수에 욕먹지 않기 위한 자기 방어일 수도 있다. 공용 화장실에 가보면 ‘머문 자리가 아름답도록’ 강조된 글을 보곤 한다. 내가 빌려 쓴 내 자리. 내가 식사 한 내 식탁. 내 돈을 내고 받는 서비스에 흉이 함께 따라오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것. 어릴 적엔 모를 수 있지만 크면 클수록 타인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배려가 아닐까.

 나중에 우리 집에 놀러 온 누군가도 이렇게 배려해 주면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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