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나는 성덕이 아닐까 한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열아홉 살, 고 3 때였다. 시 낭송 프로그램에 초청된 그녀는 하얀 셔츠를 입고 긴 생머리에 초롱초롱한 눈망울. 조곤조곤한 목소리의 너무나 예쁜 20대 아가씨였다. 그녀가 입을 떼며 한 첫마디에 고등학생이던 나는 충격을 받았다.
“제가 어제 소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지금 술이 덜 깼어요. 약간 취중에 얘기를 하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시인을 기다리며 시집을 읽었던 나는 시집의 파격적인 소재와 내용에 한 번 놀라고 그와는 정 반대였던 시인의 여신 같던 분위기에 압도되고 시인이 마이크를 켜고 골라 말한 단어 하나하나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왜 아니겠는가 나는 그저 감수성이 풍부하던 고등학생이었는데. 열아홉의 나는 그녀를 동경하기 시작했다. 때는 김선우 시인의 첫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과 에세이 <물 밑에 달이 열릴 때>가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나는 다음 카페에 가입해서 출첵을 하고 일상을 올리며 시인을 쫓아다녔다. 십 년이 훌쩍 지나 내가 20대가 된 후에는 서울에 살며 시인의 발걸음이 닿는 대로 행사에도 쫓아다녔다. 시인이 새로운 시집을 내고, 소설을 출간하며 문인으로 입지를 굳히는 과정을 20여 년 동안 빠짐없이 지켜본 것이다. 좋아했던 가수도 수년 안에 해체를 하고 좋아했던 바이오맨, 후뢰시맨도 시리즈가 끝나면 그 후의 소식을 들을 수 없는데.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현역에서 건장하게 자리를 지키는 시인을 줄곧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게도 큰 기쁨이었다. 시인은 취미로 글쓰기를 시작한 나에게 늘 친절한 격려와 희망을 주었다. ‘마로니에 백일장’에 나가보라며 안내해 주고, 내가 쓴 시를 봐준다며 첨삭을 해 주었고, 내가 소설가가 된 후로는 어떤 소설 공모전에 도전해 보라, 새로운 문학 레지던시 공고가 나왔다...... 정말 많이도 챙겨 주셨다. 첫 책 <서른 살, 나에게도 1억이 모였다>가 나오기 전 두 군데 출판사와 계약을 고민하던 내게 명료하게 장단점을 지적해 준 사람도 시인이었다. 선생님, 선생님 하며 따라다닌 그녀는 정말 내 인생의 선생님이었다.
나는 무도인이 되고 싶어 무술을 전공한 체육인이었고, 졸업 후 내 인생 2막은 기업인이라며 장사에 푹 빠져 있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서른 살, 나에게도 1억이 모였다>를 본 시인은 나에게, 만일 글을 계속 내고 싶다면 다음 책을 <10억이 모였다>와 같은 비슷한 부류의 후속작으로 내지 말고 다른 결의 글을 써 보라 권했다. 이미지가 한 가지로 고착되면 좋을 게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10억을 모으지도 못했지만, 시인의 말을 새겨들어 곧장 다음 주제를 ‘효도’로 잡았다. 그러나 첫 책을 내는 경험을 한 후 ‘흥, 책 쓰기 어렵지 않겠는걸’ 하던 나의 오만과 다르게, 효도라는 이 주제는 정말 쉽지 않아서 글이 술술 써 지지도 않고 쓴 글을 삭제하길 여러 번 반복하였다. 그래도 끈덕지게 5년 이상 쓰니 어째 저째 꼴을 갖추어 한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어느새 인생 3막으로 글 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출판사에서 추천사를 받아줄 것을 요청해서 나는 정말 어렵게 김선우 시인에게 말을 꺼냈다. 평생 시인의 덕후였던 나는 여태껏 그녀의 추천사를 본 기억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시인은, 추천사를 쓰지 않지만 20년 지기 벗인 나를 기쁘게 해 주고 싶다며 선뜻 추천사를 허락하셨다. 1차원적으로 줄줄 쓰기만 하는 내 글에 비교가 되는 깊고 쫀쫀하고 밀도 높은 글이 책 뒤에 추천사로 실렸다.
출간한 신간에 실린 에피소드를 읽은 시인은, 내게 내가 겪은 특이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쓸 소재를 잘 골라 보자며, 다음에 만나면 내 소설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하셨다. 왜 시인은 내게 20년이 넘도록 지속적인 호의를 베풀어 주시는 걸까. 나는 그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게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심지어 시인이 아무와도 만나지 않고 집필 작업에 몰두하던 때,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힘들다는 내 말을 듣고 춘천까지 불러 하루종일 나와 시간을 보내준 적도 있다. 다만 그녀의 과분한 도움을 받을 때마다 느낀 것은, 나도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린 친구들이 있다면 귀찮아하지 말고 선뜻 호의를 베풀어야겠다는 다짐이었다. 그것이 시인이 나에게 내어준 시간에 대한 보답이라 여겨진다.
시인의 글을 읽고 자란 소녀가, 전공과도 전혀 관계없는 글 쓰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읽은 책의 작가들에게 공통적으로 진 빚이다. 세상은 이렇게 내리사랑처럼 영향을 주며 사는 걸까. 성공한 덕후로 신간에 실린 추천사가 너무나 달가워 몇 번이고 손으로 책을 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