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과학을 신봉하고 예술가가 예술을 신봉하듯 체대 나온 전공자로서 당연히 체육을 신봉한다. 나는 다른 누구보다 내 전공에 자부심이 있는 편이다. 세상의 어느 무엇이 내 목숨과 내 건강보다 중요한 게 있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어쩜 세상 사람들이 운동을 하지 않고 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체육관을 하나 오픈하게 되었다. 희한하게 우리 회사에는 코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무려 네 명이나 있다. 모두 체육 전공자로 어릴 적부터 체육관을 다니며 커온 체육관 키즈들이다. 전공은 우슈. 그렇지만 무에타이 챔피언 선배를 대장으로 무에타이 체육관을 열었다. 선배 중 둘은 무에타이 체육관을 각 10년 넘게 운영한 경험이 있다. 나와 나머지 한 선배는 우슈 선수 출신으로 사실 우리는 북경체대에 무술유학을 갔다가 만난 사람들로 이루어진 구성원이었던 것이다. 우슈를 전공했으므로 종목은 다르지만 ‘산타’라는 우슈 격투 과목을 이수하고, 승단 심사를 볼 때마다 스파링을 뛰었음도 물론이다. 뭐, 그래봤자 프로 무에타이 선수에 비하면 비교가 되진 않겠지만. 어쨌든 격투기 용품을 주로 판매하는 우리는 농담으로 우리 회사가 망해도 체육관 하나만 오픈하면 먹고살 수 있다고 떠들곤 했다.
시작은 회사에서 새로 시작한 조립식 복싱 링 설치와 샌드백 레일 시스템 때문이었다. 마땅히 전시해 놓을 오프라인 매장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스튜디오를 열었는데 체육관 바닥과 조명, 인테리어 공사까지 홍보할 요량으로 다 세팅을 해 놓으니 체육관을 운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사업자 등록을 하고 간판을 달았다. 시골은 어쩌면 인구 밀도 대비 인프라가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오픈 빨도 오픈빨이었지만 꾸준하게 사람들이 들어왔다. 얼떨결에 체육관을 열심히 운영하게 되었다. 나는 처음엔 전혀 손을 대지 않을 생각이었다. 무에타이가 내 전공이 아닐뿐더러 하는 일도 열두 가지쯤 되는 내가 체육관 운영에까지 손을 댈 여력이 없었던 탓도 있다. 하지만 여차저차 체육관을 맡게 되는 날이 있는데, 아이들의 시끄러운 분위기와 함께 뛰는 에너지, 그리고 소싯적 체육관을 다니며 선후배들과 즐겁게 놀던 추억이 소환되며 어느덧 매일 체육관으로 출근하는 것으로 되어 버렸다.
사실 나는 굉장히 게으른 편이다. 체육관에 나가면 운동하기 싫어서 한 시간 동안 발목 돌리기나 다리 찢기 시늉만 한 적도 있다. 체육관 등록을 해 놓고 일주일에 한 번씩만 나간 적도 많다. 집에서 운동해야지 결심했다가 귀찮아서 못 한 날은 당연히 더 많다. 그냥 보통의 운동하기 싫어하는 여자아이나 마찬가지다. 내 동기들 중 가장 운동을 뺑끼 써가며 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런데 체육관을 운영하니 매일 운동을 하지 않을 수가 없고 아이들과 매일 몇 시간씩 뛰어놀다 보니 절로 운동이 되었다. 실로 몇 년 만에 하루 몇 시간씩 꾸준히 운동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랬더니, 온몸의 아픈 곳이 다 사라졌다. 컴퓨터를 많이 해서 늘 뻐근했던 목도, 허리도. 다리가 붓는 것도 가끔 생기는 편두통도 다 없어졌다. 체육관을 운영하고 3개월 즈음이 지나자, 피부관리받으면서 받는 데콜테 관리가 아프거나 시원한 대신 아무 느낌도 없었고 늘 관리받을 때마다 딱딱하게 뭉쳐있다는 얘길 들었는데 싹 사라졌다. 당연한 것이었다. 운동을 하면 당연히 건강해지는 것이다. 아프면 관리를 받으러 가야 하는 게 아니라 당연히 운동을 먼저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하루에 한 시간 이상 땀 뻘뻘 흘리거나 근육통이 생기거나 숨이 가쁠 때까지.
운동이 몸에 좋은 것을 알고 그렇게 운동을 해야 하는 건 줄 분명 알았음에도, 전공자였던 나조차도 운동과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한다. 꾸준히 운동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사람은 세상의 지혜 중 가장 현명한 것을 가진 것이다. 운동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으면 나중에 병을 고치는 데에 그 시간을 쓸 수도 있다는 말이 있다. 운동이 하기 싫을 때마다 꺼내 보는 말이다.
우리 부모님도 운동을 꽤 열심히 하시는 편이다. 지금도 아빠는 매일 헬스장을 들렀다 집에 오고, 엄마는 오전마다 산길을 걷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그러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난 그래서 우리 부모님이 건강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 습관이 생기는 것이 어쩌면 어릴 적이 아닌가 한다. 부모님은 공부하라고 집에 묶어 두길 원하지만 변변찮은 놀이터 하나도 없고 학교 체육 시간에도 몸을 사려가며 하는 마당에, 체육관에 가서 소리 지르고 웃으면서 즐겁게 운동했던 사람들이 커서도 체육관을 찾고 열심히 운동을 하는 것 같다. 나와 운동을 하는 내 동기들을 보면 꼭 그렇다.
꺄아 하고 마음껏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생각만으로도 귓전에 들리는 것 같다. 아이들이 소리 지르고 뛸 수 있는 공간이 운동하는 체육시설 밖에 더 있으랴. 아이들의 에너지가 발산되는 이 공간이 지금 나에게도 가장 크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곳이다. 내년엔 더 열심히 운동을 하고 더 빡세게 가르쳐야지.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새해에는 더욱 부지런히 운동하고 더욱 건강해지시길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