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무술 국가대표의, 나의 운동 라이프
나는 운동이라 함은, 숨이 꼴딱꼴딱 턱 밑까지 차거나 근육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을 받거나 땀이 뻘뻘 나거나. 최소한 이 세 가지 중 하나는 충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벼운 산책, 스트레칭과 같은 것은 운동이라기보다 그냥 활동이랄까 동작이랄까. 운동으로부터 오는 이런 '센' 느낌을 즐기는 나만 운동 변태인가?
오늘 쓰는 글에 공신력을 조금 부여하고자 내가 얼마나 운동에 진심인가 부연 설명을 하자면, 체대를 나왔고 중국 무술 우슈-태극권으로 엘리트 선수생활을 했으며 아시안게임에 출전 경험이 있고 그 후에도 지도자, 심판 생활도 했다. 그러니까 한.. 십 년 전에.
십여 년 전, 선수 생활을 그만두며 내가 친구들에게 남긴 명언(!)이 있다.
'난 이제 앞으로 아무리 바쁜 일이 생겨도 뛰지 않을 거야'
퇴행성 관절염으로 20대에 무릎 나이가 50살이 된 것이다. 물론 운동선수라면 으레 이런 '부상' 경력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선수촌의 모든 선수들은 '소질' '재능'과 같은 걸 하나씩 쯤 갖고 태어난 것 같아 보였다. 나는 본래 근골이 보통 사람보다 미달인데, 우리 집안에 운동선수 하나 나온 적이 없는데. 깡 하나만 믿고 덤볐더니 몸이 짧은 시간 안에 바스러졌던 것이다. 그렇게 10년 정도 격렬하게 운동에 푹 빠져 있다가 미련 없이 딱 손절했다.
몸은 정직해서 사회생활을 하며 운동을 쉬자 그동안 어렵게 쌓은 근육은 게눈 감추듯 일순간 사라졌다. 종일 컴퓨터를 붙들고 있었고, 또 그때는 창업 초창기여서 어떻게든 사업 한 번 살려보려고 하루 잠 두 시간씩 자며 달리던 때라서 20대 후반에서 30대로 넘어가던 내 몸은 비상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어깨와 등, 허리까지 아파 한의원을 갔더니 의사 선생님의 솔루션은,
'운동 좀 하세요'였다.
세상에. 운동을 한창 하던 시절에는 너무 몸을 막 쓴다며 '휴식 좀 하세요'라는 말을 곧잘 들었던 내가.
직후에 등록한 헬스장에서 인바디를 받고 더욱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운동은 처음 하시나 봐요?'
체중도, 근육량도 미달이라고 했다. 사람이 돈 생겼다고 막 쓰면 안 되듯이 근육 좀 생겼다고 막 살면 안 되는 거였다. 손가락이 안 들어갈 정도로 딱딱하던 내 허벅지는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해져 있었다.
그 때가 운동을 한 3년 정도 쉬었을 때였다. 정말 바빠도 뛰지 않고 운동화 한 번 꺼내 신지 않고 하이힐만 신고 다녔다. 그랬더니 다시 운동을 찾아보는 게 재미있어졌다. 지방에서 자라 중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내게 서울살이는 이런 방면의 인프라를 차고 넘치게 충족시켜 주었다. 유행하는 요가, 필라테스, 방송댄스, 어릴 적부터 하고팠던 발레, 수영(이때 처음 배웠다), 게다가 봉춤이라고 소문만 들었던 폴댄스까지 시도해 보게 되었다. 그런데 짧은 시간 동안 이 많은 운동을 했다 함은, 그만큼 철새처럼 조금조금씩 밖에 하지 않았다는 것 아니겠는가. 조금만 이 운동에 익숙해진다 싶으면 안 힘들게 할 수 있는 요령을 터득해 설렁설렁하게 되었다. 요가를 끊었더니 누워 있는 게 좋아서 힐링 요가 시간만 가게 되고, 헬스를 끊고 나서는 내 몸이 편한 운동만 자꾸 반복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비싼 피티를 매일 받을 수도 없고.
그래서 좀 힘들어 보고 싶은 마음에 킥복싱 체육관을 끊었다. 어릴 적 사는 동네에 킥복싱 체육관이 없어서 이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킥복싱, 무에타이 체육관에 여자 관원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할 생각을 못했다. 킥복싱 체육관에 등록 했다가 내리 한 시간 동안 줄넘기만 하고 왔다는 괴담도 무서웠다. 하지만 실제로 가 본 체육관은 생각보다 멋졌다.
참고로 복싱과 킥복싱은 느낌이 좀 다른 운동이다. 복싱은 주먹 위주의 운동이고 킥복싱은 말 그대로 발차기와 주먹을 함께 하는 운동이다. 나는 상체는 부실해도 하체는 튼실했으므로, 킥을 써야 스파링을 해도 덜 맞을 것같아 킥복싱을 택했다.
어릴 적 체육관을 다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체육관 고유의 고무매트 냄새랄까 타포린 냄새랄까 아니면 땀 냄새가 섞였던 것 같기도 한 그 체육관 고유의 공기가 있다. 여러 운동을 돌고 돌아 다시 체육관 문을 열고 나의 '관장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의 친밀함. '관장님'에게는 스포츠 센터에서 만난 선생님, 강사님들과 다른 느낌이 있다. 이제부터 킥복싱을 배워두면 나쁜 놈을 만났을 때 막 두들겨 패주기 까진 못하겠지만 어퍼 한 방 날리고 잽싸게 도망갈 수는 있겠지?
나의 전공은 중국 무술 우슈 태극권이다. 태극권은 마치 태권도의 품새처럼 시간제한 내에 연기를 마치고 점수를 받는 운동이다. 그런데 이름이 '무술'이니, 사람들로부터 '싸움 잘하세요?'라는 소리를 반평생 들어왔다. 물론 우슈 중에서도 싸움(!) 하는 '산타'라는 종목이 있긴 하지만 내 종목은 아니라, 늘 '혜미 씨한테 한 대 맞으면 저 죽는 거예요?' 하는 타인의 시선에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런데 돌고 돌아 드디어 나도 주먹 좀 쓰는(!) 운동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체육관에서 날아다녔다. 드디어, 비로소 내 운동 인생의 갈증이 콜라 캔 따는 소리처럼 팍 하고 뚫린 것이다.
처음에 체육관에 들어가면 줄넘기 3라운드를 하고 (1라운드 3분씩) 경건한 마음으로 핸드랩을 감고, 글러브를 끼면 마치 내가 전사가 된 것 마냥 다 때려 부술 수 있을 것 같은 강력한 예감이 든다. 히어로가 변신 슈트를 입은 것처럼. 의기 충만해지는 이 순간이 제일 좋다. 사실 관장님이 부르실까 봐 핸드랩을 매우 오랫동안 정성스럽게 감는다. 신나게 운동하는 것은 좋지만 마음속에 뺑끼 쓰는 마음이 아예 가시지 않은 것이다, 특히 체육관 딱 들어온 순간은! 그렇게 글러브를 낀 내 모습을 거울로 슬쩍 들여다보면 꽤 세어진 느낌이 든다. 거울을 보며 쉐도우 3라운드, 샌드백 3라운드를 치고 난 후, 때에 따라 관장님이 미트를 받아준다. 미트 칠 때가 가장 힘들다. 남자들은 미트 트레이닝을 좋아한다고 하고 또한 관장님들은 남자들의 파워에 어깨 성할 날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미트 받으러 오는 관장님을 피해 다녔다. 체육관 가장 모퉁이의 샌드백에서 정강이와 발등에 멍들여가며 발차기를 하고 있으면 어김없이 '이쪽으로 오세요' 라며 관장님이 미트를 드민다. 한 시간 운동의 방점을 찍는 듯 비로소 숨이 턱까지 찬다. 죽을 것 같은데 하나만 더 차라고 시킨다. 이때 실력이 늘고 자세가 교정된다. 요즘은 마스크까지 끼니 더욱 숨이 찬다. 코로나 이전에는 선수들만 폐활량 늘린다며 마스크 끼고 훈련을 받던데 졸지에 전 관원이 폐활량 운동을 하고 있다. 운동 효과가 배가 되니 이걸 좋게 생각해야 하는 건가?
마무리 운동을 할 때 즈음이 되면 10분 정도 단체 트레이닝을 하는데 여러 신체부위를 고루고루 매일 돌아가며 훈련한다. 성인 남자 기준에 맞춘 운동이라 요가, 필라테스에서 했던 운동과 차원이 다르다. 물론 중량을 들어야 할 때 나는 가장 적은 것을 든다. 힘도 없고 근력도 없기 때문이다. 쓰러질 듯 쓰러질 듯 몇 세트의 그날의 운동을 마치고 나면 기진맥진이 된다. 집에 가고 싶을 것 같은데 이때부터 각성이 되어 혼자 샌드벨도 들고 스쿼트도 추가로 하며 시간을 보내다 온다. 늘 집에 올 땐 하나 더 하지 못해 아쉽다. 체육관 갈 땐 망설여지는데 집에 올 때는 기분이 최고조로 끌어올려져 있다. 적당히 알 밴 느낌도 좋고 힙도, 가슴도, 종아리도, 뱃살도 한층 리프팅된 기분이 들고 실제로도 그렇다. 킥복싱 체육관을 다닌 이후로 엉덩이 아래쪽의 처진 살들이 위로 쏙 올라간 게 최대 수확이다.
킥복싱을 오래 다닐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운동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들쭉날쭉한 시간에 내 멋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서였다. 한 시간 땡 끝나면 집에 가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고 컨디션이 좋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더 운동하고 싶은 날은 두 시간, 세 시간 있다 가도 된다.
처음엔 빨리 킥복싱 4단까지 따고 싶었고 아마추어 대회도 참가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딱히 소질이 보이지 않는 나에게 관장님은, 그냥 즐기며 천천히 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가망성이 없다는 거겠지?
나는 영양제가 맞지 않는다. 약 사 먹을 돈으로 운동 등록하는 것이 낫다. 스스로 땀 흘리고 건강하게 씩씩하게 사는 라이프 참 좋지 않은가. 킥복싱을 지칠 때까지 배운 후에는 주짓수, 가라데 등 40대가 되어서도 이런 무술 저런 무술을 배우고 연구하고 싶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을 때 힘이 솟나 보다. 여러 가지 운동을 해보니 역시 무술 쪽이 내 운동인 듯하다. 내 기준에서 운동의 쓰임을 재단해 보자면, 달리기나 자전거와 같은 단순 반복하는 운동은 1단계, 댄스, 요가와 같이 기술을 배워가며 운동하는 것이 2단계, 그리고 기술으로 내 몸을 보호하고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는 훈련을 받는 격투계의 운동은 3단계라 여겨진다. 나에게만 잘 맞기만 한다면, 같은 시간을 들여 더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운동을 하면 하루의 반을 했다고 하는 말이 있다. 내 몸 내가 챙기는 일인데 당연히 1순위가 되어야 한다. 운동이 귀찮고 피곤한 이유는 아직 나에게 딱 맞는 운동을 찾지 못해서였을 수도. 평생 운동 언저리에 맴돌던 나도 이렇게 많은 운동을 해 보고서야 결국 지금 필요한 내 운동을 찾은 것처럼. '어떤 운동이 좋아요'가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들이더라도 이것저것 다 해 보고 나에게 맞는 운동 찾아보세요'라고 얘기하고 싶다. 요즘은 확실히 킥복싱과 사랑에 빠져 있어서, 체육관 가방 어깨에 울러 매고 대문 열고 나가는 길이 하루 중 가장 보람차다. 몇 년 정도 갈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것이 나에게 최선이다.
아마 또 굉장히 익숙해지면 또 다른 운동을 찾게 되겠지만, 그때 되면 또 좋은 운동 찾아서 데리고 와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