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를 다섯 마리 키운다. 대형견 4마리, 중형견 1마리. 핏불이 섞인 은퇴한 사냥개가 포함된 대형견들은 가두어 키울 수밖에 없다. 덩치가 크지만 리트리버 같이 순할 거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멧돼지를 100수 이상 씩 잡았던 개들이다. 수컷들이라 서열싸움이 시작되면 목숨을 거는데, 한 번 싸우면 한 놈이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것이 그들의 본능이라 서열이 갈릴 때까지 가만 두고 볼 수 없는 일이다. 엊그제도 철창을 사이에 두고 두 놈이 큰 소리로 짖으며 붙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발톱으로 한 놈이 다른 놈 코를 긁어 깊게 찍혔다. 코가 다친 놈 때문에 빨리 나으라고 바로 국물요리 대신 육포를 해다 바로 어제까지도 바치고 왔다. 개물림 사고에 대한 사건사고를 보면 남 일 같지가 않다. 만일 마을로 뛰쳐나간 우리 개들이 눈이 뒤집히면 누구라도 물 수 있다. 그들의 치악력은 상상 이상으로 세다. 그렇다. ‘우리 개는 물어요.’ 그렇기 때문에 가두어 놓고 키운다. 철창 안에 각자의 집이 있고 목줄까지 이중으로 한다. 목줄도 웬만한 목줄을 써서는 어림없다. 쇠목줄이어야 가능하다. 가는 철심이 들어 있는 와이어줄을 해 주었는데, 지 이빨이 갈리는 줄도 모르고 그 줄을 끊어보겠다고 질겅질겅 씹고 있었던 것이 우리 집 빌런들이다. 이 무시무시한 개들을 여자 혼자 키우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들의 서열 위에 있는 가장 무서운 선배가 사무실에 존재한다. 개들은 서열 동물이기 때문에 맹견이자 수컷인 그들에게는 반드시 그들보다 우위에 있는 무서운 사람이 꼭 필요하다. 그래야 안전하게 키울 수 있다고 믿는다. 굳이 맹견이 아니더라도, 여자, 남자를 떠나 힘으로 제압할 수 없는 대형견을 키우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라고 믿는다. 눈이 돌아가면 그야말로 짐승으로 변하는 것이 그들의 동물적 본능이기 때문이다.
간혹 내가 올리는 강아지들의 영상이나 사진을 보고 이런 댓글들이 달린다. ‘왜 불쌍하게 밖에 키우나요’ ‘목줄이 너무 두꺼워요’ ‘갇혀 있어서 답답할 것 같아요’ 다 모르는 소리다. 그들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나다. 폭염이면 들여와서 에어컨 바람을 쐬어 주고, 한파 때면 사무실로 들여 다 같이 기름난로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사람이 나다. 철철이 보양식 해 먹이고 뼈간식이며 소내장을 구해다 먹이는 것도 나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개들을 안전하게 오래오래 데리고 살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데로 갈 곳 없는 맹견들을 내 능력 안에서 최대한 행복하게 키우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개들에게 아파트 한 채 씩을 사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시골에 이사 오고 개장이 들어오기 전, 한 달 동안 대형견 두 마리를 데리고 아파트에서 살았다. 개들은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집에서 쉬나 응가도 하지 않고 사람 이불에는 올라오지 않으며 잘 적응하고 나름 만족하며 사는 것 보였다. 그런데 마당의 집으로 이사하고 6개월 여가 지난 후 다시 우리 집에 데려갔는데 삐친 개들이 나랑 말도 안 하고 불러도 오지 않고 대놓고 항의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도로 마당의 집에 데려다 놓았는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개들은 마당에 놓인 자기네 집을 굉장히 좋아하고 안전하게 여기는 것 같다. 거기서 동네 지나가는 사람들을 다 관찰하며 지낸다. 또한 마당의 집 철창 문이 닫히면 그제야 안도하고 잘 수 있는 듯하다. 야생에서 자란 늑대의 습성을 가지고 있는 사냥개들은 철창이 주는 안전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가끔 우리 동네에는 고라니가 뛰어다니거나 너구리가 파스스 하고 번개처럼 지나다닌다. 떠돌아다니는 고양이가 수십 마리는 될 것이며 부엉이가 출몰한 적도 있다. 들개들도 상당수다. 그런데 그 많은 들짐승들로부터 안전하게 제 밥그릇과 물그릇을 지켜주는 것이 철창문이라는 것을 개들은 안다. 한 번은 개들의 집을 서로 바꿔준 적이 있었는데, 남이 자기 자리에서 하룻밤을 자는 것을 본 개들이 다음 날 또 서로 엉겨 붙어 싸울 뻔한 적이 있다. 밖에 나갔다 오면 휑 하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편하게 몸을 뉘이고 있다. 자기 자리에 대한 애착이 큰 것 같다.
그런 개들을 한 번씩 풀어주는데, 마당에 긴 와이어줄을 풀어 겅중겅중 뛰어다니게 해 주거나, 사무실에 데리고 들어와 이불 위에서 놀게 해 주거나, 마당을 대여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나들이를 데리고 가곤 한다. 강아지 운동장 이런 곳은 언감생심. 맹견은 들어오지 말라는 문구가 붙어 있기도 하거니와, 가장 작은 7kg짜리 길동이도 자기가 맹견인 줄 아는 사회성 하나도 없는 종자들이다. 내 방식대로 개들을 마당에다 풀어주면 고삐 풀린 강아지들은 과하게 기쁨을 표현한다. 단미를 한 도도는 그 짧은 꼬리를 흔들 수가 없으니 온 엉덩이를 실룩거리고, 다리가 긴 마초는 저러다 담장을 넘지 싶을 정도로 폴짝폴짝 점프를 하고, 늙은 뚱이는 몸이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으니 스텝이 꼬여 자빠지기도 한다. 개들을 풀어줄 때에는 나도 함께 뛴다. 내가 발을 구르는 시늉을 하면 더욱 흥분해서 뛰는 강아지들을 보면서 나도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뛴다. 나만 따라다니는 강아지들이기 때문에 내가 가는 대로 따라 뛴다. 신이 난 강아지들이 발라당 배를 뒤집고 누우면 한참을 만져 주다가 함께 뒹굴며 간식을 나눠 준다. 개에게도, 나에게도 가장 즐거운 시간인 것이다.
처음 강아지를 키우며 강아지 키우는 방법에 대해서도 많이 찾아보았고 강아지 카페에도 가입하고, 강아지에게 좋은 게 뭐가 있다더라 하면 쪼르르 따라가서 따라 해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국 이런저런 방법을 다 해 보고 난 후의 결론은 우리 강아지들처럼 특이한 (공격성이 있는 대형견) 강아지를 키우는 집은 거의 없다는 것이었고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의 방법은 참고만 될 뿐, 내 강아지들을 돌보는 방법은 조금 다르긴 해도 나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앞으로도 보통의 강아지가 아닌 아무도 원하지 않는 강아지만 맡아 키우게 될지도 모른다. 은퇴한 사냥견들,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대형견들, 공격성이 많은 문제견들. 지금 모인 개들처럼 말이다. 잘 몰랐을 적부터 내 방식대로 내 마음을 다해서 키웠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 같다.
시골에 온 후로 나는 때론 동물과 같이 즐겁다. 말 못 하는 동물들과 발 구르며 놀 때 나는 몹시도 자유인 된 것만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