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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Mar 10. 2024

우리 동네엔 ‘품바축제’ 이런 게 있다


 시골로 이사를 가고 나서 가장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거리 곳곳에 붙은 현수막이었다.

 ‘왕장리 김 OO 씨 손자 김 OO 외무고시 합격 경! 축!’

 ‘새마을금고 이 OO 지점장님 대통령상 수상’

 ‘품바의 전설 박 OO 선읍1리 공연’

 현수막에 쓰인 글귀들은 읽으면 절로 미소 짓게 되는 정겨운 문구들도 많고, 동네 최신 뉴스들을 빠르게 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식당이 많이 없는 동네에 중국집이 신장개업 했다거나, 강아지 운동장이 오픈 기념 할인을 한다는 현수막은 특히 눈여겨보게 된다. 무단횡단이 많은 거리에 동네 파출소에서는 이런 현수막을 걸어 두었다.

 ‘님아, 그 길을 건너지 마요.’

 사람들 꽁무니를 따라 슬쩍 무단횡단을 한 적도 있던 나는 경찰아저씨들의 센스 있는 문구에 피식 웃어버렸다. 저런 글귀를 보고 어떻게 또 무단횡단을 할 수 있겠는가.

 그중 내가 가장 신기했던 것이 바로 품바 공연이었다. 동네 체육대회를 할 적에 가수 송대관이 다녀 갔다는 문구도 붙어 있었고 가수 김연자의 공연을 저렴한 가격에 예매할 수 있다는 소문도 들었지만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이 품바 공연이었던 것이다. 품바공연이라니, 전설로만 들었지 TV에서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각설이타령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서 어릴 적에 내가 그런 노래를 부르고 다니면 엄마가 굉장히 싫어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그러면 엄마는 나를 보고 왜 너는 공주 노래 안 부르고 거지 노래를 부르냐며, 커서 거지가 될 거냐고 정색을 했다. 엄마가 싫어하면 더 부르는 것이 딸로서의 인지상정인지라 나는 그 후로도 쫓아오는 엄마를 피해 다니며 거지 춤까지 곁들여 각설이 노래를 불렀다.

 ‘얼씨구씨구 돌아간다, 절씨구씨구 돌아간다.’


 그런데 음성군에서 어릴 적 내가 불렀던 그 각설이 공연들이 모인 대대적인 품바축제를 연다고 했다. 충북 대표 축제로 무려 5일씩이나 진행되는 동네 축제다. 지방 행사를 여러 군데 다녀보니 2일, 3일 정도 진행되는 축제는 소규모 행사, 5일 정도 진행 하면 진짜 지자체에서 작정하고 여는 행사란 것을 알게 되었다. 이천 쌀축제가 그랬고 함양 산삼축제가 그랬고 진해 벚꽃축제가 그러하다. 나는 이런 지방 축제들을 정말 사랑한다. 담당자들이 공들여 만들어 놓은 행사장에 공짜로 가서 축제 분위기를 즐길 수 있고 길거리 음식을 사 먹을 수 있고 불꽃놀이도 볼 수 있으며 시간이 맞으면 연예인들의 공연도 관람할 수 있다. 내가 평생 볼 연예인들을 지방 행사장에서 거의 다 보았다. 그것도 거의 제일 앞자리 가장 가까이에서!


 그래서 나는 품바축제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다 참가하게 되었다. 마침 음성군 유튜브 기자단으로 활동을 했기 때문에 행사장에서 체험도 하고 이벤트에 참가해서 상품도 타며, 품바 퍼레이드에도 참가하여 거지 분장을 하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나는 인구 1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음성군에 사람이 그렇게 많이 모인 것을 처음 보았다. 집에만 있던 사람들이 죄다 거리로 나온 듯한 북적거림이었다. 서울에 살 땐 늘 이렇게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다녀야 했는데. 조용하던 시골에서 오래간만에 활기가 도니 덩달아 신이 났다.     

 품바축제는 다양한 품바 공연들을 주축으로 진행된다. 이런 품바 가수들이 어디에 숨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팀들이 참여했다. 해괴한 분장을 하고 전통 복장과 거지복장이 퓨전화 된, 지나가다 한 번쯤 뒤돌아보게 만드는 독특한 콘셉트들이었다. 공연장은 관람객들로 빼곡하게 찼다. 트로트부터 품바 노래까지 신명 나게 부르는 가수들을 보며 구경하던 어르신들은 신이 나서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머리에 이고 지고 물품을 판매하는 거지(!)들이 있었는데, 관람객들은 기꺼이 그런 물품들을 사 주기도 했다.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들어선 행사장의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한 발 물러섰다. 뒤에서 그들을 관망하고 있자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이 이렇게 밖에 나와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출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어른들이라고 흥이 없는 게 아닐 테고 재미를 모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지만 전 세계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내가 노인이 되면 어떤 나라에서 살고 싶어 질까. 10년, 20년의 세월은 진짜 금방이어서 곧 내가 저 관람석에 앉아 누군가와 함께 마주 보고 춤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통적으로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한민족들에게는 축제를 오롯이 즐기는 피가 있다. 락페스티벌, 재즈페스티벌과 같은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축제들이 성황리에 진행되는 것이 그렇고, 외국 가수들이 내한공연을 오면 떼창으로 되려 가수들의 혼을 쏙 빼놓는 자세가 그렇다. 오픈과 동시에 매진되어 버리는 K팝, 아이돌 콘서트는 또 어떠한가.

 나는 품바축제에서 젊은 층만이 아닌, 어른들을 위한 음악축제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혹자는 품바축제가 너무 올드하다고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나는 품바축제가 더욱 올드해지면 좋겠다. 할매니즘을 쫓는 이들의 니즈에 맞추어 팥빵과 양갱, 유과 오란다도 많이 팔면 좋겠다. 청년들은 어른들이 즐기는 문화를 구경하러 오면 좋겠고, 축제가 재미나다는 소문이 나서 옆마을 어르신들까지 행사 기간에 맞추어 꽃구경 하듯 거지 축제를 즐기러 오면 좋겠다. 젊은 사람 눈치 안 보고 아무 신경 쓰지 않고 실컷 노는 장이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다. 오히려 젊은 품바축제라며 랩이나 힙합 배틀을 하며 인기 가수를 초청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차라리 확실하게 특정 세대를 정해놓고 공략을 하는 것도 어쩌면 행사를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일 것 같다.

 나는 이런 지방축제들이 너무 정겹고 즐겁다. 대충 둘러보고 ‘볼 것 없네’ 하는 사람들의 말이 서운할 정도로. 다만 조금 아쉬운 것은 매년 레퍼토리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슷한 사람이 출연하고, 똑같은 먹거리 부대가 오고. 그래서 첫 해 보았던 축제의 신선한 충격이 두 번째에는 조금 사그라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먹거리 부대 중 문어 슬라이스를 판매하는 아저씨와는 3년째 구매를 하며 이제 아주 인사를 하며 지내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또 오셨어요? 요즘 어떠세요? 오늘도 많이 파세요.’

 음성품바축제에도, 음성명작축제에도, 음성설성문화제에도 매번 오시니 친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곳 문어 슬라이스가 내 입맛에 딱 맞기 때문에 갈 때마다 아저씨를 찾게 된다. 물론 해마다 다양한 먹거리들이 업그레이드되고 있고 작년에는 유행하는 탕후루에 양꼬치까지 팔아서 신기하기도 했지만 조금 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이 나와도 좋지 않을까 한다.


 복숭아 농장에서 일을 하며 들은 이야기인데, 품바축제가 처음 나왔을 때는 정말 재미나서 일 년 내내 주민들이 그 축제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봄이라 딱 농사일에 손이 많이 갈 그 시기에 고단하게 하루 일을 마치고 축제장에 가 보면 얼마나 흥이 나던지 재미나게 공연 보고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오는 것이 그렇게 신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해마다 같은 것이 반복되니 어느 순간 발길을 끊게 되었다고 한다.

 젊은 친구들이 축제에 왔다가 실망하고 돌아가는 일도 있다. 그것은 올드해서가 아니라 공연 퀄리티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오랜만에 대학로 연극을 한 편 보았는데 십여 년 전에 보았던 공연과 비교도 안되게 재미나서 깜짝 놀란 경험이 있다. 이렇게 자극적인 콘텐츠가 많은 세상에서 아직도 소극장이 없어지지 않은 이유가 그것이 아닌가 한다. 탄탄한 극본과 배우들의 연기. 소극장이 주는 현장감까지. 공연이 기반이 된 품바축제에서, 작년에 온 출연자가 별 탈 없으면 다시 오는 그런 공연 말고, 인기투표를 하든, 심사를 하든 살아남은 팀만 다시 오도록 긴장감을 불어넣어 주면 좋겠다. 공연하는 사람이 안쓰러우니 판매하는 물건을 하나 사 주자는 심리가 아닌, 공연이 완벽하고 감동적이어서 기꺼이 지갑이 열리게 하는 그런 공연.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과 즐기는 사람 모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서로 최선을 다해주는 축제가 되길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의 지방 전통 공연들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으며 K축제로서 인기도 많아지지 않을까.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이색적인 우리 지방 축제들이 소문이 많이 나, 세계적인 지방 축제들로 거듭나면 진심으로 좋겠다.     






https://youtu.be/T2P6Pg4MgIs?si=4bt0-6AF17uq24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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