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의 힘
글쟁이가 되고 싶었다. 마침 창업 관련 강의를 하러 다니다 보니 콘텐츠가 절로 쌓였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모아졌다. 다른 저자의 책을 읽으며 ‘나라면 이렇게 쓸 텐데’, ‘나라면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을 텐데’ 되뇌기 수십 년, 드디어 나도 한 번 책을 써 보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책을 쓴다는 것은, 블로그나 SNS에 끼적거리던 일과는 질적으로 다른 작업이었다. 머릿속에 꽉 차 있던 꽤 괜찮을 법한 이야기가 글로 나오면 유치하고 밋밋하게 변했다. 휴일에 하루 종일 글을 써 보겠다고 카페에 컴퓨터를 싸 들고나갔다가 연거푸 커피 세 잔을 마실 동안 워드 파일은 켜 보지도 않고, 평소에 하지 않던 다른 일 하느라 시간을 다 허비하고, ‘오늘도 글 쓰기는 망했네’ 하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20살에 중국에 가서 7년 동안 한국어를 잊고 살자고 결심했고, 한국에 와서는 6년 동안 일 하느라 머릿속이 팍팍해 질만큼 팍팍해졌는데 A4 용지 2장을 채우는 글을 쓰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떤 작가가, 작가 준비를 하며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서 글쓰기 연습도 하고 상품도 받았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지금 당장 내가 글을 쓰면 읽어 줄 사람도 없으니 한 권짜리 책을 계속 써야겠다는 의지가 쉽게 헝클어지겠지만, 내 이야기가 방송으로 전파되고 소소한 선물까지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재밌을까? 당장 쓰고 싶은 이야깃거리가 머릿속에 마구 떠오르기 시작했다.
신경 써서 A4 용지 두 장 분량의 사연을 썼더니 덜컥 선정이 되었다. 하나가 선정되니 다른 코너에 다른 이야기를 또 투고할 용기가 생겼다. 주로 글을 길게 쓰는 코너를 골라서 집중 공략했고 그런 코너는 제공되는 상품도 쏠쏠했다. 전문 칼럼니스트가 되어도 이렇게 원고료를 받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그런데 내가 뭘 한 번 하면 끝장을 본다. 이야기를 점점 흥미진진하게 쓰는 스킬을 배우게 되었고 갈수록 당첨 확률도 올라갔다. 게다가 작가가 윤색도 해 주니 방송으로 나온 내용을 확인하며 ‘나의 어떤 문장력이 부족하구나’, ‘이런 식으로 마무리를 하니 자연스럽구나’ 하는 첨삭 공부도 되었다.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여러 가지 글을 써서 각 코너의 성격에 맞게 올려놓으면 평일에 당첨이 되는 것을 확인하는 재미로 일주일을 보냈다. 화장품이나 먹거리, 상품권까지 다양한 선물을 받았다. 일주일에 2-3개의 깜짝 선물이 날아왔다. 가족 이야기부터 친척 친구 이야기까지 다 쓰고 나니 라디오에 보낼 수 있는 글감이 떨어졌다. 대부분의 공모 사연이 러브스토리 여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제한적이었고, 할 이야기가 없어서 쥐어 짜내서 이야기를 만들자 당첨 확률도 떨어졌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라디오 투고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세어보니 100개가 넘는 글을 올려서 선정이 되었다. 상품 하나당의 평균 금액대가 5~10만 원이었는데 선물도 받고 글공부도 시켜주니 얼마나 남는 장사였는 지 모른다. 그다음에 자연스럽게 내 책에 대한 집착을 다시 불러올 수 있었고, 한 권의 책을 너끈히 쓸 만큼의 글쓰기 습관을 붙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책을 쓴다는 다소 버거운 작업을 혼자 하기는 힘들 것 같아 나도 ‘스승님’을 찾아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관심을 달리 하면 새로운 세계가 보인다. 전에는 우리나라에 책 쓰기 코칭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책 한 권을 쓸 수 있다는 이 다분히 가치 있는 일에, 업체에서 부르는 코칭 비용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수백만 원은 기본이고 기천만원의 수강료를 부르는 곳도 있었다. 자비출판을 해도 가능할 금액이었다. 사실 나도 어떻게 써야 하는 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책 쓰기 관련 책을 하도 많이 읽은 탓에 그런 강좌에서 어떤 식의 강의를 할지 대략적인 감이 왔다.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고 하는데, 방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 딱 붙여 놓고 꾸준히 집중해서 쓰는 것이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나 혼자 빈 종이를 붙잡고 끙끙대는 시간이야 말로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2~3개월 만에 한 권 뚝딱 만들어 드립니다’ 하는 책 만들기 프로그램에 거부감이 들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진짜 밀도가 높게 잘 만들어진 질 좋은 책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충분히 고민하고, 다른 책도 많이 읽고, 썼다 지웠다 하는 시간이 필수다. 처음부터 책을 쓰겠다고 달려들었으니 무엇을 쓸지는 정확했던 터, 컴퓨터를 앞에 두고 멍 때리는 시간이나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있는 틈틈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번뜩번뜩 떠올랐다. 쓰다 보니 나만의 습관이 생겼다. 밤늦은 시간보다 아침에 쓰는 것이 나에게는 더욱 맞았다.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카페로 달려가 3시간 정도 글을 쓰고 출근을 했다. 주말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엉덩이 딱 붙이고 앉아 일주일간 썼던 ‘날것’의 원고를 정리해 목차를 늘려 갔다. A4 용지 120장 분량의 글들이 모아졌다. 2015년 9월에 시작하여 2016년 3월에 드디어 괴발개발 초고가 완성이 되었다. 완성 되었다는 말은 사실 거짓말이다. 고쳐도 고쳐도 고칠 것이 끝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선에서 적당한 타협점을 찾았다는 말이 알맞겠다.
두 번에 걸쳐 출판사 일곱 군데에 투고를 했는데 총 세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인터넷과 책으로 수집한 ‘출판사 투고용 기획서’를 꼼꼼히 읽어보고 내 책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소개글을 덧붙인 다음 원고 전문을 첨부해서 발송을 했다. 아무것도 인증된 것 없는 내 이름 석자를 듣고 누가 선뜻 출판을 해 주려 하겠는가. 원고의 일부를 첨부하거나 기획서만 내는 것은 오만이라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에서 책 한 권을 만들려면 대략 2,000만 원의 금액을 투자한다고 한다. 소나타 한 대 값이다. 그러자면 단순히 나만 좋을 책이 아닌 독자와 호흡할 수 있을 대중성도 갖춘 책을 만들어야 했다. 내가 처음 창업을 하며 헤매었던 부분, 첫 목돈을 만들며 했던 고민과 걱정들, 마음이 헤이해 질 때마다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했던 노력들을 녹여내어 글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이것은 절대 단기간에 뚝딱 만들어질 수 있는 결과물이 아니다. 처음 투고한 세 군데 출판사 중 한 군데에서 연락이 와 미팅을 했다. 출간으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나의 책 내용에 어떤 부분이 모자라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기죽지 않았다. 어차피 책 출판은 단 한 곳의 출판사와 하게 될 텐데 아직 시도해 보지 않은 무수한 출판사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첫 미팅을 했던 곳의 담당자는 원고를 읽어보지도 않고 미팅을 요청했는데, 그래서 다음 투고 때는 원고의 디테일보다 출간 기획서의 한 자 한 자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두 번째 투고를 한 네 군데 출판사 중 다시 두 곳에서 연락이 왔는데 그중 한 곳과 계약을 하게 되었다. 원고의 완성도는 계약 후 편집자와 상의 하에 높여갔다. 마치 라디오에 글을 보낸 후 윤색을 받는 것처럼 담당 편집자님이 부족했던 부분을 많이도 보완해 주셨다. 계약 후 세 달 동안 편집자와 조율을 하며 글을 고치는 기간이 제일 피땀 나는 시기였다. 그전에 글을 쓸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썼는데, 이제 이 글이 내 손을 떠나면 활자로 찍혀 나온다고 생각하니 단어 하나, 토씨 하나까지 여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첫 책을 쓰는 초보 작가답게 편집자님을 지리하게 괴롭힌 후 250페이지 분량의 나의 첫 책이 탄생되었다. 그렇게 2016년 11월에 <서른 살, 나에게도 1억이 모였다>가 발행되었다.
학교를 졸업한 후 장사를 하며 강의도 하고 책도 썼지만, 나에게는 장사 선생님, 강의 선생님, 책 쓰기 선생님이 없었다. 특히 이 일들은 매우 창의적인 요소를 요구하므로 절대로 누구에게 배워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쇼핑몰에 상품 등록하는 것은 배워서 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후에 어떻게 수익을 내고 어디서 더욱 좋은 제품을 들여오며 다른 판매자와 다른 나만의 색깔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는 오롯이 나의 몫이다. 인생의 멘토는 강의장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나를 대신해서 나의 색깔을 만들어 주지 못한다. 그리고 혼자서 끙끙대며 ‘과연 이것이 맞는 길인가’, ‘제대로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으로 날밤 새는 과정 한 번 없이 어떻게 순조롭게 일을 진행시킬 수 있단 말인가. 필연적으로 정지되고 버티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멘토 찾아 이동하는 시간에 나 혼자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면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출판사와 계약을 목전에 두고 평소 존경하던 시인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 마지막으로 체크할 사항이 없나 확인을 부탁드렸던 것이다. 선생님은 그동안 일언반구 없이 혼자 여기까지 온 것이 자랑스럽다고 하셨다. 나는 선생님이 내 주신 좋은 책을 많이 읽은 덕분이라고 했다. 사실 그전에 선생님을 붙잡고 상의를 드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을 물어볼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까요? 출판사에 어떻게 투고를 할까요? 특별한 팁 없나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 - 글을 잘 쓰려면 다독, 다작, 다상량 해야 한다와 같은, 혹은 검색을 하거나 관련 책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이야기인데 굳이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괴롭혀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일이 완성되기도 전에 책을 쓸 거라며 떠벌리고 다니다 만일 나중에 출간이 되지 않으면 그냥 실없는 사람이 되어 버릴까 하는 염려도 되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16년이나 선생님 밑에서 피교육생 생활을 하고도 어른이 되어서 또다시 선생님과 강의장을 찾는 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게다가 질문하는 것이 미덕인 줄 알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끊임없이 물어보는 자세도 마찬가지로 안타깝다. 질문은 선생님이 아닌 나에게 해야 하는 것. 정답도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 이렇게 하다 보면 일에 대한 감도 훨씬 빨리 잡고 전문가 반열에도 빠르게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믿고 혼자 책을 쌓아놓고 연구해 보면, 어쩌면 나 자신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대답을 나에게 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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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건 수년이 지나도 역시 쉽지 않습니다,
휴대폰에 손이 가고, 인터넷 창을 클릭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내가 글 쓰는 기록을 온전히 유튜브에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은근히 효과가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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